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37) 염돈동 운랑천

‘염돈(염둔), 고둔’이라 했던 염돈동은 강정동 북쪽에 있는 중산간 마을이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북쪽에 천년송(千年松), 남쪽에 만년(萬年) 팽나무를 심어 마을을 지켜왔다고 하나 지금은 팽나무만이 남아 있다. 제주4.3 때 마을사람들은 강정리 등으로 피난을 갔다가 동산의 모양이 엎드려 있는 용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복용동산’에 재건된 마을이라 ‘신흥(新興)동’이라고 했었다. 염돈은 염소를 모아두었던 곳이라 한다.

고둔이라고도 불린 이 마을의 동쪽 염돈마을 중심에 있는 운랑천(雲浪泉)은 마을의 설촌의 기원이 되는 산물이다. 운랑천은 마을 입구에서 염돈로28번길을 따라 200m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마을 안길 모퉁이에 위치 한 큰 암반 틈에서 솟아나와 남쪽인 바다방향으로 흐른다. 마을 중심에 있는 이 샘은 공동체적 삶의 중심으로 주민의 중요한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되었다. 심한 가뭄에도 이 물만은 마르지 않았는데, 물은 크게 네 칸으로 구분된다. 물이 용출하는 주위로 돌담을 쌓고 첫 번째 칸의 물은 제사용수와 식수로 사용됐다. 두 번째 칸은 음식물을 씻는 곳, 세 번째 칸은 몸을 씻는 곳, 네 번째 칸은 빨래를 하는 곳으로 이용됐으며 이곳을 넘쳐 밖으로 흐르는 물은 가축들을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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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랑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지금의 운량천 모습은 1937년 3월에 시멘트로 단장하여 이용하다가 시설이 낡아 1985년 운량천이란 비석을 세우고 다시 새롭게 제주판석 붙임 형태로 개수했지만 산물 주위를 에워싼 돌담은 옛 그대로 이다. 산물입구에 있는 돌도고리(도고리는 함지박의 제주어)와 길 건너에 원형의 팡돌 등 산물터 흔적으로 알 수 있듯이 개수 전보다 산물터가 많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마을에서 관리를 잘하고 있어 비교적 산물 주위가 깨끗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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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랑천입구 돌도고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탐라시대 때는 운랑천을 중심으로 왕자가 머무는 집인 왕자구지(王子舊址)가 있었으며, 후에 조선초 영곡(靈谷)공 고득종이 그 터에 다시 별장을 지었고 과원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탐라순력도에는 운랑천(雲浪泉)의 동편에 조선시대 조성된 '고둔과원'이 그려져 있고 이 물을 이용해 만든 논과 집이 몇 가구 그려져 있다. 백호 임제는 조선 선조10년(1577)에 제주에 왔다가 ‘남명소승’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고득종의 옛 집을 찾고 “맑은 샘이 돌구멍으로 흘러나오므로 곧 손으로 움켜 마시고 매화 한 가지를 잡아 꺾고는 아쉽게 돌아섰다”라고 기록한다. 임제가 말한 샘은 운랑천으로 예나 다름없이 지금도 창창히 흐르고 있다.

산물에 있던 큰 암반은 개수하면서 없어졌지만 돌담과 함께 구름이 흘러가듯 용처럼 물이 솟아난다는 운랑천은 옛적 탐라시대 왕자가 물을 마시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용 같은 구름 물결만 산물 안에 떠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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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랑천 길 건너 산물터 흔적.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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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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