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원 지사의 버거워진 재선도전, 지난 4년의 도정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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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3월 16일 제주시 관덕정에서 제주지사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원희룡 당시 후보. 제주지사 선거 사상 최고 득표율(59.67%)로 당선했던 원 지사는 재선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막이 오른 지방선거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인 지방선거의 막이 올랐다. 전국 각지의 광역단체장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가 줄을 잇는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를 등에 업은 여당 후보들의 기세가 무섭다.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지만 현 추세로는 영남의 몇 개 지역을 제외한 전역이 여당에 의해 싹쓸이될 판이다. 우리지역의 차기 도지사를 둘러싼 경합도 당초 일방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심상치 않다. 

지난 선거 때만 하더라도 한 마디로 ‘싱거운 게임’이었다. 중앙정치판의 큰물에서 놀던 고래 한 마리가 동네 정치판의 우물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고만고만한 개구리들과 힘을 겨뤘으니 승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원지사가 우리지역 사상 최고의 득표율에다 최고의 격차로 당선됐음에도 그것에 걸 맞는 감동도, 경이도 느낄 수 없었던 역설은 그런 연유였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도민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고래의 퇴화

중앙정치판에서 갈 곳을 잃은 “돌아온 탕자”가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된 데는 성공적인 도정을 발판으로 미국 변방의 조그만 촌구석에 불과한 아칸소 주의 지사에서 일약 미국의 대통령으로 도약한 빌 클린턴의 모습을 기대한 도민들의 염원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문대림 후보와의 백중지세는 무엇을 말하는가. 최근 몇 개월간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것을 제외하면 문 후보야말로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 아니던가. 

이전의 ‘괸당’ 도지사들과 비교해도 문 후보는 개구리 급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 후보가 도정을 발판으로 화려한 도약은커녕 현상유지에도 힘겨워 허덕이는 실정이다. 우물 속 공간이 그의 세계의 전부가 돼 버린 것이 아닐까. 큰 인물에 걸 맞는 당당한 정책대결이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진흙탕 싸움은 갈수록 도를 넘을 조짐을 보인다. 고래가 우물에서 놀다가 개구리로 퇴화돼 버린 셈이다. 

알맹이 없는 도정 

그의 지지율이 떨어진 게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의 지난 도정에 대한 도민들의 실망감을 무시할 수 없다. 그의 도정을 “여문 줄 알았던 콩, 막상 까보니 쭉정이” 정도로 총평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혹평에 가까운 인색한 평가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원리가 작용한 것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원지사의 지난 당선은 박근혜 정권의 오만하고 무능한 독선에 날개를 달아주는 데 일조했을 뿐, 그것을 상쇄할만한 뚜렷한 선정(善政)을 보여주지 못했다. 

도민들이 원하는 정책은 외면했고, 원하지 않는 정책은 앞장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례로 주택, 부동산, 교통, 그리고 복지 등 주민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들은 제주도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뒤늦게 타 지역을 답습한 듯한 환승제와 중앙차선제를 제외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만성적인 교통체증은 관광지로서의 쾌적한 환경에 대한 기대는 접더라도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의 교통상황이 차라리 이보다 나을 정도다. 

천민자본주의의 흔적

주택 및 부동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외지 투기꾼들과 중국 투기자본을 필두로 한 부동산 광풍이 제주 전역을 휩쓰는 동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제주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제주도는 교통난이 심각한 시내의 비좁은 공간에 공공임대주택을 몇 채 짓는 ‘생색내기용’ 뒷북 대책을 제외하면 청년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턱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폭등을 즐기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다음 세대의 기본적인 행복권까지 빼앗으면서까지 비정상적인 집 값 상승을 반길 도민은 없다. 

또 국내 최초로 승인받은 영리병원은 어떤가. 영리병원은 한계에 부딪힌 천민자본주의가 인간의 생명과 건강까지 돈의 질서로 편입시키는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의 광기이자, 반(反) 서민 정책들로 점철됐던 박근혜 정권의 막가파식 의료영리화 정책의 산물이다. 영리병원은 단지 의료장사꾼들의 배만 불릴 뿐, 과연 도민들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오히려 제주의 영리병원은 시장경제에서 유일한 청정구역으로 남아있던 건강권마저 경제논리에 무너지는 빌미만 제공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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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세대의 기본적인 행복권까지 빼앗으면서까지 비정상적인 집 값 상승을 반길 도민은 없다. 제주의 영리병원은 시장경제에서 유일한 청정구역으로 남아있던 건강권마저 경제논리에 무너지는 빌미만 제공할 수도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대붕의 비상' 기대난망

사립대학에 대한 지도감독도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도내의 한 비리사학이 원 후보에 대한 적극 지지에 나섰다는 ‘믿지 못할’ 소문은 무엇을 말해주겠는가. 지사로 재임 중 사학족벌의 부당한 학교운영을 소신있게 비판했다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억울하게 해직된 교수들이 줄을 이었지만 원 후보는 중재 책임을 끝까지 외면했다. 기계적인 중립을 구실로 억울한 약자들에게서 눈을 돌리는 도정이라면 적폐세력이 그를 지지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도 충분히 수긍이 갈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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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물론 원 후보 나름의 치적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민들의 눈높이는 전임 도지사들의 ‘괸당’ 정치보다 훨씬 높은 곳에 두고 있었음에도 현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차별성을 보이는데 실패했다. 그의 도정에 감동이 없었던 이유다. 무엇보다도 도민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데 소홀한 것은 구차한 변명보다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 재선에 도전하는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 한 마리 토끼에 전력을 다하는” 자세일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사 자리가 단지 스펙을 쌓기 위한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지난 4년의 도정을 지켜본 현재로선 물고기가 붕새로 승천했다는 장자의 “대붕의 비상”은 기대난망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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