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94) 열이면 열이 흉

* 숭 : 흉

비난 받을 일, 곧 허물이 흉이다. 한자어로 말하면 과오(過誤)다.

사람은 누구나 흉잡힐 점을 지으며 산다. 흉 없는 완벽한 사람, 인격적 완전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일처리 능력에서 완전하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내로라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잘못된 흠결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신경 써서 하다 봐도 어느 한 구석에 문제가 남아 있어 완전무결하게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어딘가는 허점이 드러나 꼬집힘을 당할 점이 있게 됨을 빗대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흉을 많이 잡히면 일을 크게 그르치므로 매사에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경계의 뜻이 담겨 있음을 놓치지 말 일이다.

실제로 ‘열에 열 숭’이 돼 매사에 흉잡히면 제대로 될 일이 없을 뿐더러 사람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수가 적지 않다. 흉잡힐 일을 줄임으로써 그런 불행한 일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비슷한 속담이 있다.

“잘 허여도 혼 구승, 못허여도 혼 구승”
(잘해도 한 가지 흉, 못해도 한 가지 흉)

사람의 일이란 마음먹은 대로, 또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치르고 난 다음에는 이러쿵저러쿵 뒷말이 무성하다. 잘하면 잘한 대로, 못하면 못한 대로 비판을 늘어놓게 마련이다. 일을 치르는 쪽에서는 잘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주위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흉잡히게 되는 게 사람의 일이다.
  
하지만 소신과 신념을 갖고 힘닿는 데까지 애써야 하는 게 인간사다.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으로 흉잡힌다 함이니, 작정하고 흉보려면 흉이 나오는 법임을 되새기게 된다. 

실은 사람으로서 삼갈 덕목이 ‘흉보기’다. 

설령 일이 잘못됐더라도 잘못을 허물로 지적할 것이 아니다. 여사여사해서 그랬던 것이나 다시는 그런 실수가 없도록 잘 챙기라고 격려해야 온당한 일이다. 하물며 일을 잘해 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던 사람의 흉을 보다니, 기죽이려 작정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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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에 열 숭.

어떤 일을 치르고 난 다음에는 이러쿵저러쿵 뒷말이 무성하다. 잘하면 잘한 대로, 못하면 못한 대로 비판을 늘어놓게 마련이다.

사진은 캐스 R. 선스타인이 쓰고 이기동이 옮긴 책 '루머' 표지. [편집자 주]
출처=알라딘.

‘흉보기 좋아하는 부인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있어 소개한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口傳)이다.

대감댁 부인 넷이 정 대감 집 대청에 모여 앉아 갖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남이 들으면 낯 뜨거운 얘기들을 한바탕 떠벌이는 중이다.
  
먼저 김 대감 마나님이, “난 젊은 사내만 보면 그만 온몸이 근질근질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아무래도 나는 남자를 꽤 밝히는가 봐요”라고 서슴지 않고 말을 했다.
  
이어 송 대감 마나님이 “어머나! 그처럼 거리낌 없는 얘기를 듣고서 저도 어디 가만있을 수 있나요. 저도 자신을 정신없이 만드는 게 다름 아닌 술이에요. 내 방 장롱 속에 언제나 술병을 숨겨 두고 혼자 홀짝홀짝 마시지요. 참! 그 맛이라니요”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러지 정 대감 부인도 “그러면 저도 부끄러운 버릇을 말씀 드리지요. 저는 남의 집에 가면 나도 모르게 탐내는 물건에 손이 슬쩍 가서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어요. 하지만 아직 한 번도 들켜본 적이 없어요”라며 지지 않고 말했다.

맨 마지막으로 황 대감 부인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세 부인이 앞으로 다가앉으며, “부인께서는 저희들에게 들려주실 얘기가 아무 것도 없어요?”라고 다그쳤다.

이에 황 대감 부인, “물론 내게도 있지요. 저는 남의 흉을 보는 일이 제일 좋아요. 그러니까 지금 같은 여러 분들의 얘기를 듣고 어서 어디 다른 곳에 가서 흉을 보고 싶어 아까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리지 뭐예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세 부인, 질려서 얼굴이 금세 노랗게 변했다.

흉보기 좋아하는 부인 이야기의 모티프는 결국, ‘자신의 약점 밝히기’이다. 제 흉을 제가 본 것이다. 세 부인이 밝힌 자신의 흉을 다 듣고 황 대감 부인이 자신의 단점 곧 흉은 ‘남 흉보는 일’이라고 밝혀 그들을 놀라게 한 재담(才談), 소화담(笑話談)으로 일종의 모방담(模倣談)이다.

남의 흉을 보려 마음먹으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다. 남의 생각과 뜻 또 하는 일을 존중해 주는 것이야말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상대를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의 자식 흉보면 제 자식이 그를 닮는다’고 했다. 흘려들 말이 아니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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