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59) 하귀2리 귀일포 산물

하귀2리는 옛 귀일촌의 중심 마을로 아득한 상고시대 때부터 사람이 집거한 선사유적이 남아 있다. 삼별초 항몽군이 입거하여 항파두리성을 축성하고 여몽 연합군에 저항한 근거지이기도 하다. 당시 항파두리성이 함락하면서 전화(戰火)의 피해를 입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한때는 고성천을 경계로 서쪽에 있어서 서귀리라 했다.

이 마을 설촌의 유래가 되는 산물로 미수물(味水, 입니물, 일미수, 일미세미)이 있다. 이 산물로 동네를 미수동이라 하며 옛 귀일촌의 설촌 시초 마을로 구리(龜里)라고도 했다. 구리(龜里)라 함은 지형이 거북이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미수물의 의미는 ‘임(님) 있는 물’인데 과객이 물을 마셔보고 맛이 좋다하여 미수(味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미수동 주민의 식수로 절대적인 산물이었다. 

이 산물에는 1954년에 개수하고 그 공로를 기린 ‘일미물 치수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일미물의 유래는 정조18년 갑인년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수산봉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제주목사(이형상)가 이곳을 지나다 이 물을 마시고는 물맛이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이 매우 신성시하는 회향수(花香水)로 마을 제사 때도 사용한다. 이 물을 이용하여 기우제를 지냈다고 비문에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위해 2001년 ‘미수동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한 후 동민들의 동의를 얻어서 공식적으로 ‘일미샘’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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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수물(일미샘)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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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외에도 옛 귀일포구였던 가문동 입구에도 수무리물이란 산물이 있다. 이 산물은 몽고군이 주둔하면서 병마를 조련했다는 원병대 거주 마을에 수문장이 먹었던 물이라서 수무리물이라고 한다. 가문동 주민의 주 식수원이기도 했다. 수무리물 위쪽에 원나라 때 수문장이 지켰다는데서 유래하는 무수위동산이 있다. 산물이 솟고 있기 때문에 물동산이라 한다. 이 산물은 계단식으로 3칸으로 나누어 사각 지붕을 씌운 슬라브 구조물로 만들었다. 수무리물이 또 다른 뜻으로는 수물(二十)+물(水)로 20명정도 사용할 수 있는 물이 나온다는 의미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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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무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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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무리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여기서 해안도로로 빠져나가는 가문동 길목인 가문동 서쪽 구엄리 방면에, 길게 나간 큰 고지란 가문코지(곶)에는 큰물이란 산물이 솟는다. 이 산물은 길가에 있어 도(道)를 붙여 ‘큰물도’라고 부르고 있으며 주로 구엄리 사람들이 식수로 활용하였다. 2005년에 지금의 콘크리트로 구조물로 산물통을 만들고 전망대용 비가림 시설로 개조하여 마을청년회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여름철 피서용으로 남자들이 목욕하는 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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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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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도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하귀2리 바닷가에도 바다밭을 지키는 크고 작은 산물들이 솟아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산물은 뒛개물과 두숨물이다. 

마을 뒤쪽에 있는 미수포구 안에 두 군데서 산물이 솟아나는데, 동쪽에 있는 큰 산물은 뒛개물(뒤개물), 서쪽 돌감경계에 있는 것은 터진물이라 부른다. 뒛개물은 포구에서 쓰던 식수로 방치되어 오다가 2014년에 바람직하게 잘 복원되었다. 산물은 남동쪽 바위 틈에서 솟아나고 있으며 작은 소(沼)은 통을 채우고 있다. 터진물은 조그만 웅덩이로 되어 있는데 용출량이 크지 않아 물이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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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뒛개물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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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뒛개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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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진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뒛개물에서 동쪽으로 130m 되는 지점인 미역밧(밧은 밭의 제주어)에는 미역밧물(할망물)이란 산물이 용출되고 있다. 이 물은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은 산물로, 할망당에 정화수로 사용한 산물이라 할망물로도 불린다. 이 산물은 언뜻 보면 바다 빌레(너럭바위) 같이 착각할 수 있는데, 암반을 그대로 살려 돌담을 쌓고 틈을 시멘트로 메워 산물 터를 만들었다. 산물은 두 군데로 나눠 물통을 만들었는데, 관 리부재로 일부가 허물어져 있다. 그러나 산물은 여전히 솟아나와 주변을 해안 갈대습지를 만들었다. 이 산물도 뒛개물과 같은 복원방식으로 원형을 최대한 살려 복원하여 마을의 숨은 명소로 보존하길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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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밧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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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밧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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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밧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두숨물은 미수포구에서 북서쪽으로 240m 거리인 섯(서쪽)작지에 있다. 마을사람들은 ‘두수물’로 부르는 산물로 미수포구에서 이 산물까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원래 이 산물은 반원형 돌담으로 둘러싼 산물 터에 두 칸으로 식수통과 빨래통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지금은 자연적으로 용출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무엇보다 흔히 보던 산물의 전경은 아니지만 바다와 어우러지는 게 특징이다. 두숨물은 두 번 숨을 쉬는 물이란 뜻으로, 한자로 표기하면 두(二)+숨(息)+물(水)이다. 이 물은 해녀와 연관된 물이다. 숨(息)은 해녀들이 바다 속에 자맥질하여 숨이 다할 때까지 작업을 하고 나오는 것이다. 한 번 하면 한 숨이라 하고 두 번하면 두 숨이라 하는데, 두숨물은 두 번 자맥질하면 그 이상 해산물이 없다는 뜻을 가진 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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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숨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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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숨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두숨물 서쪽 건너편 넙덕빌레(넓은 빌레)에 구젱이촐리물이 있다. ‘구젱이촐리’는 제주어로 ‘구젱이(소라)+촐리(꼬리, 주머니)’의 합성어다. 이 물은 큰 암반의 궤(동굴) 안에서 솟아나나 그냥 바위로 알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우연히 이 산물을 발견하고는 바위가 산물이고 산물이 바위가 되는 자연의 신비감에 큰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숨은 비경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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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젱이촐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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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젱이촐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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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젱이촐리물 내부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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