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14) 《까마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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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면서까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제주4.3은 지금도 논쟁의 중심입니다. 남로당, 즉 남조선노동당의 선동과 협박에 제주도민들이 부화뇌동해 벌어진 비극인가, 이승만과 미군정의 분단 정책에 용감하게 저항한 ‘반(反) 분단운동’인가 하는 논쟁이 대표적입니다. 10대들과 제주4.3에 대해서 대화를 하려면 공감 가능한 질문과 토론 주제를 고안해야 합니다. 제가 가장 자주 활용하는 것은 ‘신촌 회의’ 토론입니다. 

신촌 회의는 1947년 3.1절 발포 사건 이후 제주로 몰려온 응원 경찰과 서북청년단원에 의해 도민들이 무차별하게 구속되고 고문이 자행되던 시기에 있었던 토론입니다. 당시 약 2500명이 옥에 갇혀 제주에서는 수용시설이 턱 없이 부족했고 고(故) 박종철 열사와 같은 고문치사 사건으로 3명이나 숨져 민심이 폭발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극도로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인 상황에서는 온건파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죠.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삼룡 씨에 따르면 무장투쟁 토론은 강경파가 온건파를 12대 7로 눌렀습니다. 그리고 4월 3일 봉기가 시작되었죠. 

중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온건파 쪽의 손을 들었습니다. 목숨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게 학생들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학생은 강경파의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주도민 수만 명이 이 결정으로 인해서 무참히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학생이 저에게 했던 반론은 아직도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 어느 중학생의 말
뜻밖의 반론에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이 질문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나 같이 몰명진 사람만 살아남았다”는 한 4.3 피해자 할아버지의 고백이 떠올랐습니다. “홀로 그 사람의 모습만 더듬어 보아도 수용소 생활에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사람은 집에 돌아와 보니 없지 않은가!”라고 비탄했던 《죽음의 수용소》 저자 빅터 프랭클 박사의 비탄도 떠올랐습니다.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듯 제주의 뜻 있는 영혼은 다 쓸려버렸다는 한 역사학자의 말도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그 중학생의 반문은 어쩌면 ‘산다’는 것에 대해서 성찰하는 뜻 있는 영혼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중학생들과는 《나무도장》을 읽었습니다. ‘나무 도장’에 얽힌 사연으로 시작되는 한 가족의 비극이 제주4.3의 역사와 어우러지며 애잔한 마음을 주는 그림책입니다. 한 학생은 나무도장의 상징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꽃이 있고 열매가 있다. 나무도장은 역사를 상징한다. 작가가 이 글에 나무도장이란 제목을 붙인 것은 4.3사건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이기 때문이다. 굳이 나무 ‘도장’인 이유는 도장으로 찍으면 자국이 남기 때문에 이 책으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4.3사건을 잊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 어느 중학생 글
며칠 동안 장모님을 도와서 귤 묘목을 과수원에 심었습니다. 탱자나무 묘목에 귤나무를 접붙인 묘목이었습니다. 탱자나무는 튼튼하니 귤열매가 영글어도 단단히 붙잡아줄 것입니다. 다만 접붙인 귤 가지 부분이 흙에 노출되면 굼벵이가 갉아먹을 수 있기에 조금 파줘야 합니다. 그렇게 열 그루 넘게 심고 흙 파기 작업을 하고 나서 허리를 한 번 펴고 하늘을 쳐다보니 ‘나무’에 대한 중학생의 비유가 생각나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나무는 기억이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나무로 만든 도장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말해주죠. 제주4.3이라는 기억을 보존하고 인권과 평화, 상생의 가치들이 달콤한 귤열매처럼 영글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각 분야가 연결돼 서로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30년 정성을 들이면 4.3 100주년이 되는 2048년쯤에는 4.3나무로 우거진 4.3숲이 무성하게 자라나지 않을까요?

