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75) 쌍둥이는 집안이 낳게 한다

* 골루기 : 쌍둥이
* 산천 : 선묘. 집안 혹은 가문(家門)

‘골루기’는 쌍둥이의 제주방언이다.

잘 알다시피, 쌍둥이란 한 어머니에게서 한꺼번에 태어난 두 아이를 일컫는다. 똑같이 생겨 짝을 이루는 것을 빗대어 이르기도 하는 말이다.

쌍둥이 출산이 생리적인 것이라 하지만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출산율도 흑인, 백인, 동양인 순이란다. 쌍둥이 출산 분야의 챔피언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로 알려져 있다. 그곳서는 쌍둥이 출산율이 무려 4.5%에 달한다나. 한 집 걸러 하나의 쌍둥이가 태어나는 셈인데, 그 원인이 섭생(攝生)에 있다고 한다. 그들의 주식인 ‘얌(yam)’에 식물성 여성 호르몬 피토에스트로겐이 많이 들어 있어 배란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것. (물론 추측이긴 하나.)
  
고구마를 많이 먹으면 쌍둥이를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속설도 있다. 이는 고구마와 얌이 덩이뿌리식물이라는 유사성에 근거를 둔 것이란다.

거듭 말하거니와, 두 명의 태아를 한꺼번에 임신해 출생한 아이가 쌍둥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일 수밖에 없다. 자연적 인간복제에 가장 근접한 존재가 아닌가. 쌍둥이의 동일한 유전자 형성은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지닌다. 그야말로 인간 생식의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헤어지는 쌍둥이가 직업, 기호, 취미를 공유하며 상당히 비슷한 삶을 사는 경우가 적잖은 것도 신기한 일이다. 아깃적부터 같은 방향으로 머리를 둔다든지, 동시에 같이 울고 함께 키득거리던 것이 자라서도 그런다지 않은가. 같이 웃고 같이 울고 함께 기뻐하고 괴로워하면서….

8f0ad321cf854c7cd8221f892a99642196a6ab52.jpg
▲ 골루긴 그 집 산천이 내운다. 2015년 개봉한 영화 <트윈스터즈>는 기적과도 같은 기묘한 쌍둥이 이야기다. 1987년 부산에서 태어난 쌍둥이 이듬해 각각 파리와 뉴욕으로 입양돼 사만다와 아나이스로 살아간다. 그리고 26년 후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출처=다음 영화.

서울 목동중학교 쌍둥이 축구선수 두 형제는 태극마크를 다는 게 꿈이라는데. 얼굴만 닮은 것이 아니라 공을 차며 호흡이 척척 맞는다고 한다. “쌍둥이라서 그런가 봐요. 둘이 함께 뛰면 다른 사람보다 호흡이 잘 맞더라고요.” 쌍둥이의 말이다.

‘골루긴 그 집 산천이 내운다’라는 말 속의 ‘산천’은 고향산천이라 할 때의 산천이 아니다. 조상의 ‘영기(靈氣)’, 곧 신령스러운 기운을 의미한다. ‘내운다’는 ‘나다’의 사역형(하게 시킴을 나타내는)이니 쌍둥이는 아무나 낳는 게 아니라 조상이 낳게 한다 함이다.
  
쌍둥이는 의학적으로 일란성 쌍둥이라 해서 수태기에 이뤄지는 생리적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선인들은 조상의 영기가 깃들어 이뤄지는 유전성으로 본 것이다. 지금도 민간에서는 그런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비록 세상을 하직했지만 조상의 기운, 이를테면 자손을 염려하는 음덕(蔭德) 같은 게 있어 후손을 낳는 데도 한몫을 하지 그냥 있을 리 만무하다는 믿음 같은 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쌍둥이 출산은 아무렇게나 이뤄지지 않고 모름지기 선영의 뜻이 더해진 결과라 함이다.

민담이나 전설에 등장하는 머리가 두 개인 거인이나 괴물 같은 것들도 이를테면 몸 일부가 붙은 채로 내어나는 샴쌍둥이의 원류인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일이다. 샴쌍둥이는 일란성 쌍둥이의 수정란이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았을 경우에 태어난다고 한다. 이 결합쌍둥이는 20만 번에 한 번 꼴로 태어난다는데 그 절반은 사산(死産)된다는 통계가 있다. 산 채로 태어난다 해도 출산 직후에 사망할 확률이 높으며, 분리수술을 받는 경우고 있지만, 현대의학의 힘으로도 샴쌍둥이 분리수술 성공률은 매우 낮다.

2018년 1월 KBS <인간극장>에서 네 쌍둥이 얘기를 방영한 바 있다. 젊은 부부에게 내려온 네 쌍둥이, 신의 선물인가, 조상의 영험인가. 감격스러웠으리라. 흔치 않은 일이라 요약 나열형으로 풀어 본다.

산모 고보라 씨(34세). 조산 확률 62%라는데, 미숙아의 경우 산모도 아이도 합병증 위험. 태어나자마자 체온조절부터 난관. 주변의 선택유산 권유에도 출산 결심. 네 개의 심장소리를 듣자 눈물이 쏟아짐. 차마 어느 생명을 선택할 수 없어 무조건 버팀. 긍정의 힘이었음. 네 명이 동시에 배를 차니 한 숨도 못 자고 숨이 가쁠 지경. 곡절 끝에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 너무도 작은 1.5kg의 신생아 네 쌍둥이. 드디어 넷이 합체. 본격적인 육아 전쟁에 돌입. 하루 분유 한 통, 기저귀 70장 해치우는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24시간이 부족할 판. 잦은 병원 진찰로, 네 쌍둥이 외출 시, 친정부모, 여동생 가족까지 총 출동, 상상 초월하는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는 얘기.

저 출산으로 미래가 우려되는 심각한 나라인데, 네 쌍둥이 양육에 국가가 얼마만큼 지원하고 있을까. 걱정스럽다. 이게 어디 남의 일인가.

우리 선인들 ‘골루기’에 대해 애정이 각별했던 것 같다. 

‘골루긴 요망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쌍둥이는 예로부터 야무지고 또랑또랑한 데다 매우 영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낀 사실에서 나온 얘기다. 요즘과 달라 예전에는 형편이 어려워 쌍둥이를 낳으면 뒷바라지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더욱이 쌍둥이는 한 아이가 아프면 다른 아이도 함께 아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렵게 키우고 나면 제 앞가림을 톡톡히 해 내매 동네방네 칭찬이 자자했다는 것이다. ‘요망지다’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갖다 붙이는 수식이 아니다. 톡톡 튀거나 앞차 한가락하는 사람을 이른다. 쌍둥이는 출생부터 보통을 넘는가 보다.

과연 조상의 영기나 음덕은 있는 걸까. 효의 실천은 온당한 일이나, 그래서 후손들이 봉제사에, 선산 벌초에 명심해 매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증명사진 밝게 2.png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