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31) 서홍동 서홍로 용출수

옛 ‘홍로’의 서쪽 중심마을인 서홍동은 논농사를 가능했던 섬에서 몇 안 되는 마을이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폐동된 ‘생물골(生水洞)’이란 동네도 있었던 물자원이 비교적 좋은 마을이다. 서기 476년 백제 문주왕 2년에 제주에서 귤을 공물로 헌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에도 귤은 제사와 귀빈 접대용으로 중요한 과일이라고 적혀있다. 그 바탕에는 생명수인 물이 있었다. 

서홍동에는 제주시 영평동 수수물이나 표선면 토산리 거슨샘처럼 호종단의 헹기물 물혈전설이 전해오는 유명한 용출수인 지장샘(지장새미, 지장천(智藏泉), 지장천[池藏泉])이 용출되어 정방폭포로 흘러들어간다. 이 지장샘은 ‘홍로’을 설촌으로 유지시켜주는 귀한 산물이다. 

구전에 의하면 호종단이 제주에 상륙한 후 지금의 산방산 앞 용머리 ‘절로리코지’라는 바위로부터 바다 쪽 형제섬으로 뻗어 나가는 맥을 잘라 용이 될 것을 막았다고 한다. 그리고 홍로마을에 와서 지장샘의 맥을 끊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지장새미 동쪽에 쉐질매(소길마의 제주어, 짐을 싣기 위하여 소의 등에 안장처럼 얹은 도구) 동산이라는 가시머리가 있는데, 호종단이 물혈을 끊으러 이곳에 왔을 때 지장샘을 이 동산에 감췄기 때문에 산물이 끊이지 않고 지금까지 용출된다고 전해진다. 호종단이 지장샘 수맥을 끊지 못하면서 마을 동쪽(남원방면)으로는 산물이 솟는 데가 드물고 서쪽(안덕방면)으로는 많은 산물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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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장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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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장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홍로마을(서홍동)은 지장샘물로 해서 마을의 인가가 번성하고 매해 풍년이 들어 살기 좋은 지역으로 산남지방에는 가장 오래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 중심지에 위치한 지장샘은 지난 한국자연보호협회(1987년)가 선정한 한국의 명수 100곳 중 하나로 서홍동 천혜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이 산물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는데 바탕이 되어 서홍동 마을이 발전되어 왔으며, 1960년대까지만 해도 지장샘 한곳의 물만으로도 마을주민의 식수로 충분했으며 논을 만들 정도였다. 지장새미케(지장샘 입구에 만들어진 논)라는 지명도 남아 있다. 지금은 논을 만든 곳에 미나리밭을 조성하여 지장샘 맑은 물로 미나리를 재배한다.

해마다 정월 초에 지장샘에서 우물고사 성격의 동제(마을제)를 지내며 마을을 있게 한 음덕을 기린다. 지금의 지장샘은 1988년에 개수한 모습으로 지붕을 씌워 산물이 나는 곳에 철제두껑으로 덮어놓는 등 예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너무 치장되어 있다. ‘지장(智藏)’이란 명칭을 사용한 이유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불교적 관점에서 지장은 땅의 모태인 자궁이란 뜻으로 지장보살은 중생을 교화·구제하고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되는 대비보살이다. 그래서인지 지장샘의 물은 솟아나는 양이 뚜렷이 보이지 않으나 욕심 없이 서민들의 갈증을 풀어주듯 항상 물의 양이 일정하게 솟고 있다. 그래서 ‘더도말고 덜도마라. 지장새미 물만큼만 살라’는 속담이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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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장샘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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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장샘 빨래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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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장새미케 미나리밭.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운천사 건너편 당동산 86번길 남쪽 골짜기에서 솟는 동박낭모생이물(운천수)도 오랜 시간 동안 주민들이 삶과 같이한 산물이다. ‘낭’은 나무, ‘모생이’는 모퉁이의 제주어로 ‘동박낭모생이’이란 ‘동백나무 모퉁이’에서 용출되는 산물이란 의미다. 이 산물은 그 옛날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은 중노동이며, 제주 여인네의 고된 삶은 물허벅에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려준다. 왜냐하면 서쪽 동네 사람들은 한참 떨어져 있는 동쪽 동네 지장샘에서 물을 길러와 사용하는 등 물 얻기가 매우 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마철이 되면 연외천 계곡에 물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물골(물이 나오는 구멍)이 있음에 착안한 마을 주민들이 1957년에 밭 1000평을 팔고 그 재원으로 마을에서 직접 땅을 파서 3년여 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마을의 귀중한 식수로 생명수다.   

1960년 산물 곁에 운천사가 창건되면서 절의 식수가 됐고, 절의 이름을 따서 운천수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제는 절에서 관리하지 않는지 입구도 일부 폐쇄되고 산물 터도 많이 무너져 있다. 다행히도 예전에 사용했던 산물이 솟는 궤의 식수통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물은 연외천 발원지의 물로 예나 지금이나 논물과 식수, 멱을 감는 목욕수로 사철 솟는 홍로천(연외천)인 솜반내(선반내)의 생수가 되어 천지연 폭포의 절경을 연출한다. 솜반내는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등 크고 작은 소로 형성된 하천으로 마을 사람들의 빨래터였다. 지금은 도심 쉼터이자 물놀이 장소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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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박낭모생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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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반내(선반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또 하나의 절경을 만드는 산물이 외돌개가 서 있는 삼매봉 기슭에서 솟아난다. 바로 외돌개물과 쇠우리물이다. 외돌개는 삼매봉(삼매양) 앞 바닷가 쇠머리코지에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바위다. 최영장군이 묵호의 난 때 원나라 목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장수로 위장하여 난을 평정 했다고 해서 장군석으로 부르기도 한다. 

외돌개물은 외돌개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모퉁이에 있는데, 철재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어 산물이라 하기엔 너무 초라하다. 이 물은 한창 인기리에 반영되었던 대장금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용출지점은 산물의 윗동네인 부평초가 만발한 못이다. 못이 집수암거가 되어 지표하수처럼 지표면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다. 

쇠우리물은 쇠머리코지 언덕의 기암절벽을 통해 소폭포를 이루면서 바다로 떨어지는 물이다. 이 산물은 길가에 목재로 사각울타리를 친 못에서 솟아나와 외돌개 바다로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여기에 이런 작은 폭포가 있는지조차 모른 채 그냥 지나치고 있을 때가 많아 아쉽다. 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데크식 쉼터를 만들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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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돌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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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돌개물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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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우리물(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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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우리물 폭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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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우리물 폭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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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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