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낭 2018] 독립서점 이듬해 봄, 교육공동체의 가능성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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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읍 하모리에서 책방 '이듬해 봄'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희 씨. ⓒ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는 제주 남서쪽 해안을 품은 평평하고 아늑한 마을이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농촌에는 이맘때쯤 가을바다를 배경으로 감자꽃이 활짝 핀다.

그러나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 모든 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학교가 끝난 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 문화인프라가 부족한 현실은 유년기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큰 걱정이다.

책방 ‘이듬해 봄’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희 씨가 마을 아이들을 만나기로 결심한 이유다. 책을 매개로 함께 즐겁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이어지면서 농촌마을에서 책과 문화 중심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를 바랐다. 그 진정성은 작년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의 ‘클낭 챌린지’에서 지역혁신 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되면서 빛을 봤다.

스무명이 넘지 않는 규모로, 동네아이들과 함께 책을 나누고, 사진을 찍고, 연극을 준비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가장 가까운 제주부터 담아보자’는 마음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산방산과 송악산, 가파도와 마라도를 찍으러 돌아다녔다. 이들의 사진은 대정현역사자료전시관 2층에 전시됐다.

심야책방, 연주회, 엽서만들기, 작가와의 만남 등 모든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주체가 됐고 어른들은 옆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우리가 사는 지역부터 만나고 이해하자’는 게 기본적인 방향성이었다.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고 했는데 막상 구석구석 뒤져보니 많았어요.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서, 혹은 평범해서 지나쳐버리니 몰랐던 곳들이죠. 처음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디지털 리듬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첫 결과물은 잘 나오지 않았죠. 그런데, 한 번 결과물을 보더니 그 뒤로는 아이들이 신중함을 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림이 주는 여유를 배운 거죠. 그 변화를 엄마들이 느낄 만큼 ‘여유’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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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 이듬해 봄은 꿈꾸며 자라는 모슬포 아이들이라는 뜻을 담은 '모슬모슬 몽생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작년 말부터 본격화했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대정읍 곳곳을 누비며 지역을 이해하고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진기를 들고 '출사'에 나서기도 하고, 직접 마을의 특산물과 문화를 소재로 한 연극을 꾸려 어르신들 앞에서 공연에 나서기도 한다. ⓒ 이듬해 봄

1년 사이, 아늑한 동네 독립서점은 공동교육공동체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다. 물론 혼자서 책방 운영과 교육프로그램을 동시에 소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독립서점의 명맥을 잇는 것 자체가 너무 힘겹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려운 점 그리고 바라는 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제주에서 책 행사가 많이 있는데 더 차별성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축제 때마다 단순히 책방들에게 ‘부스를 하나 주겠다’가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어떤 축제가 정말 재미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기뻐할까’를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해요. 다 같이 함께 준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듬해 봄이 모든 프로그램의 지속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는 아이들이 직접 만든 엽서가 나오고, 내년에는 아이들의 눈으로 담아낸 제주 곳곳의 사계절을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아이들의 방과후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 이젠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게 됐다. 마을 안에 위치한 책방이 지역사회를 어떻게 조금씩 바꾸는 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거듭난 셈이다.

“사실, 이 곳이 박터지는 위치는 아닙니다. 대부분이 일부러 찾아와주시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중요한데, 그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듬해 봄이 지속적으로, 따뜻한 공간으로 남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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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 이듬해 봄을 운영하는 김진희 씨는 "지속적으로, 따뜻한 공간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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