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72) 검은 닭도 흰 달걀 낳는다  

* 독새기 : 달걀, 계란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겉 희고 속 검은 짐승은 너뿐인가 하노라
고려 말에 조선 개국공신 이직(李稷)이 지은 시조다. 아마, 여말 이성계에 의한 역성혁명을 전후해 뒤숭숭했던 시대 속 인심의 흐름을 은근히 빗대 노래했으리라. 종잡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사람의 마음을 풍자했을 법하다.

까마귀를 검다 하면서 백로야 웃지 마라라. 겉이 검다고 속까지 검겠느냐, 한데 겉은 희면서 속이 검은 건 너인가 한다고 했다. 겉으론 반반한데 속에 흠결을 지닌 사람이 옛날이라고 없었을까. 직설하다 끝에 가서 완곡하게 꼬집으며 뒤틀어 표현의 묘를 살렸다.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되 심중에 은연중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겉이 검은 닭도 흰 알을 낳는다.’ 

맞는 말이다. 털빛이 검다고 해서 검은 빛깔의 알을 낳지 않는다. 비록 순백색이 아닌, 누르스름한 빛깔이긴 하나, 매끄럽고 밝은 색 알을 낳는다. 겉과 속이 엄연히 다를 수 있다. 겉이 검다고 해서 검은 알을 낳지 않고 흰 알을 낳는 것, 그게 본연(本然)이다. 첫머리에 인용한 이 직의 시조와 시상(詩想)이 한 맥락이다.

본연의 구실과 진면목(眞面目)은 겉모습과 무관한 것임을 강조해 이르는 말이다.

번지르르한 얼굴 치장이나 현란한 말솜씨에 가려 그 사람의 본연의 참모습,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수가 왕왕 있는 법이다. 이 경우, 일을 같이한다고 의기투합했다가 낭패를 사는 수가 왜 없으랴. 

옛날 당나라 때도 관리를 뽑는 데 네 가지 기준이 있었지 않은가.

신언서판(身言書判). 

당당한 체모(體貌), 조리 있는 언변(言辯), 빼어난 필적(筆跡)과 사리를 꿰찬 판단력. 오랜 옛 시절에도 그랬거늘 하물며 오늘 같은 복잡하고 메마른 현실 속임에랴. 잣대를 들이대어 몇 점이라고 계량화해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 사람의 속내이지만 상대의 내면을 훔칠 수 있는 예리한 안목을 갖고 있어야 함은 말할 것이 없다.

우리 선인들은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유람하면서도 겉으로만 감탄하지 않았다. 눈앞에 대하는 경물의 진경(眞景)을 보려 했다. 감성의 눈으로 보되 사실적으로 접근해 비경을 바라보며 눈을 번득였다. 좋은 예가 있다.

소향노 대향노 눈아개 구버보고
정양사 진헐대 고텨 올나 안존마리
녀산(廬山) 진면목이 여긔야 다 뵈나다. 
(소향로 대향로 눈 아패 굽어보고
정양사 진헐대 다시 올라 앉으니
금강산의 참모습이 여기[진헐대]에서 다 보이는구나.)
조선 선조 때 문신이요 가객이었던 송강 정 철이 마흔다섯 살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해 내‧외‧해금강을 둘러보고 지은 〈관동별곡〉 중 진헐대의 조망(眺望)을 읊은 대목이다. 고대시가 중 가사문학의 백미(白眉)라 일컫는 작품인데, 여기에 ‘진면목(眞面目)’이 나온다. 사계에 따라 변화하는 금강산의 절경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정 철이 ‘진면목’이라 한 표현에는 언어 선택에 무척 고심했음을 느낀다. 이 한 낱말에 함축해, 언어 구사의 능수능란한 솜씨가 숨어 있다 하겠다. 과연 대가다운 안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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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이 검다고 해서 검은 알을 낳지 않고 흰 알을 낳는 것, 그게 본연(本然)이다. 사진은 논산 지역에서 기르는 연산오계. 출처=한국관광공사.

한데, 〈관동별곡〉에 진면목이 ‘참모습’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예전부터 쓰던 한자라고 해서 그냥 두자는 것이 아니다. 참모습 같은 예쁜 우리말로 고쳐 쓰면 더욱 좋지 않은가.

진면목의 경우 재미난 것은 순화 정도다. ‘순화 대상 용어와 순화한 용어를 모두 쓸 수 있음(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 돼 있는데. 이게 좀 어정쩡하다. ‘진면목’을 쓰든지 아니면 ‘참모습’으로 바꿔 쓰든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어느 것을 써도 괜찮다는데, 그렇다면 왜 굳이 순화어로 ‘참모습’을 적어 넣는가.

‘검은 닭도 흰 달걀을 낳는다.’ 

흰 것은 어디까지나 흰 것이다. ‘진면목’이라는 말이 이쪽저쪽오로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순화한 말인 ‘참모습’ 하나로 통일하면 좋을 것이다. 검은 닭도 흰 알을 낳지 않는가. 하물며 흰 것은 오로지 흴 수밖에 없다.

대인관계뿐만 아니다. 우리말을 바르게 쓰는 것은 민족정신을 고양하고 정화하는 소중한 일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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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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