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 숨, 쉼] 관계의 가면을 벗어놓고 걸림 없이 정면으로

동시 쓰는 내 친구 김희정은 2015년 첫 동시집 《고양이 가면 벗어놓고 사자 가면 벗어놓고》(청개구리)를 펴냈다. 동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당연히 작가가 가장 잘 알고 두 번째는 나라고 혼자 확신한다. 한 편 한 편 써서 보여 줄때마다 (전부는 아니고 가끔) 날카로운 비평을 해주었고(라고 나만 생각할지도) 시 탄생의 배경 이야기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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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정의 동시집 《고양이 가면 벗어놓고 사자 가면 벗어놓고》(2015).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표제작 《고양이...》는 이런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항상 거칠고 사나워 보이는 어떤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장에 가보니 그 아이가 좌판을 하는 할머니 옆에서 눈물 흘리며 양파를 까고 있더란다. 그때 그 아이의 얼굴은 예쁜 또래 아이였단다. 그 모습을 보고 친구는 이런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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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정의 시 <고양이 가면 벗어놓고 사자 가면 벗어놓고>.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몇 년이나 지나 내가 문득 이 시를 떠 올린 것은 지지난 주 일요일 전시회를 갔을 때였다. 아는 분이 작품 전시회를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문예회관을 찾은 것은 토요일이었다.

작가님은 평소 원장님으로 일을 하지만 틈틈이 민화 채색 작업을 해오셨다. 토요일은 만나 뵙지 못하고 작품만 보고 왔다. 다음 날 내가 그 전시실을 다시 찾은 것은 오로지 작품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 일요일, 쉬는 날 아닌가. 이날은 나도 여러 가지 가면 벗어놓고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날. 그런데 뜻밖에 전시실에서 작가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이날은 원장님과 거래처 대표가 아니라 작가님과 관람객으로 만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편안하고 좋았다.

또 지난 주 목요일 한림 오일시장. 일 때문에 한림 지역을 돌다 오일시장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점심 먹을 시간이었고 햇볕은 기막히게 좋았다. 오전 내내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짝 굳어진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리면서 또 가면을 벗고 나로 돌아왔다. 시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맛있게 먹은 뒤 천천히 시장 한 바퀴를 돌았다. 무청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흙 묻은 무가 세 개 이천 원. 왜 이렇게 싸냐고 했더니 말을 예쁘게 한다며 아주머니가 한 개 더 얹어주어 무 네 개를 이천 원에 샀다. 시장 입구 트럭에서 파는 호박고구마도 한 박스에 이만 원. 고구마 파는 총각이 친절하게 차까지 갖다 줘 고마웠다.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과일 가게도 그냥 지나가기 힘들어 단감도 조금 샀다. 밥 먹고 잠깐 돌아본 그 사이에 스르르 행복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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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살다 보면 수없이 얽혀 있는 관계의 그물망에서 각자 역할에 맞는 가면을 쓰게 되는 것 같다. 이건 작정하고 누구를 속이기 위해 쓰는 거짓 가면과는 다르다. 그냥 나를 구성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들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나는 일할 때 물건을 파는 사람의 가면을 쓴다. 그 때는 가능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내 말은 짧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은 모든 관계의 가면을 다 벗어놓고 오로지 나를 나로만 보는 시간을 갖는다. 걸림 없이 정면으로 나를 보는 것이다. 그 순간들이 참 좋고 소중하다.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https://blog.naver.com/jejubarams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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