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30) 꽃밥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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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참꽃 떨어져서 흘러드는 잠수교 밑

떠도는 불빛들이 한사코 따라와서

강물이 너울거리며 꽃을 먹네, 늦저녁

손위에 손을 얹듯 포개지는 물이랑에

참꽃 떨어져서 차려지는 성찬인가

시장기 돌던 불빛이 꽃밥으로 배부르다

-  이승은의 <꽃밥> 전문 

생각지도 않았던 사물 하나, 혹은 장면 하나가 생각의 물꼬를 과거의 기억으로 끌어갈 때가 있다. 그 매개체는 그와 전혀 상관없는 기억의 한 페이지에 머무르게도 하고, 그 때 그 시간을 떠나 여지껏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기억을 어제인 듯 되살려 놓기도 한다. 과거의 기억을 따라 흐르기에는 강가처럼 좋은 장소도 없을 것. 강둑에 앉아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이고, 흔들리며 지나가는 물살의 맑은 살결을 훔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살 따라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잡아끌며 먼 유년의 시간에 당도해 보면 빙그레 웃음짓는 맑은 마음의 안자리 하나 따뜻하게 놓여 있을 것이다. 거기다 참꽃은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유년시절을 추억하기에 가장 적당한 매개체가 아닌가.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참꽃에 대한 기억. 소꿉장난처럼,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가득히 따다가 밥이라 여기고 먹었던 ...

 먼 유랑의 길을 떠도는 갈 곳 없는 불빛들이 제 집인 듯 찾아드는 저녁 무렵, 그리움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듯 마침 누가 차려놓은 성찬처럼 참꽃들이 흘러든다. 몸을 잡아 끄는 물살들도 무시하고 한사코 참꽃 주위를 떠나지 못하는 불빛, 꽃밥의 밥상을 받아든 불빛이 오랜만에 배가 부르다. 삶에 지친 영혼들이 잠시 쉬어가는 저녁 강가, 저녁 때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불빛들을 그 영혼이라 할 때, 강물에 모여 있는 참꽃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추억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이나 아픔의 기억은 전부 퇴색이 된 채 그리움의 빛깔만 선명히 남은, 수북히 쌓여진 아름다웠던 꽃밥의 시간이 외로운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탕자는 아름답게 차려진 성찬을 양껏 먹으며 따뜻한 삶의 한 페이지를 그린다. 

강물, 참꽃, 불빛, 배부름, 네개의 단어로 집약이 된 이야기가 두 수의 작품안에 편안하게 녹아 있다. 단순한 내용인 듯 하지만 각각의 낱말들이 갖고 있는 성격으로 인해 독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 듯 여겨진다. 강물이 갖고 있는 특성, 참꽃에 담겨 있는 이야기, 불빛들의 느낌, 등이 짤막한 시 속에서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성년의 자식이 늙은 어머니의 품에 안겼을 때 느끼는 그 안락함과 따뜻함같은...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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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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