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32) 호근동 하논 용출수
  
하논은 서홍동과 호근동의 경계에 있다. 예전에는 대답(大沓) 또는 조연(藻淵)이라 하여 ‘연못을 이루고 논이 많다’는 지명을 가진 지역이다. 지금도 1m 정도만 땅을 파도 물이 나올 정도로 예로부터 논농사가 이뤄졌던 곳이다. 주위가 보롬이(보로미)오름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지형이며, 화산폭발에 의해 생겨난 분화구다. 

북쪽사면 기슭에서는 산물이 용출되어 오래전부터 이곳은 논으로 이용되었다. 언제부터 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500여년 전부터 벼농사를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큰 논(大畓)이란 의미의 ‘한논’에서 ‘하논’이란 이름이 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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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논(윗), 천연호수(아래, 복원계획, 서귀포시 자료).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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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논 미르형 화구호(서귀포시 자료).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하논 동쪽으로는 연외천인 솜반내(선반내)가 흐르고 분화구 내의 풍부한 용출수는 하논 전체를 적셔준다. 습지 생물들은 주로 용출수가 고이는 작은 연못과 물이 흐르는 배수로를 기반으로 살아간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하논은 학이 알을 낳는 둥지형이지만 습한 논이라 농사짓기가 매우 불편했다. 여기의 대표적인 산물은 몰망수로 서홍동 모루(마루의 제주어)인 동거지(동거제) 지경에 몰망수라는 물이 솟구치고 있다. 

몰망수는 주로 농사용으로 사용했으며, 몰망수 서북쪽에 있는 ’당물‘은 농부들의 소중한 식수원이 되었다. 몰망수는 약 80평 규모의 연못에서 용출되는 샘이다. 몰망수는 하논 한 장 위쪽에 산물이 솟아나서 넓은 웅덩이가 되고 몰망같은 풀이 자란다고 하여 ’몰망소‘라고 하였다. ‘탐라지’에서는 ‘삼매양(지금의 삼매봉)에 있고 빈조가 많기 때문에 조연이라 부르며, 겡이(게의 제주어)가 살고 있고 동쪽으로 물골(수로의 뜻)를 만들어 논농사를 짓고 있다’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빈조는 물속에서 나서 물위로 떠오르는 풀과 물속에서 자라는 풀을 말한다. 

하논은 습답(흐렁논, [흐렁은 수렁을 일컫는 제주어로 물 빠짐이 좋지 않은 논])이라서 논농사 짓기가 불편하였는데, 지관(정시)이 ‘동쪽 언덕에 몰골(수로)을 파면 논농사가 수월하다’라고 하여 지금의 하논 입구인 동쪽에 수로를 내어 논농사가 수월했다는 말이 있다. 제주에서 벼농사를 ‘나록농사’라 하였는데, 지금까지 나룩농사의 맥을 유일하게 이어오는 곳이 하논이다. 호근대답(好近大沓)이라고 호근리에 큰 논이 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하논의 논농사는 당시에도 제법 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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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망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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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망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몰망수는 약 260㎡의 규모의 못을 형성하고 있으며 1일 용출량은 1000~5,000㎥이다. 격자모양의 인공수로를 따라 2만6000평(8만5950m²)의 논에 유입되며, 하논 분화구에서 가장 낮은 남쪽 화구벽의 수로를 통해 호근천으로 유입되고 천지연 폭포수가 되어 물의 영원한 안식처인 바다로 들어간다. 

하논에는 몰망수외에도 동언새미와 섯언새미도 있다. 동언새미는 하논분지 북서사면에 있는데, 과수원 창고 옆에 있으며 과수원에서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고 당물이라고도 한다. 이 산물은 섯언새미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섯언세미는 웃거지(웃거제)에 있는 봉림사 경내에 있다. 이 산물은 사찰에서 경내에 작은 연못과 식음대 등을 만들고 사찰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사찰입구에는 산물을 하논으로 보내는 배수구를 만들어 주민들이나 주변의 과수원 등에 제공하고 있다. ‘언새미’에 ‘언’은 ‘차갑다, 춥다, 얼다’의 뜻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얼어있는 산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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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언새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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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섯언새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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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봉림사) 입구 섯언새미 배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들 산물들은 용암경계면 바위틈에서 솟아나고 있다. 동언세미가 내리는 곳에 주변의 물을 모아두는 인공수로(동쪽 언덕에 연결된 몰골)와 연결된 인공호수가 있다. 규모로 봐서는 못이지만 여기서는 벼농사를 위해 일부러 인력으로 파서 만든 것이라서 인공호수라 부른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500년 전까지만 해도 하논은 직경이 1km가 넘는 큰 호수가 있었고, 가운데 서너 개의 섬들이 떠있는 울창한 원시림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구호였다고 한다. 그 후에 쌀이 귀하고 식량 사정이 어려워 논을 만들기 위해 화구호의 벽을 허무는 공사가 이뤄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지형이 논으로 바꾸어 진 후 하논의 산물은 외돌개가 아닌 솜반내를 거쳐 천지연 폭포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논분화구는 칼데라지형(화구의 일종으로 화산체가 형성된 후에 대폭발이나 산정부의 함몰에 의해 2차적으로 형성된 분지)으로 분화구 둘레는 3774m이며 정상부 직경은 1000~1150m이다. 분화구 바닥 면적은 21만6000㎡, 전체 면적은 126만6825㎡로 한반도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로 용암이나 화산재 분출 없이 지하 깊은 땅속의 가스 또는 증기가 지각의 틈을 따라 한 군데로 모여 한번에 폭발하여 생성된 화산체다. 지표면보다 낮게 형성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15m의 퇴적층 속에는 빙하기를 포함한 5만년의 기후, 식생, 지질의 변화가 기록돼 있어, 수 만년 제주 섬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다고 한다. 이런 단서의 시작은 천연호수였던 하논의 물이다. 하논의 물 관련 지하수자원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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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논 몰골(수로)과 인공호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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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논 논농사 광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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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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