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레오폴드 랑케)’이기도 하며,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E.H. 카)’이기도 하다.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부터 인류가 지구상의 주인이 된 현재까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역사는 쌓여왔다. 이 아득하게 오래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인간은 특별한 사건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해왔다. 고대․중세․근대, 고생대․중생대․신생대,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등등.

이러한 역사의 구분에 있어 지질학적 시기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새로운 용어로 지칭되고 있다. 바로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이다. 인류세는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 화학자인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로,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생태계 침범을 특징으로 하는 현재의 지질학적 시기를 말한다. 다소 생경하지만 신생대 제4기의 홍적세(洪積世)와 지질시대 최후의 시대이자 현세인 충적세(沖積世)에 이은 전혀 새로운 시대로 명명한 것이다.

최근 발표된 기후과학자들의 ‘인류세에서 지구 시스템의 궤적’이라는 연구에 의하면 2015년 채택된 파리기후협정의 목표, 즉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시기 때보다 2도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가 달성되어도 지구의 온실상태는 더 심해질 것이며, 산림훼손과 빙산 해동 등이 상호작용해 기온 상승을 지속시킬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과거와 구분해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로 명명하는 특별한 사건은 바로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다. 지구의 역사가 이어져 가는 무한한 시간 중에 그 흐름을 바꿔낸 주체가 우리 자신, 바로 인류인 것은 고무적이나, 인류가 행한 것이 ‘환경파괴’라는 것은 무겁게 다가온다. 인류가 인위적으로 바꿔온 지구의 환경이, “파괴”로 귀결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지구의 자연환경 파괴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걱정과 우려는 전지구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기는 하나, 피부로 느낄 만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최고 기록을 갱신, 또 갱신하고 있는 폭염과 열대야, 그로인한 온열질환자 속출, 고수온 양식장 피해, 농작물 화상병과 가뭄 피해, 가축 피해는 다시 물가 폭등으로 이어져, 언론에서는 ‘피해속출’, ‘상상초월’, ‘피해눈덩이’등의 수식어로 지금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비단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이 폭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난화로 제주에서만 재배 가능하던 한라봉 등이 남부지방에서 재배할 수 있게 됐고, 제주도 해역에서 아열대성 어종이 어획되는 등 어종 분포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예로부터 태풍, 홍수, 호우, 해일, 폭설, 가뭄, 지진 등 자연재해는 하늘의 일로,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졌으나 ‘인류세’라고 명명되는 현재를 볼 때 이것이 단순히 하늘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김태석.jpg
▲ 김태석 제주도의회 의장 ⓒ제주의소리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폭염위험지도 활용방안 보고서(2003~2012년)는 제주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벌써 5년째 제주에 위험신호를 보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대로 된 대책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눈앞에 닥친 기상의 변화에 따른 단기적 대처와 함께 인류세로 명명된 현재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또한 시급히 마련되고 착실히 추진돼야 할 시점인 것이다. 거대한 기후변화의 흐름에 대해 조금 더 조급하게 준비해야 한다.

제주의 역사가 기록됨에 있어, 우리의 후대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기점으로 기후변화를 대응할 시기를 놓쳐 제주의 환경을 파괴한 시대로 기록되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 김태석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