결국 기승전 ‘공부’가 되는 어른들의 진로상담
결국 기승전 ‘공부’가 되는 어른들의 진로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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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8. 《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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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상담을 가장한 공부 상담을 하고 있진 않나요?

이게 폭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엄연히 폭력이었다.
지금까지 어릴 때는 하루에 한번씩
꿈이 계속 바뀔 정도로 장래희망이 많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 의해 꿈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정말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는 필수로 필요하긴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들은 것이 밑도 끝도 없이 ‘공부’밖에 없어서 그런다.
그러므로 이것도 폭력에 해당할 것이다. - 어느 중학생의 글

정말 뜨끔했습니다. 마치 저에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이, 청소년에게 글쓰기를 알려주고 몇 년간 공부방을 하면서 진로 상담을 자주 했습니다. 부모님의 요청에 의해서, 때로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거나 수업을 하는 도중에도 상담이 이뤄졌죠.

대한민국은 직업 선택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벽이 공존하기에 진로 상담 역시 개방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의 성적이 나오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결국 진로 상담은 공부 이야기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꿈의 수가 줄어드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합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기 점수로 선택할 수 없는 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면서 점차 좁아지기 시작합니다. 대학 입학 이후에는 남아 있는 것 중에서 몇 개를 선택하거나 남들 눈치를 보면서 나를 거기에 맞춰가죠. 대학 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가득한 열람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저는 대학 도서관에서 우리들의 천편일률적인 진로를 보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었다던 글쓴이 중학생의 꿈들은 거기엔 없습니다. 어느 도서관이건 열람실에 놓여 있는 책은 거의 같은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글쓴이와 여러 친구들이 함께 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글쓴이는 차라리 공부를 진로로 삼겠어요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판검사나 의사 같은 엄청난 공부량이 요구되는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꿈에 공부라는 단서가 붙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그 순간 한숨을 쉬었습니다. 글쓴이의 오랜 고민을 알았기에 섣불리 다른 말은 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최종결론이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로 이야기를 맺었습니다.

진로는 발견이어야지 좇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조만간 차분히 앉아 책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갖고 있었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

공부, , 사랑, 책처럼 진로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좁게는 내가 먹고살 생계 수단에서부터, 크게는 인류와 지구촌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진로 교육이 제도 교육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던 까닭은 제 대학 시절의 경험 때문입니다.

학과 선택을 할 때 무엇인가 직업과 관련된 것을 선택하려 했지만 난 고민할 시간은 아주 짧았습니다. 그 시기가 되면 대부분이 그렇게 대학을 갑니다. 학과를 나와서 연관된 업종에서 일하는 것을 전공을 살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공을 살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자꾸 보다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진로에 대한 고민과 대화를 좀 일찍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재의 진로 교육, 자유학기제, 자유학년제 등의 투자는 큰 방향에서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조지 오웰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진로는 발견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스스로 발견하거나, 주변에서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발견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유난히 재밌는지, 눈빛이 반짝이는지, 아무 걱정 없이 몰두하는지 살펴보면 그것이 바로 진로의 출발점이 됩니다. 진로 교육의 핵심은 이 발견의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라야 합니다.

조지 오웰은 자신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재능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조지 오웰은 선량한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내가 오웰을 가장 존경하는 점은 자신의 진로 고민을 인류의 진로 고민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선에 뛰어들기도 하고, 안정적인 공무원 직장을 과감히 때려 치기도 했고, BBC라는 방송사에서 낭독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웰이 보여준 다양한 진로의 모습들은 공통된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로의 좋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과 청소년이 가장 충돌하는 지점 중의 하나가 진로 문제일 것입니다. 어른들의 조언 중에서 어떤 것은 참조할 만한 것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구분하는 기준을 하나 제안하고 싶습니다. 진로 대화의 '주어'가 누구냐를 보면 됩니다.

만약 진로 대화의 주어가 청소년 본인이라면 그것은 경청할 만합니다. 하지만 청소년 본인이 주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모님이나 어른이 주어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청소년 본인의 진로 구상에 압력이 작용한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어른이 주어인 경우입니다. 미래는 어른들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어른들은 꿈꾸고 예견하고 영향력을 미치고 싶을 뿐입니다. 진로는 어른에게는 가상의 문제이지만, 청소년에게는 현실의 문제입니다.

진로에 대해서 많은 어른들과 대화를 해봤습니다. 알고 보면 어른들도 잘 모릅니다. 아는 척하는 것일 뿐입니다. 대통령 탄핵, 미투 운동...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어른도 한치 앞의 미래를 보고 있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용감한 어느 검사에게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검찰청과 공공기관의 곪아터진 문제를 청산할 줄 알았는데, 문화예술계로 번져나갈 것을 누가 예상했겠어요?

요컨대 선을 넘지 않고 조언하는 선에 머무는 어른의 진로 대화에 경청하십시오. 선을 넘는 어른의 경우 그 성의만을 존중하고 내용물은 한 귀로 흘려버리십시오. 어른들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진로는 어디까지나 자기 발견의 문제입니다. 작게 여길 수 있는 이 발견에 개인은 물론 제주도와 대한민국, 인류 전체의 문제가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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