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43) 서귀포시 상예동 웃열리 용출수

예래는 바위의 형태가 누워있는 사자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부터 연리, 열리(延來, 猊來)라 불러 왔던 예래동은 고려시대에 목종 10년(1005)에 ‘굴메’라는 상서로운 산(군산)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 군산에 예래동의 명칭과 관련된 사자암이란 바위가 있으며, 예래동은 예전부터 물이 크고 양이 많은 동네로 수전동이라고도 했다. 최근에는 반딧불이 생태마을로 대왕수천이라는 예래천을 습지로 조성하여 생태체험관을 설치하여 산물을 테마로 하는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예래현이 설치되었던 예래동은 웃(上)열리라는 상예와 알(下)열리라는 하예동으로 나눠져 있다. 웃열리인 상예동의 설촌이 배경이 되는 대표적인 산물로 구시물, 거슨물, 당남새미, 도육새미, 삼동물, 부채새미, 대왕수, 소왕수, 조명물 등 크고 작은 산물들이 있었다.

구시물이란 약수는 군산에 있다. 구시물은 동남쪽 산중턱에서 나오는데, 구시처럼 생긴 동굴 같은 궤에서 솟아 나와서 ‘굇물’로도 부르기도 한다. ‘구시’는 구유의 제주어로 나무나 돌에 홈을 파서 만든 통으로 소나 돼지의 ‘것’(먹이의 제주어)을 주는 통을 말한다. 이 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줄기가 마르지 않아 옛날부터 기우제를 지낼 때 이 물을 제수로 하여 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한다. 군산은 제주도에는 몇 안 되는 남자형의 숫오름 중 하나다. 아들을 소원하는 사람들이 구시물로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불치의 피부병도 이 물로 목욕을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한다. 지금 이 약수터는 2011년에 민간모임의 지원으로 최대한 산물을 살려 돌도고리(도고리는 함지박의 제주어) 식수통을 설치하여 소박하게 단장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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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산 구시물 약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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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산 구시물 약수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군산과 관련하여 오름 동북쪽 자락인 영실 존자암이 스님들이 겨울을 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존자오름 하류에 거슨물이란 산물도 있다. 이 산물은 일주서로 수정사란 표석이 있는 길로 들어서면 사찰 입구에 못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물은 군산 동북쪽자락에서 한라산 쪽으로 용출되어 거슬러서 흐른다고 하여 거슨물이라 하며 상예2동 설촌의 근거가 되는 마을의 식수로 창고천의 지류인 신양천의 근원이 되는 산물이다. 소하천 옆에 돌담으로 둘러 못처럼 만든 물통은 식수를 위한 통이며, 창고천의 지류인 신양천과 수정사 입구 교량 밑에는 칸을 나눠 빨래나 목욕 등 생활용수로 활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식수통은 군산에서 내려온 물을 보관하여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현재는 식수통의 물은 정체되고 수량도 예전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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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슨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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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슨물 원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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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슨물 빨래터(다리 밑).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상예동 노인회관을 지나 동쪽에 난 가파른 올레길로 내려가면 상예상수원 취수장 앞에 있는 대왕수를 만날 수 있다. 이 물은 남측 아래 있는 소왕수보다 물이 양이 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큰미울(큰이물)’이라고도 한다. 큰미울은 산물이 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대왕수(大王水)'는 한자의 뜻을 빌어 표기한 것이다. 물이 솟는 양이나 힘이 왕 중에 왕이라는 뜻이다. 이 산물은 일제강점기(1930년대)때 용출지점에 식수용 물통을 만들고 콘크리트로 4개의 칸을 구분하여 사용하도록 했다. 대왕수 물터를 자세히 들어다 보면 '왕(王)'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렇게 '왕'자 모양으로 정비하고 대왕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무리 가물어도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 데다 일 년 내내 솟아나 예래동 지역에서 가장 큰 산물을 만들고 있어 대단히 큰물이라는 의미로 왕물이란 표현을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물은 1935년 일본군 삼산부대가 주둔할 때 이 물을 사용하였으며, 1951년 육군 제2훈련소 제2숙영지로 연대병력이 주둔하며 이 물을 사용하여 수력발전을 일으켜 군부대의 전력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상수원으로 상수원보호구역과 대왕수천의 생태습지로 보호되고 있으며, 빨래나 목욕은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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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왕수천과 미나리밭.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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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왕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왕물에 비해 적다는 의미의 소왕물(小王水)이 대왕수 서쪽 30m 떨어진 곳에서 솟아난다. 산물은 암벽 밑에서 용출되는 산물로써 대왕수보다 용출하는 양이 작다고 해서 ‘지는물’이라고도 한다. ‘지는물’은 대왕수에 비교해 산물이 솟는 싸움에서 졌다는 의미이다. 이 산물은 돌담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시멘트 포장된 곳을 제외하고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왕수 물은 식수와 여성들이 이용한 물이라면 소왕수는 남성들의 피로를 푸는 목욕탕의 역할을 한 남자전용 물이다. 이 산물도 이 일대의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빨래나 목욕이 금지한다. 소왕수 바로 곁 남쪽에 미나리를 재배하는 밭이 있으며, 미나리들은 대왕수와 소왕수의 물 힘으로 맛이 유독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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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왕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예래로 141번길 회전교차로 주차장에서 120m 남쪽에 아침 일찍 햇살이 비치는 곳의 물인 조명(照明)물도 만날 수 있다. 이 물은 예전 논에 물을 공급했던 농사전용 물로 1970년대에 이곳에 전분공장이 있었다. 동측에는 예래천과 중문골프장이 자리한다. 1999년 서귀포시청에서 담수욕 시설로 남∙여탕으로 구분하여 설치하여 피서와 목욕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이 산물은 남∙여탕 앞 바위로 둘러싸인 곳에서 용출되며 설치된 파이프를 통해 남∙여탕으로 나눠져 흘러 들어간다. 산물이 솟아나오는 곳은 원형으로 보전되어 있으며, 이 산물은 왕석이 수문장처럼 에워싸서 예전 모습으로, 물 기운이 제일 강하게 만드는 아침 햇살을 받아 맑게 빛나는 물로 살아나서 탕 안으로 힘차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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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물 원류(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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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물 남여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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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물 목욕탕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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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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