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21) 삼양1동 앞개성창 용출수군

삼양동은 물이 풍부한 마을이다. 삼양수원지는 제주시민의 젖줄이었다. 다만 물은 풍부하지만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 동쪽 원당봉이 높이 솟아 마을에 큰 인물이 배출치 못할 뿐 아니라 가난을 면치 못하겠다는 설이 있었다. 그래서 설개, 감을개, 매촌(梅村) 세 마을이 합(合)해 마을 이름을 삼양(三陽)이라고 바꿨다고 알려진다.

오래전부터 삼양은 삼양수원지가 있는 해수욕장 일대 이곳 저곳에서 깨끗한 용천수가 솟아올라 ‘물 천지’를 이뤘다. 그래서 제주시는 식수난 해결을 위해서 1982년 삼양제1수원지를 지었고, 1984년 삼양제2수원지, 그 후 제3수원지까지 만들었다. 지금은 해수의 침입, 상부 지역의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지하수의 오염 우려 때문에 비상용 상수원으로 전환되어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삼양1동은 지형이 높이 솟아있는 산(山) 기슭에 호미 모양의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갯마을이라 하여 ‘서흘포’라 이름 짓고 통칭 ‘설개’라 불렸다. 이 마을 포구에 강한 기운이 솟구치는 용출수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산물은 큰물이다. 이  물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다섯 개의 산물들이 앞개성창에서 군락을 이루며 솟아나고 있다. 여기서 용출되는 산물들은 동쪽으로부터 '남저(남자)목욕통, 큰물(여자목욕탕), 독(닭)통물, 샛도리(림)물, 엉덕물' 순으로 반원을 그리듯 위치해 있다. 1일 3만톤 이상의 산물을 솟아난다. 갑자년(1924년) 이 산물 터에 포구를 개수하면서 치수했다는 기념비가 큰물 입구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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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개성창 용출수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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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개성창 산물 이용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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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입구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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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여자전용)과 개수기념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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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여자용) 내부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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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여자용) 내부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큰물(여자목욕탕)은 설개 앞개성창 산물군 중에서 면적이 가장 크고 수량도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자목욕탕 입구에 있는 비석에는 ‘돈물(담수를 지칭하는 단물의 제주어)’이라 적혀 있는데, 입구에 가림막을 한 식수통은 수도가 보급되기까지 주민들의 젖줄이었다. 이 산물은 식수통과 목욕을 할 수 있는 빨래터를 울타리로 구분하여 만들었는데, 1970년 새마을운동으로 보급된 시멘트로 돌담 틈을 메우고 사용하다가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그러나 입구에 있는 식수통과 물팡, 물가림막은 예전 그대로 보존돼 있어 찾는 이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제주굿은 시작할 때 새를 쫓는 행위인 '새도림'을 지낸다. 새도림은 '새를 쫓는다'는 제주말로 새를 쫓음으로 모든 사악한 것을 떨쳐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샛도리물(샛다리물)은 굿을 할 때 깨끗한 물을 뿌리며 정화시키는 나쁜 기운과 잡귀인 새(제주 섬에서 잡귀는 까마귀라고 함)를 쫓아내는 ‘샛도림(새 쫓음)’을 하기 위해 이 물을 길어서 쓴 데서 연유됐다고 한다. 이 산물은 기운이 센 신성하게 보호된 물로써 맑고 깨끗하여 식수로도 선호했다. 샛도리물은 식수통, 빨래터 등으로 구분하여 사용하였는데, 기가 매우 센 물이기에 물이 빠져 나가는 출구에 고래(방아돌)를 놓아 물을 감싸듯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물을 달랜 후 용솟듯 바다로 빠져 나가게 하였다. 산물은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도로 밑 사각암거에서 솟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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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다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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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다리물 도로 밑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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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달래기 위해 출구에 놓은 고래(방아돌).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독통물에 독은 제주어로 닭이며 물이 나오는 곳이 닭둥우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 물은 농기구나 빨래를 하는 물로 사용되었다. 이 산물은 샛도리물 앞 동쪽에서 솟는 물을 지칭한다.

엉덕물은 샛도리물 위쪽 길 건너에 엉덕(언덕)아래 굴처럼 움푹 패인 궤에서 물이 나온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밀물이 들어올 때쯤 물이 나오는데, 다른 물들이 바닷물에 잠겨 사용하지 못할 경우, 이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이 산물은 입구를 제외하고는 예전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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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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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덕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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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덕물 내부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큰물 동측 곁에 남자목욕탕이 있는데, 목욕 전용이기에 여기에는 식수통이 없다. 이 산물은 두 개의 물통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물통을 나눈 것은 아이들을 위한 배려로 입구 쪽은 아이들, 안쪽은 깊게 만들어 어른들이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동카름(카름은 동네을 지칭하는 제주어) 성창에도 가막잣짓물과 우무숫물이 있다. 이들 산물은 지금은 삼양3수원지의 상수원이 되기 전까지 동동네의 귀한 식수였다. 가막잣짓물은 '가막(검은)+작지(자갈)'가 결합된 이름으로 바닥에 검은 자갈(제주에서는 먹독이라 함)이 깔려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무숫물은 '우미가 많이 나는 곳의 물'이란 뜻으로 이 일대는 담수가 풍부하여 우미(우뭇가서리)가 많이 자랐다고 한다. 지금은 이 산물들의 실체는 상수원 지하에 갇혀 볼 수는 없고 상수원 입구에 있는 남녀로 구분된 목욕탕에서 상수원에서 제공하는 산물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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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남자전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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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남자용) 내부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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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무숫물(상수용 수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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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막잣짓물(상수용 수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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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카름성창목욕탕(우 여탕, 좌 남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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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카름성창목욕탕 내부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는 삼양3수원지가 염분유입으로 비상용 예비수원지로 전환하면서 수원지 일부를 산책로 등 환경친화적 공간인 생태휴식지를 조성하여 주민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했으나  관리가 소홀한 것 같다. 정기적인 관리로 찾는 사람들에게 상쾌함을 주었으면 한다.

설개 앞개성창 산물군은 담수욕장이 형성되면서 여름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삼양의 또 하나의 명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해안도로와 맞물려 있어 교통사고 위험도 상존해 있어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많은 탐방객을 마다하지 않은 마을의 사람들이다. 이런 마을의 노력이 좀 더 계획적으로 발전되어 마을의 역사를 품은 산물을 자랑하고 마을 전체의 소득과 연계한 용출수 체험 방안을 만들었으면 한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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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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