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물은 생명입니다 / 이종우 이학박사(미래에코시스템연구소장)

물은 생명(탈레스)입니다. 태초 생명이 시작되는 곳에 물이 있었고 생명이 이어지는 그곳에 물이 있습니다. 혹자는 생명의 진화가 ‘물에서 뭍으로’, 물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말합니다만 모든 생명현상이 일어나는 매질(媒質)이 물일진대 물과 생명의 동일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주 살이의 시작과 이어짐도 이와 같아 속칭 ‘나는물’(용천수)이 있고서 제주사람의 삶이 시작되고 이어졌으니, 제주마을의 설촌 역사는 나는물의 역사와 같아 제주사람은 용천수를 생명수라 부르며 소중히 해왔습니다. 

또한 생명의 진화와 같이 제주살이의 진화도 물의 시·공간적 제약이 극복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어승생을 비롯한 저수지 축조와 지하수 개발을 통해 물 걱정이 없어진지 이제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전체 물 사용량의 90%를 담당하는 지하수의 고갈과 오염으로 이제 물 문제로 인한 삶의 단절을 다시 걱정해야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저잣거리의 오해 중 지하수를 재생 가능한 자원(renewable resources)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담수지하수의 염수화나 축산분뇨에 의한 한림지역 지하수 오염에서 보듯 제주 지하수는 적절한 관리가 담보될 때만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제주도정은 연평균 강수량의 45% 정도를 지하수 함양량으로 잡고 이것의 40% 정도를 지속가능한 이용량으로 산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를 고려할 때는 턱없이 높은 숫자입니다. 강우의 양극화는 차치하고서라도 작년 강수량은 연평균 강수량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정은 신규 지하수 개발을 통해 이미 초과된 상수도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합니다. 

특히 제주 담수지하수의 염수화는 과도한 취수에 기인합니다. 애초 지표수를 이용하는 저수지의 축조와 지하수 개발에 균형을 맞추는 물관리 정책이 아쉬운 부분입니다만 우선 50%도 못 미치는 유수율을 잡는 데에서 부족분을 메우고 장기적으로는 신규 저수지 축조를 통해 지표수의 이용을 늘리는 한편 제주도 지하수괴의 특성 연구와 인공함양 기술 같은 도전적인 연구를 실용화하여 지하수량 유지방법을 마련한 이후 취수량을 늘려가야 할 것입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습니다. 제주사람들은 나는물에도 칸을 나누고 식수로 사용하고 음식을 씻었으며 그 다음 칸으로 넘치는 물을 이용해서 목욕을 하고 빨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마을 규약을 수백년 이어왔습니다. 이처럼 물을 이용하는 우선순위에 관한 규약을 작금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여 계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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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월읍 상귀리 소왕물. 머리인 사각 물통에서 솟는 물을 식수, 음식물 씻기, 빨래터, 기타 잡용수 등 네 단계로 구분해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게 했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필자의 생각에는 제주 지하수의 이용도 나는물과 같이 먹는 물과 그 외의 용도를 구분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청정 지하수를 물놀이장 목욕물로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도민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공급가격 조정을 통한 수요 조절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무분별한 취수로 인한 지하수 고갈도 문제입니다만 한번 오염되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지하수질 오염은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재 제주도내 지하수 관정 수는 약 6000여 개로, 어쩌다 이리 많은 지하수 관정 허가를 남발하였는지, 사후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특히 염지하수 관정의 수는 1300여개로 2000년 이후 두 배 이상 증가하였는데 염지하수의 취수가 담수지하수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기본 자료라도 도정은 가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필자의 눈에는 관정 관리주체가 제주도 관련 부서들과 한국농어촌공사로 나뉘어 있어 관정의 용도에 따라 관리 주체도 애매한데다 곳곳에 버려진 미사용 관정의 관리 상태를 볼 때 엄밀히 말하자면 관리 자체를 아예 포기한 듯합니다. 지하수 관정은 지표의 오염물질이 지하수원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같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 터, 미사용 관정에서 부터 관정을 통한 지하수 오염 여부와 정도 및 원인에 관한 전수 연구조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최근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생활하수 및 양돈분뇨에 의한 제주 지하수의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개발사업자와 양돈업자의 도덕적 해이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행정당국의 무능력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하수와 축산분뇨 처리시설이 이미 오래 전 포화상태에 이르렀는데도 행정은 개발사업 허가를 남발하고 사육두수 증가를 용인해왔습니다. 처리용량 초과분을 보전하기 위해 1인당 하수발생량을 절반 가까이 낮추어 허가를 내준 것이 최근 신화역사공원 하수 역류사태의 본질일진데 더 늦기 전에 보다 정밀하고 도민에 의한 감시가 가능한 총량제도의 도입을 서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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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서 무단 방류된 축산분뇨 상황.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또한 원인자 부담원칙을 공고히 하여 제주에서 영위되는 어떤 사업이든 제주 물을 훼손하면서는 사업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내외에 천명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양돈산업의 경우 최근 도정은 악취관리에만 몰두하는 모습인데 작년 양돈분뇨사태의 본질은 숨골 무단투기로 인한 지하수 오염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 200곳이 안 되는 양돈농가로 이루어진 제주도 양돈산업은 산업자본을 형성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여기에 일부 농가는 수신고 2조가 넘는 양돈농협을 운영하며 고율의 예대마진과 연채금리로 거의 사금융 수준의 신용사업을 운용하는 금융자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정은 수천억의 세금을 들여 분뇨처리시설을 지어줄 모양입니다. 몇몇의 금융 자본가를 위한 수천억의 보조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분뇨처리시설은 반드시 위탁이 아닌 행정에서 직접 관리하고 처리비 현실화로 투입된 세금을 환수해야 합니다.   

지하수 개발 불과 반세기만에 생명수의 고갈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개발이란 것이 그것을 통해 새로 만들어지는 가치가 있으면 사라지는 가치도 반드시 수반되는 법일진데 수천억 양돈사업의 가치와 수백조의 물산업의 가치, 나아가 제주도 청정이미지의 가치 등 개발 가치와 보전 가치의 경중을 따져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제 제주 생명수를 어떻게 이용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관한 도민의 총의를 모을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 이종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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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 이학박사는 제주 토박이다. 제주사대부고를 졸업(5회)하고 서강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했다. 미국 노틀데임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신경생물학(Neuroscience)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의과대학에서 연구원으로도 활동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서강대에서 연구교수를 지내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제주대에서 연구교수로 지냈다. 2013년에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일반연구자지원사업 수행으로 망막색소변성증 등 퇴행성 시신경 질환 발병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역할을 밝혀내 전국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논문은 유전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플로스 제네틱스(PLoS Genetics) 2013년 6월6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되기도 했다.  2013년 8월에는 재선충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주)유소를 설립하고 세계재선충학회 등을 찾아다니면서 관련 논문과 특허 개발에 열중해왔다. 현재 미래에코시스템연구소장을 맡아 제주의 미래자원과 가치를 지켜내는 연구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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