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67) 때린 놈이나, 맞는 놈이나

* 또린 : 때린. 또린 놈→ 가해자
* 맞인 : (매를) 맞은. 맞은 놈→ 피해자

참 미묘한 건 맞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배 꼬여 돌아갈 수도 있긴 하겠다. 우리 보통의 서민들, 갑남을녀(甲男乙女) 사이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때린 사람과 맞은 사람을 놓고 피차의 잘잘못을 가릴 때, 어느 한쪽이 잘못일 수도 있으나, 양쪽이 모두 잘못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결국 문제는 때렸다는 것과 맞았다는 그 사실이다. 꼭 주먹질을 해야만 됐던 것인지, 또 왜 맞을 빌미를 주어 당하는 칠칠치 못한 짓을 하게 됐는지. 따지다 보면 종국에 가선 때린 사람이나 맞은 사람 양쪽 모두 욕을 얻어먹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기야 때리고 맞고, 엄연히 다른 처지가 됐지만 둘 사이가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 아닐 테다. 곡절이 있을 것 아닌가. 한때 서로 간에 친분으로 죽자 사자 하던 사이인데 일이 그렇게 된 것일 때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가 누구를 원망하고 또 탓하겠는가, 피장파장이지.

가해자나 피해자, 둘 다 문제가 있음을 꼬집을 때 하는 말이다. 음미할수록 인간의 묘한 심리가 녹아 있어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와 유사한 우리 속담이 있다.

‘건지 먹은 놈이나, 국물 먹은 놈이나.’
(건더기 먹은 놈이나. 국물 먹은 놈이나.)

먹을거리 중에 국이나 무슨 탕류는 건더기와 국물이 같이 들어 있다. 떠먹을 때는 건더기와 국물이 구분이 되지만, 일단 먹고 나면 그게 그것으로 구분이 안된다. 하기야 실속을 따진다면 건더기를 많이 먹는 쪽이 훨씬 이득을 본 게 되고, 국물만 먹은 쪽은 실속을 차리지 못한 게 될 것이다.
 
하지만 득실을 구체적인 수치로 계량화하지는 못한다. 어느 쪽이 실속을 더 차렸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이해득실의 차이란 게 그만그만한 것이 된다. 적든 많든 먹은 것은 먹은 것이다.
  
또 당장의 이해관계를 떠나 ‘긴 안목에서 내다볼 수도 있는 일’이라는 의미도 되리라.

거기서 거기란 뜻인데, 유사하게 쓰이는 고사성어가 있다. 많이 회자되는 것이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또는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오십 보가 백 보를 보고 비웃는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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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섰다가도 화해해야 한다. 화해는 사람이 이뤄야 할 소중한 덕인즉.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넘고 있다. 출처=청와대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유래가 있다. 춘추시대 때, 맹자가 양(梁)나라 혜왕의 초청을 받았을 적 얘기다.

혜왕이 맹자에게 일렀다.

“난 마음을 다해 백성을 다스립니다. 하내 지방에 흉년이 들면 하동의 곡식을 옮겨 하내 지방 백성을 먹이고,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면 하내의 곡식을 옮겨 하동 백성을 먹였습니다. 과인의 이웃 나라에는 이렇게 하지 않는데도, 우리 백성들은 불만이 있고 다른 나라로 가니 무슨 이유입니까?” 

맹자가 비유를 들어 말하기를,

“전쟁이 한창일 때, 겁이 난 병사가 갑옷과 투구를 던지고 도망쳐서 백 보쯤 가서 멈췄습니다. 또 다른 병사도 겁이 나 도망치다가 오십 보를 가서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백보 도망친 자를 가기키며 겁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 하자,

“오십 보나 백 보나 도망친 것은 매한가지이니 조금 도망쳤다고 남을 비웃을 수 있겠소?” 혜왕이 말했다. 

그러자 맹자가 말하기를,

“그 이치를 아신다면,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전하의 정치는 백성들에게는 다른 나라와 ‘오십보백보’ 차이이므로 진정으로 전하의 백성을 늘리고자 하신다면, 과다한 세금을 줄이고 약한 자를 정성으로 돌보는 인의(仁義)의 정치를 펴셔야 합니다.”

왕도(王道)를 일깨운 것이다.
‘오십 보다 백 보다’, 실제 별 걸 놓고 자기가 낫다고 다투고 있다. 실소할 일이다.

‘도토리 키 재기’,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다. 다소 별 차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또린 놈이나, 맞은 놈이나’ 매한가지다. 원인이 있었기에 결과가 있는 법. 따지고 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다. 때린 자가 힘의 우월을 내세워 우쭐댄다면 무지한 자로 낙인 찍혀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 피차 화해해 애초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게 상책이 아닌가. 그게 사람의 인정이고 도리다. 

맞섰다가도 화해해야 한다. 화해는 사람이 이뤄야 할 소중한 덕인즉.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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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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