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61) 바위틈에 있는 나무 옥당에 심어서 커도 그 은공 모른다

*석상엣낭 : 바위의 나무, 바위틈의 나무
*옥당 : 화려한 전당이나 궁전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아주 비옥한 곳
*싱건 : 심어서. 싱그다→ (나무를) 심다, 식재(植栽)하다
*몰른다 : 모른다. 몰르다→ 모르다

돌 틈서리나 비탈진 자드락 같은 박한 땅에 나 있는 나무는 뿌리를 제대로 뻗지 못해 잘 자랄 수 없다. 그것을 안타까이 여긴 나머지 집 울안 비옥한 땅에 옮겨 심어서 쑥쑥 자라게 해 줬는데도 그 인정을 모른다 함이다. 식물이니 말로 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게 나무가 아닌 사람이라면, 문제가 싹 달라진다. 형편이 어려울 때 자기를 도와서 훌륭하게 성장시켜 준 은공을 모른대서야 말이나 되는가. 한마디로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제 앞가림 못하는 낯살 두꺼운 사람이다. 도와 준 은혜를 모르고 등을 돌리는 배은망덕을 꼬집는 말이다.

배은망덕은 베풀어 준 은혜에 보답하기는커녕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다. ‘배신’이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보통이다.

구걸하러 온 아이를 가엽게 여긴 주인이 머슴 삼아 먹이고 입히고 재워 주고 혼인까지 시켜 사랑채를 내주며 살게 했는데, 어느 날 배부른 머슴이 주인에게 “지금까지 내가 일한 돈 주시오”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노발대발한 주인 입에서 좋은 말이 나왔겠는가. “올 데 갈 데 없는 놈을 키워서 장가까지 보내줬더니, 이런 배은망덕이라니. 썩 나가지 못하겠느냐, 이놈!”

배은망덕은 배신의 또 다른 이름, 배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무술년 황금의 개띠 해라 개 얘기, 한 꼭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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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은 주인을 알고, 어떤 경우에도 배은망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주인을 배반하고 은공을 몰라보기 일쑤다. 사진은 일본 후쿠시마 지역에 남겨진 개. 사진=오마이뉴스.
  
요즘 사람들 개를 참 좋아한다. 못 마땅할 때가 있을 정도다. 우선 방안에서 냄새가 난다. 먹이도 못 사는 사람들보다 고급스럽게 챙긴다. 수시로 목욕시키고 나들이할 때는 자동차로 모신다. 소파에 앉히고 심지어 침대에 데리고 잔다. 아무리 ‘개 팔자 상팔자’라지만 이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개는 어디까지나 개 취급해야지, 사람 이상으로 대접 받는 것 같다. 오히려 개로 해서 사람의 등급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곤 한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못 마땅해 “개를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면, “교훈적인 것이 있다. 개는 배신할 줄 모른다”라 한다. 사람은 기껏 도와주고 키워 놓으면 그 공을 저버리기 십상인데, 개는 은공을 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별로 값을 쳐 주지 않는 개 한 마리를 집에서 키웠다. 웬만큼 키워 보신탕을 해 먹기 위해서다. 어느새 쑥쑥 자라 상개가 됐다. 한여름이 되자 그 주인, 키우던 개를 묶고서 인적 뜸한 들판으로 갔다.

개는 두들겨 패야 맛이 난다는 말을 들은 터.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놀란 개가 날뛰는 바람에 묶었던 끈히 풀리고 개는 도망질해 버렸다. 주인이 이놈의 개가 어디를 갔나 하고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었다. 

하릴없이 집에 돌아온 순간 깜짝 놀랐다. 이런, 이런. 개가 집에 와 있지 않은가. 제 집에서 나오더니,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맞는다. 그 주인, 개를 껴안고 울면서 말했다. “누렁아, 내 다시는 개고기를 안 먹으마. 다시 개고기를 먹으면 사람이 아니다. 개자식이다.”

짐승은 주인을 알고, 어떤 경우에도 배은망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주인을 배반하고 은공을 몰라보기 일쑤다.

하나님도 이시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배은망덕을 소나 나귀에 빗대어 질타했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특히 남자로 살아가면서 절대 해선 안될 행동이 바로 배신이다. 마음을 저버리는 행위, 배신이야말로 패륜이고 불신이기 때문이다.

은전(銀錢) 서른 닢에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를 보라. 죽은 지 2천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고 있지 않은가.

요즘 우리 주변에는 이런 배신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 저를 낳아 준 부모를 해하는 행위는 천륜을 어기는 짓으로 사람으로서는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악업(惡業)이다. 크지 않은 재산을 놓고 형제간에 다투다 큰 분란이 의절(義絶)로 치닫는 경우도 적지 않은 세상이다. 정치권의 배신행위는 이루 입에 담지 못한다. 

‘석상엣낭 옥당에 싱건 커도 그 은공 몰른다.’ 

제가 커졌다고 눈 들어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을 때, 공들여 키워 준 사람으로서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어이없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흔히 배은망덕한 자를 가리켜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 말한다. 사람다움의 기준은 딴 데 있지 않다. ‘은혜를 아는 것’이다. 사람의 탈을 쓰고서 개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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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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