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이 올해로 70주년을 맞는다. 70이란 숫자에는 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흡사 마지노선의 감정이 스며있다. 사람은 언젠가 모두 떠나가지만 예술은 세대가 이어지는 한 영원하다. 제노사이드의 역사였던 4.3에 대한 진상규명과 기억의 복원에 집중된 ‘기억투쟁’에 있어서 예술이 중요한 이유다. <제주의소리>는 창간 14주년과 4.3 70주년을 맞아 주목할 만 한 4.3 미술행사를 <4.3과 미술>로 엮어 소개한다. [편집자 글]

[4.3 70 특집-4.3과 미술] (3) 서울 <잠들지 않는 남도> - 제주 <포스트트라우마>

올해는 제주4.3을 제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알리는 시도가 여럿 준비돼 있다. 그 중에서 네트워크 프로젝트 <잠들지 않는 남도>와 제주도립미술관의 <포스트트라우마> 전시는 각각 서울, 제주에서 동시에 진행되면서 각각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어 주목할 만 하다.

<잠들지 않는 남도>는 서울 곳곳에 자리 잡은 예술 공간들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전시가 이뤄진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제목은 4.3을 상징하는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에서 따왔다. 

4.3 미술작품이 서울에서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8년, 4.3 60주년을 맞아 탐라미술인협회는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평화공간 ‘space*peace’에서 <4.3미술제 아카이브전-평화 동행>을 가진 바 있다. 당시에는 4.3미술제에 출품됐던 작품 60여점과 도록, 포스터 등 지난 활동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10년 전보다 규모를 키워 성북예술창작터, 성북예술가압장, 이한열기념관, 대안공간 루프, 공간41, d/p(discrete paradise)까지 여섯 군데에서 4.3 미술작품을 전시한다. 전시 기간은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다.

▲ 네트워크 프로젝트 <잠들지 않는 남도>가 열리는 서울 내 전시공간. ⓒ제주의소리

공간들은 탐라미술인협회 작가를 포함, 국내 작가 34명의 작품을 각자 선별해 전시를 기획한다. 눈길을 끄는 건 4.3이란 큰 주제는 동일하지만 작가부터 작품 설치까지 공간 별 성격에 맞게 전시 내용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실험적인 예술인을 발굴하는 성북예술창작터, 고지대 주택에 물을 끌어올리는 옛 가압장 건물을 재생한 성북예술가압장,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세상을 떠난 故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이한열기념관, 국내 1세대 대안공간으로 손꼽히는 대안공간 루프 등 제각각 다른 목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4.3을 주로 소개하지만, 한반도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같은 사건도 조명하면서 평화·인권의 가치를 추구해 나간다. 4월 한 달 동안에는 토크, 퍼포먼스, 공연 등의 프로그램도 병행할 예정이어서 서울에서 4.3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인다.

문영미 이한열기념관 학예연구실장은 “이한열기념관은 매년 민주화운동으로 세상을 떠나는 분들을 기억하는 전시 <보고 싶은 얼굴>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민주화운동과 4.3의 기억이 분리된 게 아니고, 계속 연결돼 온 역사라는 걸 보여주는 계기”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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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들지 않는 남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한열기념관 전시장 모습. 사진=이한열기념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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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들지 않는 남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성북예술가압장 전시장 모습. 사진=성북문화재단.

이번 프로젝트는 제주4.3 70주년 기념 사업위원회, (주)제주민예총, 제주도립미술관이 진행했다.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작가진을 꾸리는 건 4.3 70주년 기념 사업 위원회와 제주민예총이 맡았다. 전시 공간을 섭외하는 데는 서울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제주도립미술관의 역할이 컸다. 제주도, 제주도교육청, 행정안전부,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교육청 등 여러 기관들도 후원사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1994년 4.3예술제가 시작된 이후, 25년간 제의처럼 해오는 4.3추모행사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다양한 서울 공간에서 예술을 통해 4.3을 소개하자는 취지에서 프로젝트를 꺼내들었다”며 “한 가지 주제로 20년 넘게 지속해오는 4.3미술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런 상징성을 서울시민들에게 보여주면서 4.3 70주년을 더욱 뜻 깊게 추모하겠다”고 밝혔다.

<잠들지 않는 남도>가 서울에서 4.3을 만난다면 <포스트트라우마>는 제주에서 동아시아 국가폭력의 역사를 한꺼번에 만난다. 3월 31일부터 6월 24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4.3 70주년을 맞아 미술관이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이다. 

제주(4.3사건), 광주(5.18민주화운동), 베트남(베트남전쟁), 오키나와(태평양전쟁), 대만(2.28사건), 중국(난징대학살·하얼빈 731부대)에서 벌어진 참혹한 역사를 미술 작품으로 소개한다. 도립미술관 전관을 이번 전시를 위해 사용할 만큼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4.3는 강요배·박경훈, 5.18은 홍성담, 베트남전쟁은 딘 큐레, 태평양전쟁은 킨조 미노루·야마시로 치카코, 2.28은 데이딘옌·펑홍즈, 난징대학살은 우웨이산, 하얼빈 731부대는 제인 진 카이센 작가의 작품으로 각각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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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킨조 미노루의 작품 <한의 비>. 오키나와에 끌려와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조선인이 곡물을 훔쳤다가 일본군에 의해 무참하게 처형당한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사진=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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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담의 작품 <5월-2 횃불행진>. 사진=무등산웹생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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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진 카이젠의 작품 <Reiterations of Dissent>. 사진=리움미술관.

각 사건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는 작가로 엄선했고, 평면, 입체, 영상, 설치 등 장르 구성도 풍부하게 잡혀 있어 기대가 모아진다. 전시를 위해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미술관과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이 협력기관으로 함께 하고 있다.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은 “4.3 70주년을 맞아 제주와 이웃한 나라와 도시들의 역사를 함께 재조명하면서, 4.3을 인류사적인 보편 가치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전시 주제인 포스트 트라우마는 20세기 제노사이드의 역사가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애도하며 치유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있음을 알린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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