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일부터 3일까지 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에서 국제사회적경제포럼(Global Social Economy Forum)이 열렸다. 전세계 84개 나라에서 지방자치단체장, 국제기구 대표, 사회적경제 활동가 등 약 1700여명이 참여한 자리다. 사회적경제 주체 간, 지방정부간 협력을 도모하는 회의이긴 하지만 빌바오라는 도시가 가지는 도시재생사업의 상징성을 간과할 수 없다. 빌바오는 세계 최대 노동자협동조합인 몬드라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사회적경제인들에게는 희망과 동경의 도시이다. 쇠락했던 철강업 도시가 도시재생으로 다시 살아난 희망의 도시 ‘빌바오’에서 느끼는 도시재생사업의 방향과 제주가 가야할 길에 대해 세 차례 기고문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 필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도시계획과 거버넌스-빌바오가 문화중심도시가 된 치밀한 전략
②도시와 사람과 공간-빌바오 도시재생이 바꿔 놓은 도시의 모습들
③도시재생과 지역경제-빌바오에 스며든 사회적 경제, 혹은 혁신의 길 

[기고-빌바오에서 제주를 묻다]③ 빌바오에 스며든 사회적 경제, 혹은 혁신의 길  

도시재생 측면에서 빌바오의 명성이 드높다면 협동조합과 관련된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몬드라곤이라는 도시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상징적인 곳이다.  국제사회경제포럼(Gsef 2018)이 열린 빌바오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몬드라곤은 협동조합을 통해 경제시스템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움과 부러움의 존재이자 언젠가는 거쳐봐야 할 정거장이다. 

단순한 숫자만으로 이야기 하자면 102곳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연합체로 스페인 내 7위의 매출을 자랑하고 있어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경이로움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우리식의 재벌이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사업은 철저히 분리하고 수익은 연대한다는 원칙과 실천이 현실화 되는 곳이기도 하다. 재생의 시각으로 빌바오시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옆에 바짝 붙어있는 몬드라곤과의 연계성을 궁금해 할 수밖에 없다. 

빌바오에서 사회적경제 그중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흔적을 찾는 일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부터 시작됐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3만3000장의 티타늄판으로 외장을 둘렀다. 벽면과 기둥의 주요 부분은 황금빛 나는 티타늄판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메탈 플라워’라는 애칭을 가진다. 이곳저곳을 만져보던 중 한국인들로서는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사실 하나. 각 판마다 소위 마감이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겉에서 보는 멋진 모습과 달리 각 판의 끝부분 마감이 거칠고 모서리가 날카로워 다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함에 비해 디테일이 떨어졌다. 뭐지? 이곳저곳을 수소문해본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디자인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크 게리라는 건축가가 디자인을 했다. 그러면 다음은 그럼 누가 지었을까. 지역경제의 기여라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각 지역 업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했다는 전언이다. 몬드라곤 협동조합도 이 건축에 관여했단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지역 경제주체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당위론의 결과라는 것이다. 웃음이 나면서도 지역의 관계성을 조금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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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타늄판으로 외관을 구성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모습. 제공=이재근. ⓒ제주의소리

빌바오를 다니면서 도심에서 보이는 크고 작은 매장에 주목하게 된다. ‘eroski’라는 이름의 다양한 매장들이다. 바스크어로 ‘구매’와 ‘장소’의 복합어이기도 한 이 매장은 우리식의 대형 마트다. 이 마트의 구조는 근로자협동조합과 소비자 협동조합이 결합된 형태다. 몬드라곤의 모든 협동조합은 근로자협동조합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구조여서 이 큰 마트가 어떻게 근로자협동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을지 궁금했는데 역시 소비자들을 조합원으로 참여시켜 그 규모를 키웠다. 대신 소비자 조합원에게는 배당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마트의 형태만 존재하는가 했는데 하이퍼마켓, 맥시마켓, 슈퍼마켓, 여행사, 헬스클럽 등 사업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흔히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곳이다. 협동조합의 문어발식 확장이라…. 비유가 적절한지 알 수는 없지만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비교적 소규모 형태의 기업을 연상하기 쉬운 우리 입장에서는 꽤나 공격적인 내용인 셈이다.

협동조합이 지니는 기본적인 관심은 인간중심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나마 이해하겠지만 실지로 그들의 생활이 그런가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조합간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는 건설업 중심의 업종을 가진 울마(ULMA)를 방문했을 때의 일. 회사 설명을 잔뜩 들은 후 참가자중 한명이 질문을 하고 나섰다.

"당신들이 다양한 협력을 통해 조합원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하는 점은 이해하겠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일을 안 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조직 내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분명이 있을 텐데 그럴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 지 궁금하다." 

아무리 협동조합으로 다져진 들 이 같은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데 이들을 어찌 대응할까?

