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49) 조천리 개낭개바당 산물

조천초등학교 뒤편 중상동 포구를 개낭개바당이라 한다. 바당은 제주어로 바다, 개낭의 ‘낭’은 나무, 그리고 개낭은 개똥나무를 뜻한다. 개똥나무 잎은 누린내가 난다하여 누리장나무라고도 부른다. 줄기, 뿌리, 잎, 꽃 모두를 약용하는데 특히 잎에 항산화성분이 있기 때문인데 한약재로 쓰이는 나무이다. 이 개낭개바당은 수룩물, 엉물, 도릿물, 절간물, 두말치물 등 산물들이 여기저기서 무수히 용출되고 있어 바당이 산물이고 산물이 바당인 산물 보고(寶庫)이다.

1개낭개 바다 산물 전경.JPG
▲ 개낭개바다 산물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수룩물은 조천초등학교에서 바다방향으로 120m 거리에 있는 산물로 남자목욕용과 여자식수용으로 두 군데서 용출된다. 여자용은 조천1길 모퉁이 주택을 경계로 하여 제주석을 붙인 시멘트 담 안에 작은 식수통과 일자형 빨래터 구조로 개수되어 있다. 남자용은 바닷가 코지(곶)에 있으며, 이 산물은 물팡 등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암반 옆에 만든 식수통에서는 물이 없으며, 산물은 아래 만들어진 목욕터 흰모래의 하상을 뚫고 솟아난다. 남자용 수룩물 동측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광장 아래 바닷가 암반 틈에서도 빌레물이 솟아난다. 자연 그대로 산물 주변에 시멘트벽으로 보호시설을 세워 보존한다.

2. 수룩물(여자전용).JPG
▲ 수룩물(여자 전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3 여자전용 수룩물.JPG
▲ 여자 전용 수룩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4 수룩물(남자전용).JPG
▲ 수룩물(남자 전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5 빌레물.JPG
▲ 빌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차갑기가 산지천 물과 맞먹는다는 엉물은 제주자리물 건너편 조천초등학교 바로 뒤 바닷가에서 용출된다. ‘엉’은 ‘언덕’을 의미하는 제주어로 엉덕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엉물이라 부른다. 엉물은 세 지점에서 용출되는데 남자와 여자 전용, 그리고 빨래터로 나누어 사용한다. 서쪽에 있는 남자 전용은 길가에 있지만 출입구가 주택 사이에 만들어져 있어 개인집 출입구로 착각하기 쉽다. 산물은 올레와 일인용 독탕과 일자형 대중목욕통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동측 곁에 있는 여자용은 빨래터가 있는 길가에서 출입할 수 있는데, 별도의 물통은 없고 목욕용으로 사용하면서 물통 전체가 식수통으로 사용되었다. 식수통은 길가에 있는 빨래전용 산물에 있으며 일자형 물길을 만들고 빨래터로 사용했다.

6 엉물 남자전용.JPG
▲ 엉물(남자 전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7 엉물 남자전용.JPG
▲ 엉물 남자전용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8 엉물 여자전용.JPG
▲ 엉물(여자전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9 여자용 엉물.JPG
▲ 엉물 여자전용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10 엉물빨래터.JPG
▲ 엉물 빨래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앞빌레물은 수록물과 엉물 사이 쉼터(정자)가 있는 길가에 있다. 이 산물은 빌레(너럭바위) 앞에서 나는 물로 도로를 확장하면서 산물터가 많이 축소되었는데, 작은 식수통과 빨래터를 갖고 있다.

▲ 앞빌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엉물 가기 전에 길가 바닷가에 있는 새물(생이물)은 조천조등학교 후문 앞 주차장 곁에 있는 삼각형 형태의 산물이다. 이 물은 새처럼 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산물 바로 곁에 있는 동측 빌레에도 되물이란 산물이 있다. 이 산물은 바위틈에서 솟는 물로 한번 뜰 수 있는 곡식을 계량하는 되 정도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은 식수통은 없고 일자형 빨래터만 갖고 있다.

