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75) 사계리 ② 세미물과 군애물

사계리에는 전설 하나가 전해 내려온다. 제주 섬의 물혈과 관련된 단혈설화에서 호종달이가 용머리 지세를 보고 큰 인재가 태어날 지세이므로 기를 끊어 버리기 위해 잔등부분과 꼬리부분을 잘라 버려 왕후지지의 맥이 잘렸다는 전설이다. 마을 일대가 물에 잠겼을 때 오름이 바굼지(바구니의 제주어) 만큼만 보였다는 전설이 구전되고 있는 단산을 배경으로 인재를 키우기 위한 대정현의 교육의 산실이었던 향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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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향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단산(簞山)은 바구니를 엎어놓은 것 같다는 데서 붙여진 오름이다. 표고 158m인 사계리 큰밧(큰 밭) 동네 북쪽에 있는 오름이다. 단산은 그 형태가 거대한 박쥐가 날개를 편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바굼지오름(파군산[破軍山], 바구미오름)이라고도 한다. 바굼지오름인 단산 응회구는 제주도의 지질학적 층서구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쇄설성 퇴적층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제주화산도의 기반형성과 고지리 복원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오름이다.

이 오름 앞에는 대정향교와 추사 김정희가 차를 달려 마셨다는 세미물(석천[石泉], 돌세미, 바곤이세미, 샘이물)이 있다. 세미물은 대정향교 50m 서측에 산기슭 바위틈에서 용출하는 산물로 샘의 물(샘+물)이란 뜻을 갖고 있다. 이 산물은 돌세미(石泉)이라고도 하며, 바굼지오름 아래에 있다고 해서 바곤이세미(把古泉)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대정향교와 대정읍 인성리 사람들이 주식수원으로 이용했다. 인성리 사람들은 향교가 있어서 이 산물을 깨끗한 물이라 신성시 하여 제사 때 이 산물을 떠다 이용하였는데, 물 뜨러가던 고개를 샘이고개라 했다. 옛날 대정현에 물이 말랐을 때 이 샘물을 길어다 썼다. 그리고 단산에는 아들을 기원하는 기도를 한다는 높이 20m에 이르는 남근을 닮은 돌기둥인 남근석이 향교에서 50m 쯤 떨어진 곳에 있어서 세미물을 남자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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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세미물은 큰샘이, 작은샘이가 있다. 대정향교 서쪽 샘을 큰세미, 향교 남쪽 도로변의 샘을 작은샘이라 했다. 작은샘은 농사용 물이며 큰샘이인 세미물은 사각식수통과 단차를 둔 나머지 작고 큰 2개의 물통이 갖추어져 있지만 최근에 단장해 물팡이나 돌담 등 옛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단지 돌 틈으로 솟는 물만 옛날을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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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세미물은 단산에서 나는 물로 다인(茶人)들이 최고로 치는 '산(山)‘의 물이다. 추사 김정희는 차를 좋아했던 까닭에 물에 대해 일가견이 있었는데, 유배 시 섬의 물맛을 가려가며 차를 시음했으며, 유독 추사가 애착을 가진 산물이 세미물이다. 추사 김정희는 인성리 유배 당시 세미물이 멀리 있어 물을 길어오기가 어렵다고 호소한 기록이 남아 있다. 추사는 유배지인 제주 섬에서 차를 마시며 외로운 심정을 달랬는데, 유배에서 풀려난 후 추사가 섬의 석천(石泉)의 물소리가 그립다고 말할 정도로 이 산물은 육지부에 있는 어떤 샘보다 뒤떨어지지 않는 명수였다. 

단산에서 바닷가 방향인 사계모래해변 250m 위쪽 사계남로에는 붕어못이 있다. ‘연못에 붕어가 많다’며 하천 옆에 있어서 ‘못’이라 붙여 붕어못이라 했다. 지금은 치수비가 세워진 사각 시멘통 안에서 용출되고 있다. 이 산물은 전분공장의 공업용수원으로 사용되었던 물로 지금은 못이 있었던 자리에 빨래터를 만들어 여자 전용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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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못.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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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못 여자 전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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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못 여자 전용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사계포구 옆 모래해변에도 산물이 있다. 군애물(군야물)이라고 부르는데 무리져 있는 여의 뜻을 가진 군여에서 단애같이 생긴 바위 틈 여기저기서 솟아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물은 물때를 잘 맞춰야 볼 수 있는 산물로 미고결암인 응회암층과 모래경계면에서 용출하는 산물이다. 이 사계모래 해변은 1만 5000년전 형성된 응회암질 퇴적 지층으로 형성된 해안으로 사람발자국과 공룡발자국, 새 발자국 등 사계발자국 등 화석발견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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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애물과 산방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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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애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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