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5곳 절 풍경 담아 낸 현을생씨…산문사진집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

'생각은 비어 있을 때 생기고 글은 배가 고파야 나온다.
나는 글쟁이도 아니고 더욱이 머릿속이 잡념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생각마저 올곧게 솟지 않는다.
그럴때 발이 닿는 곳이 절이고 절 마당에서 자신도 모르게 뭔가를 주워 담으려고 애써 서성거리게 된다'

▲ 개심사 마당에 마음을 연 목련화. 배흘림 기둥의 조형미가 그대로 살아있다.

▲ 전국 45곳의 유명사찰의 모습을 담은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민속원.2만9천원)
현직 공무원이 아름다운 전국의 절 풍경을 담은 산문사진집을 냈다. 이미 공직사회에서는 '사진작가'로 널리 알려진 현을생씨(51.제주시 문화관광국장).

전국의 절집을 돌아다녔던 기억을 모아 조그만 책 한권을 냈다지만 사실 20여년 동안 발품을 판 녹록치 않은 작업의 결과물이다.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민속원). 민속전문 출판으로 유명한 민속원에서 펴낸 것도 그렇거니와 250여컷의 절풍경을 담은 형형색색의 고즈넉한 풍경은 말 그대로 넋을 잃을 듯 경건하고 아름답다.

이미 30대에 사진집 '제주여인들'(봅데강.1998)을 낸 그는 민속학자인 故 김영돈 선생과 함께 펴낸 '제주성읍민속마을'(김영돈 공저.대원사.1988)에 이어 올해 '풍경소리...'를 펴내면서 결국 10년 주기로 30, 40, 50대에 맞춰 한 권씩을 낸 셈이 됐다.

'설암산악회' 초대 멤버로 열성적인 산악회 활동을 하다 '너무 위험하다'며 만류한 부모와 주변의 권유로 카메라를 든지도 28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

죄를 많이 짓고 살아온 탓일까

▲ 저자 현을생 사진작가
'왜 이렇게 가슴이 여미어지듯 이 도량에서 꼼짝 못하는 것일까. 세상 풍파에 얻은 상처, 부처님 법공양에 예불 올리니 씻은 듯, 치유된 듯, 사자산 자락에 걸려있는 저 보름달'.

제주시내 절은 모두 찾아봤다는 그는 20여년 동안 전국 각지의 100여곳의 절 가운데 45곳의 절풍경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 360쪽 분량에 담아냈다.

'기차속에서, 시골버스 안에서, 그리고 차창 밖에서 모자라고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들춰내 봅니다'.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임을, 자신의 성공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알게됐다"는 저자의 육성은 마치 자기 고백처럼 들린다.

10~20년 전에 느꼈던 정이 그대로 있는 줄 알았던 그 곳에 경쟁하듯 들어서는 온갖 '중창불사'를 보면서 중압감도 느꼈다는 그의 글 속에는 사라지는 옛 모습의 안타까움이 읽힌다.

▲ 제주의 올래를 떠올리게 한 관룡사
경남 창녕에 있는 '관룡사'를 보며 제주의 '올래'를 떠올리며 가슴이 뛰곤 했다는 작가. 빈터만 남아있는 '사지'에서 되려 마음이 채워지는 감동을 맛보곤 했다는 내면엔 풍경소리에 머물던 바람을 간절히 나누고 싶던 가슴 설렘이 있다.

성철 스님이 10년 동안 선수행하며 처음 대중 설법을 했다는 경북 김룡사.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1년에 한번 열리는 산문(山門)을 찍을 수가 없어 8년째 수행 중인 제주출신 원주스님의 도움으로 마치 성지같은 김룡사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는 그는 "김룡사에서 보낸 가슴떨리는 하룻밤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법흥사에서 만난, 부처님의 마음을 찾는다는 '적멸보궁'.(적멸보궁이란 열반한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 보리수 아래서 맨 처음 적멸 도량회를 연데서 비롯된 말이다).

"적멸보궁은 부처임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성지로 국내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는 그는 "자연이 대변해주는 이런저런 모든 이야기들이 모두 부처의 설법이고 혼탁해진 마음을 씻어주곤 한다"고 말했다.

▲ 성철 스님이 첫 대중설법을 했던 김룡사의 상선전

▲ 화재로 소실된 낙산사. 법당을 두른 '원장'이 성역의 공간임을 알린다.

부끄럽고 모자란 나의 모습을 들춰내 봅니다

'대웅전 옆에 새로 지어진 전각을 돌어서니 냇물소리가 들린다. 긴 겨울에서 언제 깨었는지 이미 맑게 흐르고 아직도 한겨울 같은 내마음도 어서 깨어나라 일러준다. 그 돌아서는 돌담길이 하도 예뻐서 여러 컷 사진을 찍고 산방 찻집에서 스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모과차의 향기를 들어마신다'.

배흘림 기둥이 그대로 남아있는 '개심사'는 아직도 옛날 '해우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제주의 23교구 본사인 관음사는 1908년 비구니였던 안봉려관 스님이 창건한 이래 제주현대사의 아픔인 4.3의 상처를 받으며 많은 유물들이 소실된 곳. 

그는 "큰 스님이 욕할 지도 모르겠다"며 몇 해전 관음사 주변 밤나무가 잘려나간 안타까운 마음도 옮겨놨다.

▲ 감로병을 든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은 동해를 향해있다.

▲ 백의를 걸친 내소사의 관음보살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옮기며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깍은 솔개가 지금의 국사전 뒤뜰에 떨어졌다는 송광사, 지혜를 주는 문수보살의 성지 월정사, 반야산 기슭의 관촉사 등 모두가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삼보일배로 알려진 수경스님과 평화탁발로 수행에 나선 제주출신의 도법스님이 있는 살상사문의 성지는 영원히 지리산을 지킬 것만 같다.

지난해 불타 없어진 낙선사의 모습도 오롯이 되살아 났다.

'불교신자'이지만 솔직히 신자(?)가 아니"

▲ 논산 상계사에서 저자.
"3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며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허기진 마음을 채우고자 찾았던 절집은 결국 또 다른 욕심으로 채우고 오는게 인간인 것 같아요."

'불교신자'라지만 솔직히 절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새벽 '예불'도 하지 않아 '신자'(信者)라'고 할 수 없다는 그는 지금도 절의 고즈넉한 산새소리를 즐긴다.

오랜 시간의 틈새를 찾아 절집으로 향하는 설렘과 행복을 가슴 한 켠에 쌓아두고, 전국을 누볐던 절집에서 흩어진 기억을 정리하기 위해 끝내 용기를 냈다는 작가.

"삼십년이 넘은 공직생활이지만 솔직히 그 것은 내가 사진공부를 하기위해 살아가는 한 방편 일 뿐, 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진작가'라고 하고 싶은 것이 또 욕심입니다".

한편 저자는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제주대 행정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1978년 사진공부를 시작한데 이어 그 동안 '제주여인'을 테마로 해 제주의 곳곳에 흩어진 민속들을 흑백사진에 담아왔다. 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제주도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 중.

그는  문화정책 담당 공무원으로서 '문화는 바로 생활'이라는 메시지를 들려주고픈 욕심으로 '만남의 음악회'라는 자그만 출판기념회를 마련한다.(8월 5일 오후 6시 반. 탐라목석원)

▲ 제주의 관음사

▲ 원래 그는 사찰의 문살을 좋아했다.
▲ 의왕시 청계산 자락에 있는 정혜사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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