▲ 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개낭개엉물은 가마우지를 뜻하는 ‘오저여’ 뒤쪽 불터개에 있다. 불턱은 해녀들이 바다 밭일을 마치고 나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쬐는 곳이다. 이 산물은 해녀들이 목욕물로 사용했던 물로 지금도 암반과 모래로 덮어 있는 바닥을 뚫고 솟아나고 있다.

▲ 개낭개엉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개낭개 엉물 용출 광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도릿물(도리물)은 사찰 양진사로 가기 전 조천항 서편 안쪽 주택 옆에 숨어있는 산물이다. ‘지면 위에서 일어나는 거울 현상’인 지경(地鏡)을 뜻하는 제주어인 ‘도리, 도레’에서 이름이 파생됐다. 식수통에서 솟는 물이 거울같이 맑다는 물이다. 이 산물은 약간의 단차를 둔 사각식수통과 빨래터가 있으며, 최근에 돌담과 주변이 보수되었다.

▲ 도릿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도릿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절간물이란 산물이 거리를 두고 두 군데서 용출되는데, 하나는 대웅전 뒤 우물 형태로 되어 있고 솟는 양이 적어 족박물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양진사물이라 하여 대웅전 동측 곁에 식수통과 빨래터가 돌담으로 격리된 형태로 만들어져 절간의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물이다. 이 물은 빌레(너럭바위의 제주어)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빌레물로도 부른다.

▲ 족박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족박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양진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절간물은 숭어가 많이 나서 숭어통으로 불린 웅덩이 인근 바닷가에 있다. 이 산물은 수룩물에서 서쪽으로 100미터 가령 떨어져 있으며, 예전에 이곳에 사찰이 있었고 사찰에서 주로 썼다고 해서 절간물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21 절간물(숭어통).JPG
▲ 절간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조천항 안쪽 연북정 서측에 두말치물이 있다. 이 산물은 한번 뜰 수 있는 물의 양이 두말 정도라고 하며, 산물 입구에 치수비가 세워져 있다. 그늘막 시설이 설치되어 있으며 식수통이 한라산 방향으로 역행수로 거슨물이다.

22 두말치물.JPG
▲ 두말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23 두말치물 내부.JPG
▲ 두말치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장수물은 연북정 옆 도로 사각암거 밑에 보존되어 있다. 이 산물은 옛 조천진성을 지키는 장수들이 먹었던 물에서 연유된 물이다. 이 물에 대해서는 설문대할망이 한발은 장수물에, 또 한발은 관탈섬에 발을 디디고 빨래를 했다는 전설이 있다.

24  장수물 입구(좌측 암거).JPG
▲ 장수물 입구(좌측 암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25 장수물 내부.JPG
▲ 장수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도로 밑에 있는 산물로는 억물도 있다. 억수동의 산물로 주택 옆 복개된 도로 밑에 있다. 이 산물명의 억(億)은 셀 수 없이 많은 수라는 개념으로 용출량이 많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물도 장수물처럼 도로 밑 식수통과 둘로 나눈 일자형 빨래터를 갖고 있다.

26, 억물.JPG
▲ 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그 밖에도 많은 물들이 개낭개바당에서 솟아났으나 많이 없어지고, 특히 저녁에 물을 떠서 밥을 지어 먹을 때 물을 떴다는 저녁물이란 산물도 있었다고 하니, 산물의 익살스러움이랄까 해학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신촌에는 아침밥을 짓는 조반물이 있기 때문이다.

연북정 남쪽에는 정중당물이란 당(堂)의 물이 된 산물도 있었다. 이 물은 도로가 나면서 지금은 매립되었는데 전설 하나가 전해 내려온다. 과거 관음사 절터로 이주한 여인이 배 여럿 척으로 장사하여 부자가 되어 죽으니 마을에서 ‘정중당“이란 신으로 모셨다는 전설이다. 

이들 산물들을 설촌의 역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주제다. 이를 토대로 마을을 알리고 소득을 증대할 수 있는 일종의 ‘무레길’(물 문화 길)을 탄생시켜 활성화 시켰으면 한다.

# 고병련(高柄鍊)

cats.jpg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