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61) 구·중·신엄리 엄쟁이 산물

엄쟁잇개 주변에 형성된 마을인 엄쟁이는 마을 남서쪽에 용마루라 명명된 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부드럽고 온순한 용이 승천할 때를 기다리는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마을로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왔다. 엄쟁이(엄장리)는 풍수지리상 학의 머리라는 두학(頭鶴)동산이 마을의 삶을 지켜주듯 마을을 향해 앉아서 바라보는 모습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마을이다. 지금은 한자표기로 ‘엄장(嚴莊)’에서 ‘장(莊)’을 생략하여 구엄, 중엄, 신엄을 통틀어 말한다. 일설에 의하면 엄쟁이를 ‘염쟁이’라고도 하는데, 엉장(낭떠러지) 있고 소금밭과 소금창고가 있었다는데서 ‘염장’이라 하다가 엄쟁이로 변했다고 한다. 

구엄리에서는 모아니물이란 마을 옆 하천에서 모아진 물을 사용하거나, 구엄리와 하귀리 가문동 경계에 있는 큰물도의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중엄과 신엄은 거리가 멀어 큰물도의 물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새물과 노꼬물이 바닷가에서 솟는다.

엄쟁이의 대표적인 물은 중엄쟁이라고 했던 중엄리(重嚴里)에 있는 새물이다. 새물은 대섭동산(竹葉)에 자리를 잡고 중엄리를 설촌하면서 석벽(石壁)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산물을 식수로 사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로 만들어진 물’이라고 해서 새물이라고 한다. 실제 새물을 둘러싼 주변 형상은 새가 둥지에 웅크려 앉은 모습처럼 보인다. 예전에 이 산물은 10m가 넘는 낭떠러지 바위절벽 밑에서 솟고 있어서 식수를 길러 오기가 매우 힘들었다. 바닷물까지 들어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합심하여 1930년 방파제를 쌓고 길을 내어 사용했다. 1930년 당시 넓이 2m, 높이 4m, 길이 10m인 방파제를 쌓는데 1200여명이 동원되고 약 8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1. 새물입구n.JPG
▲ 새물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2009년에 이 산물 주변을 새롭게 정비하고 기념 표석을 세웠다. 비문에는 ‘최고의 용천 물량을 자랑하는 제주 제일의 해안용수’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제주 섬에 존재하는 수많은 산물 중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산물 터는 세 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바위 절벽 틈으로 맨 처음 나온 물은 식수, 그 다음은 음식을 씻는 물, 맨 마지막은 빨래나 목욕을 하는 물로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지금도 방파제 끝부분에는 예전 물허벅을 지고 오르내리던 가파른 계단이 남아 있다. 

2. 새물.JPG
▲ 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예전 마을 여인들은 이 물을 사용하는데 세 가지 어려움을 걱정했다 한다. 벼랑 끝에 있는 길이 너무 험해 물허벅을 깨지나 않을까, 파도가 센 날엔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까, 바닷물이 섞이지 않도록 물때를 맞추어 물을 길러야 하는 근심이다. 물허벅을 지고 나르는 여인들에게는 고난의 길이었다. 그래서 엄쟁이에는 물 길러 다니는 일이 매우 힘들다고 하여 딸을 이곳으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3. 새물기정길(옛길)n.jpg
▲ 새물 기정길(옛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새물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 200m 쯤 가면 바닷가에 신엄리의 산물인 '노꼬물(녹구물, 녹고물, 놉고물)'이 있다. 이 산물은 한라산을 발원지로 한 물로 ‘녹고메(녹고메오름) 수맥을 통하여 물이 난다’고 믿어 노꼬물로 불린다. 산물은 평지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는데다 주변에 병풍처럼 바위가 둘러쳐 있는 등 지대가 험해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주민들이 사용하기 쉽도록 시멘트로 단장했다. 처음에는 바닷가와 접해 있는 알물(아랫물)을 이용하다 밀물 때면 물이 짜다하여 30m 위쪽에 인력으로 물통을 파서 간만의 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물을 길어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아랫물은 목욕용으로 사용하고 새로 뚫은 윗물은 식수와 빨래터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 알물이 있는 해안 언덕에는 해풍으로 반쯤 마모된 소화21년(1946년)에 세운 산물치수비가 언덕 위에 외롭게 서있다. 해안도로 개설로 접근이 쉬워졌지만 예전에는 오르내리기가 매우 가파른 곳이라서 부녀자들이 물을 길러 오기에는 매우 험함 곳이었다. 지금 신엄9길로은 노꼬물로 가는 길이라 해서 노꼬물질이라고 불렀었다.

4. 노꼬물 알물n.JPG
▲ 노꼬물 알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5. 노꼬물 윗물n).JPG
▲ 노꼬물 윗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고내리 경계 지점에도 남도리물이 있다. 이곳은 돈물(단물)원이라는 짜지 않은 물이 있다는 바닷가로, 남두포라는 작은 포구로 있는 지역이다. 남두포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포구 주변에 돌을 투석하여 수심을 일부러 앝게 했다고 하여 새잣이라고 부른다. ‘남도리’는 바닷가 기정이라는 절벽지대다. 뜻은 분명하지 않으나 ‘도리’는 다리(橋)를 뜻하는 제주어로 ‘남’은 낭(나무의 제주어)의 변음으로 볼 때 ‘나무다리’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물 입구에 나무다리가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본다. 지금 이 산물은 산물이 솟는 암반을 중심으로 작은 풀장처럼 욕탕을 만들어 정비했으며, 여름철 마을주민이나 피서객들이 애용하는 장소이다.

6. 남도리물 1.JPG
▲ 남도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7. 남도리물 2.JPG
▲ 남도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