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석 칼럼] 제주4.3 70주년...진정한 소통·화해 통해 평화 깃들길 
 
오관을 통해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지는 순간 대상과 나 사이엔 관계가 생겨난다. 특히 인간관계는 어렵고 뒷맛이 개운치 않을 때가 많다.

문제는 관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임에도 나를 포함하여 인구 태반이 관계 무능력자가 아닐까.  

사람이 사회활동하기 위해서는 관계 설정이 필수적이다. 관계는 서로간의 느낌, 생각, 갈망 등의 차이로 인하여 갈등과 대립을 낳는다. 인간의 삶 자체가 자아의식을 강화하는 과정과 흐름이기에 관계설정에는 자아의식이 앞선다. 

아집(我執)의 갑옷은 마음의 벽을 층층으로 두르게 한다. 이런 벽은 기대어 쉴 수 있는 편안함과 단절이란 불편함의 이중성을 갖는다. 밖에 비가 오는지 또 바람이 부는지도 모른 채 내 벽 안은 천심(千尋)같이 안온하다고 느낀다. 담벼락하고 말하는 꼴이다.

벽은 서로간의 소통과 이해를 막는다. 처음엔 방어를 위해 벽을 쌓지만 그것은 곧 불통不通의 벽이 되어 종국에는 형무소의 벽이 되고 만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이야기하면서도 가정이나 직장 혹은 사회 각 계층 간에 소통이 없다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권과 관료 사회는 다른 분야보다 밥 먹듯 쉽게 담을 쌓고 벽을 친다. 유사한 말과 정서, 생각, 견해를 지닌 자들 끼리끼리는 서로 잘 소통한다. 유유상종(類類相從)하는 것이다.

벽을 치면 대들보가 울린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문득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가 떠오른다. 담쟁이 의지 처인 그 벽을 ‘어쩔 수 없는 벽’, ‘절망의 벽’,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상징화하면서 현실의 괴로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의 투쟁 의지를 노래한다. 그 담쟁이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숙명적인 것을 피함이 없이 그것을 넘어서겠다는 운명의 주체임을 선언한다.

하지만 담쟁이는 자신의 목적을 추구할 뿐 벽과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공감(共感) 없는 소통을 목격한다. 관료사회가 국민과 대화할 때 국민을 설득하여 내 뜻대로 조정하려는 의도를 가질 때가 그런 경우다. 이는 권력 의지의 표출일 뿐이고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좋은 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텅 비우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청하기는 참 어렵다. 사실 우리는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더 좋아한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자동적으로 재빠르게 자기 식으로 해석하여 공격하거나 방어모드로 돌입한다. 좋은 경청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 주는 것이다. 책을 읽듯이 상대방의 감정을 느껴 주고, 그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여 주고,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아 주는 것이다.

고희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 역시 공감 능력이 부족하여 가족·사회관계에서 매끄럽지 못했던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빠들이 자녀들과 놀아 주는 시간이 고작 하루 6분에 지나지 않다는 최근 보건복지부의 발표가 가을 서릿발처럼 느껴진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남을 길들이려 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길들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 보게 된다. 

스마트 폰이 보편화되면서 스마트 시티(Smart City)가 열리고 있지만 오히려 소통, 투명성, 신뢰 같은 정신적 가치는 배양되지 않는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주변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동시에 고립감을 느끼는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생겨날 수 있는 열등의식, 우울증에 염오하며 나 홀로 지내는 이른바 ‘인맥 거지’를 자처하거나 관계에서 오는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현대인의 이중적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수년 간 청년층을 중심으로 ‘혼밥’, ‘혼술’ 등 나 홀로 문화가 확산되는 것도 그 이면에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스트레스가 있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담을 없애지 말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자애와 관용으로 자신을 길들이는 사람은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책임질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을 돌보는 일이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며, 사회적 관계를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감싸는 것이 된다. 

4.3의 슬로건은 ‘화해와 상생’이다. 수 십 년 간 서로 불신의 벽을 쌓아 왔던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가 2013년 손을 맞잡고 만리장성과 같은 옹벽을 허문 것은 그 본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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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 2일 제주4.3유족회와 경찰 출신 모임인 제주도재향경우회의 공동 기자회견 모습. 두 단체는 반목의 시대를 접고 화해와 상생을 추구하자며 65년만에 화해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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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 김승석 / <제주의소리> 공동대표·변호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평화 올림픽으로 치를 것을 다짐하는 '올림픽 휴전벽' 제막 행사가 평창 선수촌에서 열렸다. '평화의 다리 만들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벽은 높이 3m, 너비 6.5m의 수직 콘크리트 벽이 수평으로 구부러져 다리가 되는 형상을 표현했다. 휴전벽은 벽 가운데가 아래로 쓰러져 다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70년 분단의 벽이 허물어져 남북 사이를 잇는 다리가 돼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4.3사건 7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이념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과 화해를 통해 평화가 깃들기를 희망해 본다. / 유현 김승석 <제주의소리>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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