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20) 회천동 새미물

음나물내, 버으내, 문서천, 동회천 같은 하천이 남쪽 오름이나 한라산의 기슭에서 발원하여 북쪽 바다로 흐르고 있어, 물이 많은 동네란 의미로 회천동은 새미마을(회천)이라 한다.

회천동은 세은쇄리, 세은촌리로 표기되었던 마을로 동회천인 ‘새미’와 서회천인 ‘가는새’라는 두 개의 마을로 이루어졌다. 회천동은 하천이나 작은 산물이 여러 곳에 물줄기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처음에는 없다가 다시 물줄기가 솟아나왔다 해서 회천(回泉)이라고 했다. 

섬에서 마을 이름을 물과 관련된 명칭을 사용한 것은 삶의 조건과 생명 연장에 있어 물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식수만은 아니다. 때로는 부정을 씻어내는 정화수, 병을 고치는 약수, 마을의 번영을 위한 제수가 되기 때문에 물은 귀하고 신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회천동에서 마을의 이름을 ‘샘 천(泉)’자를 쓰는 것은 ‘새미물’이라는 널리 알려진 산물이 있기 때문이다.

세미2y.JPG
▲ 새미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IMG_3334y.JPG
▲ 새미물 입구 비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새미물(동회천물, 동새미물, 천미물)의 새미는 샘(泉)을 의미하는 제주어다. 천미(泉味)는 새미의 한자표기이다. 이 용출수는 ‘샘+물’이라고 강하게 물을 두 번씩 강조하고 있다. 이는 마을에 미인과 인재가 많이 나고 무병장수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약수가 되는 좋은 물이 있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 물은 마을사람들의 주식수원으로 마을제나 제사 때 올리는 제수로도 사용되었다. 

동새미물이라는 새미물은 생목수원로 길가에 있다. 그리고 이 산물 곁에 있는 화천사 뒤편에 마을에서 모시는 오불상(석인상, 다섯 개의 석상, 향토유형유산 제9호)이 모셔 있고 마을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마을에서는 오불상을 위한 ‘석불제’란 마을제를 올릴 때 제수로 반드시 새미물을 사용했다. 왜냐하면 회천이란 마을의 유래는 이 산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IMG_3352y.JPG
▲ 오불상(석인상, 향토유형유산 제9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제주어로 ‘구렁’을 구릉, 굴헝, 굴렁, 굴랭이라고 한다. 새미물의 용출지점인 식수를 뜨는 곳은 땅 지면보다 낮은 구렁으로 한사람 정도 들어가 작박(바가지)으로 물을 뜰 수 있게 되어 있다. 산물 입구의 좌측 돌담 벽에 새미에 대한 유래를 적은 비문(1988년)이 붙여있다. 비문에는 ‘자연생수로 천하일수며 사철 솟아난다’고 하여 살아있는 산(한라산)에서 내린 물이라고 적고 있다. 그래서 이 물은 살아 있는 생수(生水)로 산물이다. 샘은 자연 상태를 최대한 살린 옛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암반 틈에서 솟는다. 이 산물은 식수전용으로 물 오염을 막기 위해 빨래터를 갖고 있지 않다. 빨래터는 새미물 건너편 아래쪽에 있는 알석회통이라는 물통의 물을 사용하였다.

IMG_3337y.JPG
▲ 새미물 용출 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알석회통은 새미물 아래 시멘트로 만든 통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짐작해 볼 때 예전부터 있었던 물통이 아니라 시멘트가 보급되면서 만든 통으로 길을 내면서 개수된 것으로 보인다. 물통은 인근의 빗물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물은 고여 있는 것 같이 정체되어 있지만 수심이 깊지 않은데도 물이 마르지 않고 썩지 않은 것으로 봐서 물통 바닥에서 조금씩 물이 솟아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산물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산물 터는 예전보다 많이 축소되었으나 다행인 것은 산물이 솟는 구렁은 훼손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남아 있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이른 새벽에 허벅을 지고 와서 작박으로 물을 길러가던 모습을 회상해 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IMG_3345y.JPG
▲ 동회천 표석 뒤 알석회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SAM_0009N.JPG
▲ 알석회통(빨래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cats.jpg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