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50) 신촌리 새마슬 산물

설촌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이다. 그래서 신촌은 설촌 당시에는 해안가가 아니라 ‘숙군’이라는 산간마을이었으나 식수 곤란으로 물을 찾아 해안가로 내려온 마을이다. 옛 이름은 새모슬(새모을)이라 했으며 ‘새로이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신촌리에는 큰물, 말물, 남당물, 단물, 엉창물, 수물, 조바물 등 많은 산물들이 해안가에서 솟고 있어 물을 찾아서 해안가로 내려왔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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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선창 전경[동편물(좌), 말물(중앙), 큰물(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마을에 물에 관련된 동네의 명칭으로 대수동이 있다. 대수동은 설촌 당시에 큰물(大水)을 중심으로 주변에 마을이 들어서게 되면서 ‘큰물이 있는 동네’란 의미이다. 큰물은 신촌리를 대표하는 산물로 마을의 주 식수원이다. 간조(썰물)인 때는 감수(담수)가 되고, 만조(밀물)인 때는 물이 혼합되어 기수(담수와 해수가 혼합된 물)가 되는 산물이다. 이 산물은 용출량이 많고 마르는 일이 없어 큰물이라고 한다. 물은 크게 세 가닥으로 솟고 있으며 보호시설인 돌담 넘어 포구에서도 물이 솟고 있다. 또한 주변에 산물들이 많아서 물 군락을 이루며 각기 제 몫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 물에서 연중 목욕을 하면 평생 건강을 유지하며 장수한다고 신성시했다. 화향수(花香水)로 여길 만하다. 현재는 식수통 1개를 가진 여자 전용 물이다. 흘러내린 물을 받아 빨래 등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일자형 빨래터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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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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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물 동측 바로 옆을 보면 원형 통 안에 물이 있으며, 여기서 다시 동쪽 20m 쯤 떨어져보면 시멘트 울타리에 둘러싼 곳에도 물이 있다. 이 모두 큰물과 물줄기를 같이 하는 산물이지만 용출하는 지점에 따라 마을사람들은 곱가르듯(소유를 나타내는 의미의 제주어로 내 것과 남의 것을 명확히 할 때 사용) 물을 용도별로 이름을 정하여 한 방울도 쓸데없이 버리지 않도록 사용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큰물 서쪽에 있는 물은 서편물로 부르며 식수 전용의 여자 목욕탕으로 사용했다. 가운데 있는 물은 남자 전용으로 목욕하거나 우마용 식수용으로 겸하기에 말물로 불렀다. 동쪽 물은 주로 빨래터로 사용한 여자 전용의 동편물(동쪽에 있는 물의 의미)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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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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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들 산물 중 큰물인 서편물은 마을가꾸기 사업 때 식수통만 놔두고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이란 개념을 도입하여 지붕을 씌우고 개수했다. 말물은 시멘트로 돌 틈을 매운 돌담 위에 다시 1미터 정도 동담을 쌓아 올렸지만 그나마 예전 모습으로 보전되고 있다. 동편물은 새마을운동 때 돌담을 사각 형태의 시멘트벽으로 보강하는 등 개수 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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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편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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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편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물 서측에는 어선·해녀의 일을 관장했다는 ‘남당하르방’을 모셨던 당의 남당물이 있다. 암반 밑에서 솟아나는 이 산물은 개수하면서 수영장처럼 큰 사각통 하나로 만들어 해안가 못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수심이 꽤 깊어 지금은 성인 남자들이 목욕하는 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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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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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들이 개수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옛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도록 형태를 유지하면서 마을 스스로 보호시설을 갖추고 관리를 하고 있어 다행이다. 다만, 산물 입구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은 옥(玉)의 티다. 마을을 만든 생명수라는 산물 입구에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하는 일이 과연 정당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주의 보배로운 천연 자원으로 ‘땅 속의 보물’ 지하수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보전에 등한시 하고 산물 주변에 공중화장실을 만들거나 쓰레기 수거함 등을 설치하는 행위를 종종 볼 수 있다. 어쩌면 두 개의 얼굴을 한 야누스처럼 한쪽에서는 보전을 말하면서 훼손하는 이중적 행위를 아쉽지만 산물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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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편물 입구 화장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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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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