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67) 애월읍 수산리 큰섬지

수산리는 물 맑고 산이 아름답다고 해서 수산리(水山里)다. 옛 이름은 '믈메, 물미'로 '믈'은 물(水)의 훈독자 표기, '메'는 뫼(山)를 제주어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의 수산봉을 말하며 ‘정상에 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그런데 수산봉은 이 마을을 감싸주듯 한라산을 마주보고 있지만 정상에는 물이 없다. 이유는 수산망(봉수대)를 설치하면서 물이 고이는 원형 화구인 함몰지를 매립하여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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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봉.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수산봉은 오름이 어질고 아름답다 하여 옛날부터 가뭄이 극심할 때 제주목사가 이곳 정상에서 기우제를 봉행했다. 유수암리, 장전리를 거쳐 흐르는 수산천도 끼고 있는데, 크고 작은 샘물이 여러 군데로 가뭄에도 솟아나 가뭄이 심하면 소길리에서 물을 떠다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마을은 1960년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 2만4000여평(7만9338.8㎡)의 농지가 저수지에 잠겼다. 70여가구가 철거되어 번데동, 구엄리, 제주시 등으로 이주하는 아픔을 겪었다. 기우제는 제주목사가 초헌관이 되어 거행 했는데, 풍우뢰우신(風雨雷雨神)을 위한 제사이다. 제주목사가 직접 주관해 나라에서 행하는 제주지역 기우제는 한라산 산천단과 이곳 물미오름 수산단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수산봉 정상에서 기우제를 올렸던 제단은 현재 찾을 수가 없다.

수산리 하동에 마을을 대표하는 산물인 큰섬지가 있다. 이곳은 수산8경 중 6경에 해당한다. 하동은 수산봉이 있어 '오름가름'이라고 불렸으며 산 밑에 있어 하동(下洞)이라고 한다. 가름은 마을을 의미 하는 제주어다. 이 마을에서는 다른 마을처럼 샘을 의미하는 제주어인 ‘세미, 새미’라 하지 않고 ‘섬지’라 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산물의 뜻으로 ‘섬지’가 쓰이는 특이한 지역이다. 이렇게 ‘섬’을 쓰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상가리에도 ‘삼’ 혹은 ‘섬’을 붙인 ‘맥구섬, 멱구섬’ 산물이 있었다. 이런 사실에서 ‘섬’은 산물(샘)을 뜻하는 제주어라 할 수 있다. 섬지는 셈지의 변음이라 알려져 있으며 ‘물이 고인다’는 뜻으로 ‘샘이 있는 땅’이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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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섬지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섬지는 수산서6길 수은교 남쪽 수산천 냇가 큰섬지교에 있는 대천(大泉)이라 부르는 큰 산물이다. 장전, 소길리 사람들까지도 이 산물을 이용했을 정도로 풍부하게 솟아나는 마을의 식수원이었다. 이 산물은 물허벅여인상이 있는 벼랑(언덕) 측벽과 끝에서 용출되는 산물로 마을에서 보호시설을 설치하여 보존 중이다. 산물은 우물처럼 원형의 통을 갖고 있으며 통 안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계단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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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섬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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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섬지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마을에는 ▲공섬지 ▲명세왓섬지 ▲동녁섬지 ▲새섬지라는 산물도 있다. 공섬지는 ‘공것이라 하여 힘들게 얻는 산물’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수산 저수지 안 동측에 있었는데, 지금은 수산저수지에 잠겨 버렸다. 명새왓섬지는 공섬지 하부 400여m 지점에 있는 물로, 굿을 할 때 제상에 올리는 돈인 명전(命錢)을 의미한다. 동녁섬지는 마을회관 남쪽 수산봉의 동쪽에 있었던 산물로 여웃못(여윗못)이라고도 하는데, 여의돌이 있데서 연유한다. 여의돌은 섬돌, 디딤돌의 제주어이다. 새섬지는 수산봉 서쪽에 있는 ‘새로운 샘’이란 뜻의 산물로 수산저수지 제방에 포함되어 버렸다.

수산(귀엄)저수지는 수산천을 막아서 만들었다. 1550㏊면적에 총용량은 68만t이다. 이는 중산간 지역의 주요 상수도 공급원인 어승생 1·2저수지(총용량 60만t)보다 크다. 저수지의 물을 농업용수로 무상으로 농가에 제공됨에도 불구하고 수질이 나빠 평상시는 물론 가뭄에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형국이다. 물은 넘치는데 활용되지 않아 수질문제와 활용방안 부재 등으로 무용지물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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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귀엄) 저수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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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수지 수질개선 폭기시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며 저수지 안에 물에 공기를 주입하는 폭기시설을 설치하여 수질을 개선시키고 있으나 물은 “순리대로 흐른다”는 말이 있듯이 갇혀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아무리 수질관리를 잘 해도 외부순환 없이는 썩을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단절된 하부 하천과 연결하여 물이 흘러 갈 수 있도록 정비하고 활용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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