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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기름떡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으나 포기하고 우리 동네 하나로 마트에서 사왔다. 다섯 개 들어있는 한 팩을 사왔는데 사진 찍기가 참 애매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하다가 아예 가까이서 기름떡에만 초점을 맞춰 찍었다. 사진 찍고 딸과 내가 사이좋게 맛있게 나눠먹었다.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바람섬 숨, 쉼] 대를 이어 계속되는 기름떡 사랑...대를 이어 딸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길

내가 초등학교 학생이었던 1970년대에는 명절 제사 때면 떡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전수조사는 해보지 않았지만 우리 집도, 옆집도, 이모 고모집도 다 그랬으니 대부분 집에서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떡을 먹는 게 소소한 삶의 이벤트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떡은 기름떡이다. 요즘 말로 내 영혼음식이 된 기름떡. 생각의 줄기를 따라 가보니 그 시작에 달콤함, 참을 수 없는 달콤함이 있었다.

기름떡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다. 먼저 찹쌀가루를 익반죽한 다음 적당한 덩어리로 잘라내 밀대로 밀어 넓게 편다. 가장자리가 톱니바퀴모양으로 되어있고 가운데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기름떡 틀로 모양을 찍어낸다. 잘 달궈진 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앞 뒤 뒤집어가며 노릇하게 익힌다. 익힌 떡은 넓은 쟁반에 넣어 잠시 식힌다. 이어 절정의 순간이 온다. 온기가 적당히 남아있는 기름떡에 설탕을 솔솔 뿌려 넣는 것이다. 그러면 겉은 바삭 안은 쫄깃한 기름떡과 사르르 기분 좋게 녹아내리는 설탕이 만나 달콤한, 참을 수 없게 달콤한 기름떡이 완성된다.

그 순간의 맛을 만끽하기위해 나는 떡을 만드는 어른들 옆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때가 되어 기름떡이 완성되면 예쁜 모양의 떡은 상에 올리기 위해 따로 담아두었고 모양이 바스러지거나 남은 반죽으로 대충 둥글게 만든 떡이 아이들 차지였다. 그래도 좋았다. 아끼면서 조심스럽게 기름떡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가득 퍼지던 달콤함은 최고의 맛이었다.

그 달콤함은 오래 오래 지금까지 친구가 되어 나를 위로해 준다. 꽤 오래 전 일이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아가면서 작은 사업체를 이끌어나가는 대표의 역할까지 해야 하니 늘 하루하루가 바빴었다. 주변에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느라 ‘나’는 늘 순위에 밀려 깊이 가라앉는 게 다반사였다. 그날도 그랬다. 자세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끔찍하게 외롭고 지난날이 다 후회스러워 절망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한 생물체로 내 마음 안에 보관되어있다. 그런 모습으로 우리 동네 하나로 마트에 갔다가 기름떡을 만났다. 간식코너에서 기름떡을 발견한 순간 환호했고 얼른 사서 한 입 한 입 먹으면서 나의 우울과 절망을 한 조각 한 조각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게 가능하냐고? 적어도 나는 가능했다. 그리고 오래 전 읽은 영국 작가 조 앤 해리스의 소설 《초콜릿》도 가능하다고 말해준다. 작은 도시 랑스크네에 초콜릿 공방을 연 이방인 비안 로셰. 폐쇄적이고 완고한 도시였던 랑스크네는 비안의 초콜릿을 먹으며 변화해나간다. 소설은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의 상처 고통 등이 비안의 초콜릿을 먹고 대화하며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나가고 있다. 음식이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달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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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희 대표. ⓒ제주의소리
그런데 참 희한하다. 내 딸이 나만큼 기름떡을 사랑한다. 별표하고 밑줄 그어가며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그냥 좋아한다. 세월이 흘러 지금 고등학생인 딸이 열정과 절망이 차고 넘치는 젊은이가 되었을 때 난 시간이 아주 많은 할머니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종종 집에서 내 딸을 위해 기름떡을 만들 것이다. 내 삶을 위로해준 달콤한 기름떡이 대를 이어 우리 딸의 열정을 사랑해주고 절망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어주길 기대하면서.

곧 추석입니다. 두둥실 보름달 떠오르는 풍성한 한가위 기원합니다.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https://blog.naver.com/jejubarams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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