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종민(농부, 전 4·3위원회 전문위원) "전두환 개정 헌법 답습...재론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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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착오적인 연좌제로 제주4.3유족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 제주의소리

봉건왕조 시절인 조선시대 때, 백성들은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가족 또는 친족이 저지른 죄로 인해 처벌을 받기도 했다. ‘반역’을 꾀하거나 왕조를 부정한 ‘대역죄인’을 심판하며 “삼족을 멸하라!”고 외치는 것은 텔레비전 사극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장면이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친족의 죄 때문에 함께 벌을 받는다는 건 ‘문명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봉건시대의 악습 ‘연좌제’, 갑오개혁 때 폐지

그래서 조선왕조는 1894년 갑오개혁을 단행하며 “죄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 금지한다(罪人自己外緣坐之律一切勿施事)”고 규정했다. 문명국가로 거듭나겠다며 개혁을 하는 마당에 ‘연좌제’를 폐지한 건 너무나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1948년 제주도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연좌제가 부활했다.

1947년 3·1절 기념식 때 경찰의 무분별한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제주4·3은 1948년 4월 3일 벌어진 무장봉기를 거쳐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 동안 지속됐다. 이때 제주도민의 1/10인 무려 3만 명가량이 참혹하게 희생됐다. 대부분 군과 경찰 또는 극우청년단인 서북청년회에 의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연좌제로 장래 막힌 제주4·3 유족

그럼에도 군부독재정권 시절, 유족들은 억울하다는 호소 한 마디조차 하지 못한 채 오히려 ‘연좌제’로 인해 장래가 막혔다. 요즘이야 감귤농사와 아름다운 풍광을 활용한 관광업, 또는 각종 사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지만, 물이 부족해 쌀은 거의 생산되지 못하고 조, 보리, 메밀 등을 경작하며 겨우 목숨만을 유지하던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월급’이라는 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공무원, 교사, 군, 경찰 등 몇몇 직업에 국한됐다.

그러한 때에 4·3유족들은 연좌제로 장래가 막혔다.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가족 중에 군·경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가 있으면 공직에 나아갈 수 없었다.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해 훈련을 받다가 퇴학당했고, ‘신원조회’에 걸려 어렵게 들어간 공직에서 쫓겨났다. 이때 제주도민이 겪은 좌절감과 피해의식은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박정희의 친족은 모두 연좌제 대상자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연좌제를 실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형이 남로당 활동을 하다 처형당했고, 본인도 군대 내의 남로당의 핵심 간부로서 활동하다 발각되자 ‘동지’를 팔아넘긴 덕분에 겨우 목숨을 부지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그의 친족들은 모두 연좌제 적용 대상으로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한편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부하에 의해 갑자기 죽게 되자 전두환은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후 정권을 찬탈함으로써 군부독재정권을 이어갔는데, 헌법을 개정하면서 뜬금없이 봉건시대의 연좌제를 소환했다.

전두환, 뜬금없이 ‘연좌제 금지’를 헌법에 신설

즉 1980년 10월 27일 개정된 제9호 헌법은 제12조 제3항을 통해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전두환이 학살자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제 딴에는 ‘국민에 대한 배려’라며 신설한 조항이다. 이 조항은 1987년 6월항쟁의 영향으로 같은 해 10월 29일 개정된 제10호 헌법 제13조 제3항에 똑같은 문구로 되풀이됐다.

그런데 연좌제라는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악습을 없애겠다며 신설한 이 조항은 오히려 그동안 연좌제를 ‘공식적’으로 적용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며, 앞으로 공식적으로는 그러하지 않겠다는 선언일 뿐이다.

“도둑질 안 하면 절도죄 처벌 않는다”처럼 해괴한 조항

필자는 지난 30년간 제주4·3사건에 대해 공부해 왔다. 그래서 제주4·3과 관련한 연좌제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앞으로 헌법이 개정된다면 부끄러운 이 조항이 당연히 삭제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도둑질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도죄로 처벌하지 아니한다.’처럼 해괴한 조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26일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 제14조 제3항은 “누구도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구가 약간 수정됐지만 이는 1980년 전두환에 의해 개정된 헌법을 답습하는 것이며, 1894년 갑오개혁 때 사라졌던 연좌제를 무려 120여 년이나 지난 후에 재론하는 것이다.

갑오개혁 120여 년 후에 소환된 ‘헌법 개정안’

물론 1948년 제주4·3 때를 비롯해 그 이후 오랫동안 지속된 군부독재정권이 연좌제를 적용해 불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연좌제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피해의식은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권이 저지른 연좌제 적용 실태를 낱낱이 밝히고, 연좌제 적용을 위해 수집해 놓은 자료를 공개하여 박물관으로 보냄과 동시에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할 때 비로소 불식될 것이다.

필자는 혹시나 하여 미국 헌법, 독일 헌법, 일본 헌법, 심지어 북한 헌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까지 꼼꼼히 살펴보았으나,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우스꽝스러운 조항을 찾을 수 없었다.

◆ 김종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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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57)은 4.3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일간지 기자 13년, 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13년, 도합 26년을 비롯해 지금까지 4.3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매달렸다. 제민일보 ‘4.3은 말한다’ 취재보도,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희생자·유족 인정, 일부 희생자를 제외시키라는 극우보수단체와의 숱한 송사를 맡아 승리로 이끌었다. 지금은 낮엔 농사를 짓고 밤엔 글을 쓰고 있다. 기자시절 무려 7000여명의 4.3유족들로부터 증언을 채록한 역사학도(고려대 사학과 졸업)로서의 집요함을 보였다. 이 방대한 증언은 4.3의 진실을 밝히는데 단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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