ULMA의 소통담당이 답변을 한다. "누구나 자신들과 다르게 일하기 마련이고 이를 불편하게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운을 뗀 그는 "50여년이 넘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역사상 조합원의 자격을 강제로 박탈한 경우는 단 두 명 밖에 없다"고 말한다.

참석한 모든 한국인들이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 역시 이를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어도 그가 자신 있게 이야기 하던 표정과 말투는 또렷이 기억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사회가 가진 사회적경제의 힘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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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LMA의 사옥입구. 제공=이재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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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조합간의 연대와 현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ULMA의 홍보 담당자. 제공=이재근. ⓒ제주의소리

모든 도시가 협동조합이라고 해서 승승장구를 할 수는 없을 터. 그들 역시 1980년대 심한 위기를 겪었고 2008년 세계적인 불황 때 큰 타격을 입었다. 2013년 몬드라곤의 대표 격인 파고르전자가 파산하면서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역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그들은 위기 시에 어떤 대응을 했을까. 협동조합이 손실을 보거나 위기를 닥치면 협동조합 간 공동기금을 출원해서 손해 보는 조합들의 손실금액을 보존하는 방법을 택한다. 손해를 보존하는 일이 곧 실업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 바 도시재생 뉴딜 등 일자리 창출이 사회적 화두가 되어 있는 우리에게는 시사 하는 바가 많다. 

여전히 빌바오는 재생의 아이콘 역할을 하고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영향력 역시 도시 곳곳에 퍼져있다. 오죽하면 중요한 관급 공사를 몬드라곤이 독식하면서 일반 회사들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재생과 협동조합의 양대 축이 이 지역을 뒷받침해주는 상징이 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변화를 꿈꾼다.  

다행히 도시 내에 있는 몬드라곤의 교육기관을 방문할 기회를 잡았다. 빌바오 MTA(Mondragon Team Academy) 혹은 BB팩토리라 불리는 곳. 2009년부터는 LEINN이라는 프로그램이 개설됐다.  

학교 방문차 도착한 곳은 며칠 동안 자주 오갔던 네르비온 강가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이다. 공장을 리모델링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작은 카페시설 정도로 여겨진다. “Talk, Do, Connect”라는 슬로건이 눈에 띈다. 1층은 상호교류를 할 수 있는 카페가 자리하고 2층은 MTA가 자리잡고 있다. 맨 위는 졸업생은 물론 기존의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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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바오시에서 몬드라곤으로 가는 도중 들른 EROSKI 매장. 제공=이재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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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대형마트와 흡사한 에로스키 마트.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매장이다. 제공=이재근. ⓒ제주의소리

작고 허름한 건물이 대학이라는 이름의 캠퍼스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초라하다는 느낌보다는 이들이 보여주는 자신만만함의 실체에 조금은 더 가까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진행하는 LEINN프로그램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기업가정신과 혁신을 배우는 과정을 거친다. 보통 3~4명 단위로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입학하게 되면 팀을 꾸려 회사를 만들고 구체적인 수익모델을 찾아내 매출까지 일으키도록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교수가 아닌 팀 코치들이 다양한 도움을 주고 기존의 회사들도 함께 협력해서 사업을 추진한다. 학년에 대한 평가는 회사의 수익을 내는 과정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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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TA의 전면 입구 모습. 학교라기 보다는 카페 입구 같다. 제공=이재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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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TA에 재학중인 한국인 학생3명이 각자의 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공=이재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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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TA의 행정실.맨 끝에 멀리 보이는 이가 교장이라고 한다. 제공=이재근. ⓒ제주의소리

학교에 대해 설명에 나선 존(John)은 MTA의 목표가 "혁신적인 창업을 하고자 하는 글로벌한 리더를 만들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며 이 학교는 교수와 학생간의 구분이 따로 없으며 교실이라는 개념도 중요하지 않다. 더불어 전통적인 시험 역시 의미가 없다"고 소개한다. 

학교를 설명하는 과정 내내 한국인 학생 3명이 따라붙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대학을 중퇴한 이들은  자신들이 이 학교를 선택한 의미와 과정을 설명한다.

"이미 대학에 합격했지만 이를 포기하고 이 학교로 들어왔다. 경쟁적인 체제의 공교육을 바꾸고 싶다"거나 "시험과 입시에 대한 부담감을 벗어나 열정을 불태울만한 것을 찾기 위해 왔다"라고 입학동기를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좀더 자세한 동기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학교의 매우 중요한 목표인 혁신창업을 하고자 하는 의지들이 매우 강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함께 하면서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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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혁신을 통해 빌바오를 새롭고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몬드라곤의 교육에서 도시재생과 협동조합이 제자리에서 세계적 관심을 받고 우뚝 선 상황에서 또 다른 새로운 혁신의 길을 가려는 도시의 몸부림이 느껴졌다. 돌아가면 가장 우선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빌바오와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사람이 개별적인 개인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연대의 힘으로 굳건히 버티며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 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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