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78) 물려받은 집 문지방에서 관솔 쪼갠다

* 지방 : 문지방 (드나드는 문에서, 양쪽 문설주 아래에 가로 댄 나무)
* 솔칵 : 관솔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

희한한 일도 다 있는 세상이다. 이럴 수가. 부모로부터 상속 받은 집 문지방에다 옹이 박힌 나무를 놓고 도끼질을 하다니. 장작이나 나무를 쪼갤 때 받치는 나무토막, 모탕이 따로 있는 법인데. 

자신이 직접 벌어서 어렵사리 모은 재물이라야 애착이 가는 모양. 윗대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거저 얻은 것이라 귀한 줄을 모른다는 건가. 가만 생각해 볼 일이다. 물려받은 집이라고 문지방에다 그 딱딱한 관솔 토막을 올려놓고 도끼로 쪼갠다면 밑에 받친 문지방이 온전할까. 도끼 자국으로 만신창이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제가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지은 집이라면 차마 그러지 못했으리라.

제가 모은 재물이 아니라 귀한 줄 모르는 행위를 나무라고 있다. 불로소득으로 얻은 것이라고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다룸을 빗댈 때 하는 말이다.

이 속담을 통해, 우리 선인들에게도 ‘불로소득’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뼈 빠지게 일하는 사람 앞에 빈둥빈둥 일도 하지 않으면서 호강을 누리는 사람이 옛날이라고 없었을 리 만무한 일. 눈엣가시로 비쳤을 법하다.

‘불로소득’이란, 뜻 그대로 노동에 직접 종사하지 않고 얻어 들이는 이익이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황금비처럼. 공평하지 못한 세상에 불로소득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부정이 뒤섞여 가타부타 말도 많다. 그렇게 굴러간다.

부동산 투자는 바라보는 시각차가 뚜렷한 경우다.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 하면 다들 대단하다고 하는데,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하면 ‘나쁘게 번 돈’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니 말이다. 딴은 맘속으로 부러워하면서도 그런다.

특히 주택에 투자한 경우는 대놓고 ‘나쁘다’고 말하기 일쑤다. 심지어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 나쁜 놈’이라고까지 지탄한다. 그런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벌면 되느냐 함이다. 한마디로 ‘불로소득’의 부당성을 지적함이다.

‘물린 집 지방에서 솔칵 깬다’면서 손 하나 까딱 않고 떼돈을 벌고 있으니, 수단도 가지가지라 함이다. 오죽했으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 했을까. 분명 선입견이 들어 있을 법하다. 건물주가 되면 일없이 놀고먹는다고 생각하는 때문이지만, 다 그러한가.

예화 하나.

벌써 오래전에 방송을 탄 얘기다. 가로수 길에 400억 호가하는 건물주의 일상이 TV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 건물주, 아침에 일어나 골프 연습 뒤, 사우나에 들렀다 점심 먹고 나서 느긋이 오후에 출근해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월세 체크하고 퇴근해 하고 싶은 대로 한량처럼 산다는 이야기. 이거야말로 변명의 여지없는 불로소득이 아니고 뭔가.

하지만 부동산 투자는 불로소득이 아니란 입장에도 눈길이 가곤 한다.

불로소득? 아무런 노력도 없이 단번에 왕창 벌어들이는 소득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부동산 투자를 위해서는 투자할 자본금이 있어야 한다. 그 돈을 얻으려면 이만저만 힘들지 않다. 상당히 어렵고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하고 싶은 것 참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그야말로 많은 노력과 말로 다할 수 없는 인내와 칼로 잘라내 듯 극도의 절제가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상당수가 탈락해 떨어져 나간다 한다.

대출 받고, 이자 내고, 생활비 아끼고, 불안함을 떨쳐내고, 좋은 집에 살지 않고, 가구 안 바꾸고, 여행 안 가고, 외식 삼가고 살면 된다니, 간단하다.

한데 내면은 그리 단순치 않다. 돈 없는 사람이 한 푼 두 푼 저축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가. 하루의 삶은 또 얼마나 고단한 것이며.

절실한 사람은 ‘물린 집 지방에서 솔칵 깨지 않는다.’ 부를 이루려는 확고한 목표가 있는데 말이다. 여건이 뒷바라지 되지 않는데, 하루아침 새 치부는 꿈같은 환상일 뿐이다.

부동산 투자,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라면 이미 누구나 다 하고 있을 것 아닌가.

현명한 자는 자신을 다스릴 줄 안다. 사바세계, 이 욕계(欲界)를 살아가는 중생에게 욕심이란 한량이 없다. 욕망은 한도 끝도 없는 것. 만족을 모른다. 부를 축적하고 나면 명예를 얻으려 하고, 종국엔 권력을 누리고자 혈안이 된다. 부와 명예와 권력, 셋을 모두 거머쥐려 한다는 말이다. 욕심이 끝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아마 감옥이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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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린 집 지방에서 솔칵 깬다.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과 박근혜 전 대통령. 부를 축적하고 나면 명예를 얻으려 하고, 종국엔 권력을 누리고자 혈안이 된다. 부와 명예와 권력, 셋을 모두 거머쥐려 한다는 말이다. 욕심이 끝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아마 감옥이기 십상이다. [편집자] 출처=오마이뉴스.

대통령이 세 평짜리 감방에 수감됐다. 불로소득으로 이룬 거대한 부에 만족하지 않고 명예와 권력을 추구한 결과 감방이 종착점이 됐다. 온종일 벽을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부귀영화의 몰락이다. 참혹하다.

귀한 줄 알아야 한다. 작고 소소한 것도 값지고 소중한 것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물린 집 지방’이라고 소홀히 여겨서야 될 일인가. 거기다 옹이토막을 놓고 도끼로 후리 치다니. 사물의 이치를 눈여겨보고 흐르는 땀의 의미를 곱씹으면 자가당착에서 벗어나게 되리. 할 만큼 했거든 몸도 마음도 은일자적(隱逸自適)에 놓을 일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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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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