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53) 신례리 공천포 산물

예전엔 호촌(狐村) 또는 예촌(禮村)이라 했던 신례리는 상예촌과 하예촌으로 나누고 난 후 새롭게 생긴 마을이다.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으로 마을을 감싸듯이 지귀도 너머 태평양의 대해를 바라보는 곳에 설촌된 마을이다. 예부터 예절 바르고 양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한 신례리는 해안 식수가 좋았다고 한다. 특히 신례2리인 공천포는 해안마을로 모살왓(모래밭)이라 불렸던 검은 모래사장과 산물이 샘솟아 여름철 해수욕장으로 활용되는 한편,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처럼 모래찜질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공천포는 '맛이 좋은 샘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공샘이(공샘이:貢泉味, 공천미, 공세미)라 불리다가 그 이후 포구(浦口)가 축성(築城)되면서 포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공천포(公泉浦)'라 개명되었다고 한다.

공천포의 대표적인 산물인 영등물은 영등할망물이라고도 하는데, 이 물은 공천포 바닷가 모래밭을 유심히 보면 검은 모래 사이로 암반이 돌출된 곳에서 암반 사이사로 용출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예부터 마을에서는 마을 중심 동쪽 해안가에서 용출하자마자 곧 바로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어 해산물이나 농작물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풍농신인 영등할망이 이 물을 통해 들어왔다가 나간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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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물(영등할망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영등물은 물맛이 좋고 차갑기로 유명하여 아무리 가물어도 물은 마르지 않아서 가뭄 때에는 인근 마을에서까지 이 물을 식수로 길어다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여름철에는 영등물 주변에 있는 검정모래 이용하여 모래짐찔을 하고 이 물로 몸을 씻으면 신경통과 잔병들이 낫는다고 해서 참살이 치유에도 유명한 산물로 알려져 있다. 예전 호촌현이 설치되었을 당시에는 현청(縣廳) 및 관청(官廳)의 식수와 제사 등의 행사시에 필요한 청정제수(淸淨祭水)로 공천포에서 나는 생수인 영등물을 사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물은 썰물시 이용하는 날물로 물때를 잘 맞추어 물을 기르거나 멱을 감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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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물 용출 광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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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물 피서 광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검은 모래사장과 모래찜질로도 유명한 공천포에는 영등물만 있는 게 아니다. 영등물에서 동측 50m쯤 떨어진 해녀탈의장 주변에도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사발통이란 산물이 있다. 이 산물은 이 일대에 산재된 궤(동굴형태의 바위그늘집을 가리키는 제주어)와 같은 용암바위 틈 여기저기에서 용출되는 물로서, 사발처럼 가둬서 식수와 빨래터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도로를 개설한 뒤로 궤처럼 생긴 용암바위들은 많이 멸실되었지만 지금도 산물이 가장 크게 솟는 곳인 도로 밑 해안 경계에 사각형태 시멘트 보호시설(87년 7월 22일)이 흔적이 남아 있으나, 태풍으로 인해 빨래터와 보호시설이 파손 방치되어 흉물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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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손된 사발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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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발통 용출 광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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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손된 빨래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무너진 시설 일부 돌담과 그 옆에 사발처럼 만든 통에는 ‘빨래금지’라는 경고문이 바닥에 쓰여 있는 채 유물처럼 남아 있다. 사발통이 있는 공천포 해안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기에 지금이라도 방치된 산물을 재 복원하여 지역주민과 탐방객들의 쉼터가 되었으면 한다.

7. 무너져 유물화된 빨래터 돌담.JPG
▲ 무너져 유물화된 빨래터 돌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8. 사발모양으로 만든 식수통.JPG
▲ 사발 형상의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영등물은 솟는 물의 양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많은 양이 용출되고 있으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물이 처음 난 모습대로 용출되어 바다로 흘러가 고 있다. 이 영등물은 모살왓 모래사장의 암반 틈에서 솟고 있어 언 듯 보기에는 바닷물이 스며들어 흘러 나가는 것과 같이 보여 직접 만져보고 손으로 떠서 맛을 보기 전에는 물이 차고 신성하는 것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만지면 산도록(시원)하고 마시면 오도록(차가움)한 느낌을 주는 이런 체험이 어쩌면 산물이 주는 묘미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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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로 떠나는 영등할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영등할망
음력 2월 초하룻날 찾아와서 2월 15일경에 떠난다고 알려진 풍신(風神:바람신)이며 풍농신(豐農神) --> 어업이나 농업에서의 풍요를 기원 (제주 지역에서는 해산물이나 농작물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풍농신으로 더 알려진 신)

# 영등(靈登)
옛날부터 민간에서는 음력 2월을 영등달이고 부르는데, 정화수를 떠놓고 빌거나 제를 올리며 평안을 기원했다. 영등은 바람을 일으키는 신으로 영등할망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천계에서 살다가 음력 2월 초하룻날 내려와서 23일에 올라간다고 믿었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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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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