나를 바보로 만든 책

“기다려줘, 어이, 기다려줘. 명순이, 제발 기다려줘…” 그는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기다려줘, 명순이. 나야, 나쓰미깡이라고. 용서해줘. 기다려줘, 명순이!” 그는 계속 달렸다. 트럭은 관덕정을 지나 멀리 사라졌다.
간수 박백선은 경찰 자격을 박탈당하고, 나흘째 되는 날 ‘하는 수 없이’ 처형되었다…
“나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 「간수 박서방」 《까마귀의 죽음》
12부작 대하소설 《화산도》의 모태가 되는 중·단편집 《까마귀의 죽음》은 제주4.3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기존의 4.3문학과 다릅니다. 제주4.3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결과 인간 존재와 삶의 본질이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간수 박백선은 루쉰의 <아큐정전>에 나오는 아큐처럼 태생도 모르고 이름도 분명치 않은 날품팔이 말라깽이 헌털뱅이입니다. 졸지에 벼락출세를 해서 경찰 임관을 하고 난 직후 그간의 사정을 모른 채 인사를 해오는 옛 동료인 지게꾼과 엿장수들을 대하는 모습은 오만방자합니다. 그랬던 그가 부조리한 현실을 각성합니다. 죄수로 붙잡혀 온 명순에 대한 사랑이 박서방을 변화시켰습니다. 

김석범의 《까마귀의 죽음》에 나오는 인물은 소설가 김유정의 단편들에 나오는 인물과 닮았습니다. 간수 박서방과 허물영감으로 대표되는 밑바닥 인물입니다. 하지만 김유정의 인물은 부조리한 현실에 직접 저항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만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데 머무를 뿐입니다. 《봄봄》의 데릴사위가 자신을 머슴으로만 대하는 장인어른에게 엉덩이로 미는 것처럼 말이죠. 김유정의 소설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사회성이 짙은 작품은 <만무방>입니다. 무거운 소작료 때문에 동생이 스스로 가꾼 벼를 훔칠 수밖에 없는 기막힌 사연을 염치없고 막돼먹은 만무방 형이 뒤늦게 알고 개탄하는 이야기입니다. 김석범의 작품들은 김유정 <만무방>이 보여준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간수 박서방은 사랑을 미처 고백하지도 못했는데 명순이는 학살현장으로 끌려갑니다. 이 순간이 지나면 산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박서방은 명순을 끌고 가는 트럭에 지체 없이 몸을 던져 마지막 고백을 합니다. 이 때문에 경찰에서 쫓겨나고 처형을 당합니다. 남문각이라는 고급 술집에 다니는 아름다운 기생 서푼이는 관덕정 주변에서 처형당한 빨치산의 모가지를 바구니에 넣고 다니면서 신원을 알아내는 일을 하는 허물영감에게 오빠의 모가지를 찾아달라는 부탁합니다. 그러나 허물영감보다 먼저 오빠의 모가지를 발견하고는 여지없이 몸을 던집니다. 마치 파우스트 박사의 마지막 외침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내던집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고 항변하듯. 서푼이 역시 현장에 있던 경찰에게 저격당해 오빠의 유해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길바닥에 고꾸라졌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4.3이라는 학살 현장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체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김석범 작가가 이와 같은 문학적 성취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평생 제주4.3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함몰되지 않았죠. 그는 현재 9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방한해 전국을 다니며 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신과 니힐리즘(허무주의)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죠. 자살도 몇 번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니힐리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들었고, 자살을 하지 않기 위해서 4.3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을 창작했습니다.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는 그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역작입니다. 일본 현지에서는 사소설이 주류였지만 김석범 작가는 주류소설을 따르지 않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4.3소설에 매달렸습니다. ‘한국인의 소설은 2류’라는 일본 문단의 평가절하를 그는 훌륭하게 극복했습니다. 

김석범 소설이 기존의 4.3작품과 다르다는 점을 증명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제주4.3이 아닌 어떤 극한 상황을 놓아도 일관된 메시지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인간 존재와 인간 정신의 보편성을 작품으로 온전하게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제주4.3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지 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어설픈 다른 소설을 쓰고 있었다면 결국 석범이형도 죽었을 거예요, 자살해서”라는 김시종 시인의 말처럼 제주4.3이라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김석범 작가를 죽지 않고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격동기의 약소국 대한민국, 그리고 비극적인 상처를 가지고 있는 제주에 태어난 사람에게 제주4.3은 숙명과도 같지만, 인생을 걸어볼 만큼 가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축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김석범 소설집을 덮었습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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