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불빛이 공범인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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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그 느낌을 산문으로 쓴다.> 시인 현택훈의 글 <영화적 인간>은 스포일러 없는 영화 리뷰를 추구한다. 영화 리뷰를 읽으면 영화를 보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은 점이 그는 안타까웠다. 영화에 대해 시시콜콜 다 말하는 글 대신 영화의 분위기만으로 제2의 창작을 하는 글을 쓰겠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에 대한 정보보다는 그 영화의 아우라로 쓰는 글이다. 당연히 영화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글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글 중 가장 좋은 글은 그 글을 읽고 그 영화가 보고 싶어지는 글이다.’ 이 코너의 지향점이 여기에 있다. [편집자 주]

[영화적 인간] ③ 조디악(Zodiac), 데이빗 핀처,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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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조디악>의 한 장면. 제공=현택훈. ⓒ제주의소리

미제 사건 파일을 넘겨보는 손은 어떤 손일까. 미제 사건은 구전문학처럼 퍼져 이본이 생기기도 한다. 괴담의 근원이 미제 사건에 있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그 괴담을 퍼트린 사람이 목격자일지도 모른다. 제주도에서는 4.3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몇 십 년 동안 흉흉한 소문처럼 돌았다. 4.3 증언집을 읽다 그 피의 소용돌이에 빠져 앓는 사람도 있다. 

한 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치면 진상이 드러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제 증언할 사람도 몇 남지 않았다.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은 무얼 할 수 있을까. 가령 속냉이골 무덤을 벌초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이나 친척의 무덤도 아닌데 때가 되면 모여서 벌초를 한다. 1949년 1월 12일, 의귀국민학교. 무장대와 2연대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무장대는 대패했다. 이때 목숨을 잃은 무장대의 시신이 속냉이골에 묻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 일은 벌초를 하면서 그들의 무덤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9년 전 이 도시에서 어린이집 여교사가 살해됐다. 남자친구와 다툰 후 남자친구 집에서 나온 피해자는 새벽 시간에 택시를 탔다. 여교사는 일주일 뒤에 시 외곽 농업용 배수로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은 사건 발생 후 9년 만인 지난 봄 유력한 용의자를 붙잡았지만 그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영화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에서 송강호가 그토록 잡고 싶었던 범인. 영화 <조디악>에서는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가 범인을 추적한다. 이 추적기를 멈추는 날에 우리는 범인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완전범죄를 도운 공범이 된다. 단죄되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막강한 별자리에서 공전을 한다. 

살해 당한 여교사가 죽기 전 남자친구에게 보낸 문자 “난 네가 정말 이럴 줄 몰랐어”는 마지막 문자가 되어버렸다. 난 네가 정말 이럴 줄 몰랐어, 이 말은 결국 범인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살인범은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살인범이라고 해서 괴수의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의귀리 전투에서 무장대 90여명이 숨진 그해 8월 15일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본인이 본인에게 건국 훈장을 수여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과 영화 <조디악>의 공간적 배경은 닮았다. 산업화에 의해 조성된 신도시. 공업도시. 그 성장의 이면에서 누군가는 칼이나 총을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이거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도시다. 미제 사건 파일을 넘겨보는 손 중에는 살인범의 손도 있고, 훗날 살인범이 될 손도 있다. 그리고 그 범인을 잡아야 할 우리의 손이 있다. 

1999년 11월 5일 제주북초등학교 옆 아파트 입구 사거리에 주차된 자신의 소나타 차량 안에서 한 변호사가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2006년 3월 14일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심곡약천마을 우물에서 젊은 여성의 시체가 나체로 발견됐다.

현택훈 
고등학생 때 비디오를 빌려보며 결석을 자주 했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처음 쓴 소설 제목이 ‘중경삼림의 밤’이었다. 조조나 심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영화를 소재로 한 시를 몇 편 썼으나 영화 보는 것보다 흥미롭지 않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때 좀비 영화에 빠져 지내다 지금은 새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낸 시집으로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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