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케케묵은 냉전시대의 화석이 돼버린 일부 보수정치인들과 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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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김성태 원내대표, 김진태, 나경원 의원 등이 지난 2월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남할 예정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임) 방남 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계란으로 바위치기

역시 정답은 대화였다. 봄이 채 오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한반도의 해빙(解氷) 무드. 남북과 북미 간 정상회담이 기적적으로 성사됐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동해와 일본의 영공으로 시험용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이에 대한 이른바 ‘코피’ 작전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군사행동이 임박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비단 우리 한민족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간담을 서늘케 하지 않았던가. 현실적 어려움은 차지하고라도 그간 십 년 이상 켜켜이 쌓였던 감정적 앙금과 현실적 어려움에도 대사(大事)를 위해 결단을 내린 삼국 정상들의 담대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시작은 반이었다.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지난 해 북한과의 평화회담을 세계만방에 천명할 때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비관적으로 예상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용기 있는 자를 위해 존재해 왔다. 역사는 후퇴하는 법이 없다. 다른 길이 없다면 그 길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대량살상이 가능한 첨단무기 시대에 전쟁으로 한민족이 통째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한, 평화는 우리가 가야할 유일한 길이다. 이번의 쾌거는 한 마디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니 계란이 아닌 바위가 깨질 기미를 보인 격’이다. 

두 마리 토끼 잡기

해빙을 이끌어 낸 단초는 평창 올림픽이었다.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드는 전략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평화 전략이 얼마나 유효했는가는 이전 상황을 되돌아보면 보다 명백해진다. 지난 십년의 국가적 노력과 십조가 넘는 천문학적 예산이 투여된 평창올림픽이 러시아의 참가자격 박탈에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우려하는 일부 주요 국가들의 불참 가능성으로 ‘동네 올림픽’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던 게 아니었던가. 그러나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결국 참가국들의 우려 불식과 관심 증대로 이어지며 이전 유럽에서 열렸던 여러 올림픽들과 달리 평창올림픽이 흑자올림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며 게다가 기대난망이었던 정상회담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한 방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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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올림픽 개막식 모습. 사진=청와대 효자동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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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올림픽 폐막식에서 남북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함께 입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효자동사진관.

하지만 무엇보다 값졌던 것은 평창올림픽이 ‘남북이 한 핏줄’임을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절실히 실감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때문이리라. 한민족으로서의 벅찬 감격은 남북 선수들이 하나가 돼 전력의 열세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며 한민족의 역량을 과시한 여러 운동경기들만이 아니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남북 선수들이 헤어지던 날, 휴전선너머 고향 행 버스에 올라탄 북한 선수들과 배웅하며 손을 흔들던 남한 선수들이 서로 헤어지며 순박한 눈망울에 그렁그렁 괴였던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감동과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악어의 눈물’ 드라마 

그러나 자연의 섭리로 찾아오는 봄에도 꽃샘추위는 있는 법. 시종일관 단일팀과 남북대화를 반대하는 일부 보수정당과 보수언론들이 평창올림픽에 ‘평양올림픽’의 프레임을 씌우려고 애쓰는 모습은 아연실색하기에 앞서 또 다른 ‘악어의 눈물’의 드라마였다. 당초 그토록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동계올림픽을 누가 개최하려고 기를 썼던가. 그럼에도 너무나도 편리하게 기억상실증에 걸려 버린 그들이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갖다 바치는 시도가 성공했더라면 엄청난 국가적 자원과 역량을 이번 올림픽에 쏟아 부운 한국은 지금쯤 실컷 재주를 부리고도 개털이 된 유랑극단의 초라한 곰 신세가 됐을 것이다.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남북 선수들이 헤어지는 눈물을 보고도 안타까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고 우겨대며 세월호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던 일이 떠올랐던 건 과연 우연 만일까. 그러나 북한 고위급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가교를 놓기 위해 내려오는 날, 노선을 막느라 옛날 벙거지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도로에 드러누워 밤을 꼬박 새우는 해프닝을 벌였던 그들에게 일제 강점기 혹한이 몰아치는 만주 벌판에서 활약하던 독립군으로 자처하는 비장감마저 읽혀졌다. 하기야 반공이데올로기는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까지도 광복 후 최고 훈장까지 받는 애국자들로 만들어 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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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김성태 원내대표, 김진태, 나경원 의원 등이 지난 2월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남할 예정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임) 방남 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이젠 일장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전임 대통령의 생각 없는 말씀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박수만 치던 그들의 모습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이제 와서 기본적인 대화마저 결사반대라니 그들이 말하던 통일은 흡수통일이었던 것인지. 이 엄중한 위기일발의 시점에 올림픽을 지렛대로 평화의 물꼬를 트기위한 절호의 기회마저 반대해대니, 미국의 ‘코피’ 공격으로 서울 한복판에 북한 미사일 한 방이라도 떨어져야 그들의 뒤틀린 속이 풀릴 심산인 것 같다. 남북문제의 모든 것을 오직 압박과 무력으로만 가능하다면 국방부만 있으면 되지 굳이 통일부와 외교부는 둬서 뭐할까.

그간 사드배치와 개성공단 철수 등 초강경조치로 정작 죽어난 것은 북한보다는 남한의 영세업체들과 서민들이었다. 결국 대화만이 가장 올바르고 유일한 해법임은 이번 세 국가들 간 정상회담에 대한 세계 모든 국가들의 뜨거운 관심과 반응에서도 여실히 입증된다. 아마도 이 평화회담에 반대하거나 ‘멘붕(멘탈붕괴)’이 된 것은 우리의 일부 보수야당과 일본의 아베정권이 전부일 것이다. 이전 정권이 친일역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교과서를 만들려고 기를 썼던 것도 이를 내다본 것이었을까. 믿고 믿었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마저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북한과의 회담을 수락했으니 앞으로 어버이연합 같은 시위에는 성조기를 내리고 일장기를 달아야 할 판이다. 

냉전의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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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반드시 성공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만드는 ‘또 다른 그들만의 올림픽게임’을 벌였던 사람들이 종북이 아닌 보수 세력이라는 사실에 아둔한 필자의 머리마저 헷갈릴 정도다. 본래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무턱대고 반대부터 해 온 게 그들의 정치의 전부였지만,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그들의 반대가 실은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익과 안보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것은 상식일 것이다. 가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민주당이 북미회담을 덮어놓고 반대만 하는 것을 봤는가. 

어느덧 냉전의 화석이 돼버린 그대여. 저 멀리 한라산의 겨우내 잔설을 녹이며 소리 없이 밀려드는 새 시대 신세계의 따뜻한 봄바람을 느끼지 않는가.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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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효자동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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