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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구 초량동에는 '이바구 자전거'가 여행객들에게 큰 인기다. 마을 골목길 곳곳을 어르신들의 구수한 해설과 함께 전기자전거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4년째 이바구자전거 드라이버와 마을 문화해설을 맡고 있는 배병기 어르신(70)이 이바구 자전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제주의소리

[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22) 부산시 동구 초량 ‘이바구 자전거’ 
 
한때 도시의 후미진 판자촌 뒷골목이었다. 물론 옛이야기다. 지금은 부산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대표적 명소다. 그렇다고 대단한 시설이 들어선 관광지는 아니다. 부산 사람들의 삶과 역사,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곳’이다. 그것이 이 길이 주목받는 이유다. 

부산시 초량동 ‘초량 이바구길’. 

옛 골목길의 매력이 철철 흐르는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몰려든 피난민들이 언덕배기에 형성한 판자촌이 모여 형성된 곳이다. 지금의 초량동이다. 산 중턱에 난 산비탈도로(산복도로)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소박한 지붕 선들은 반세기를 훨씬 넘도록 이어져온 이 마을사람들의 궤적으로 다가온다.   
  
‘이바구’는 부산 말로 ‘이야기’를 뜻한다. 부산역과 부산항이 있는 부산 동구에는 ‘이바구길’이 여섯 곳이 있다. 그중 부산역 앞 ‘초량 이바구길’에는 골목마다 계단마다 건물마다 발길 닿는 곳곳에 사연들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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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바구 자전거 길에서 만난 '유치환 우체통' 그 앞으로 너른 부산 앞바다와 도심 풍경이 인상적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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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바구 자전거 투어 중에 만날 수 있는 '유치환 우체통'은 편지를 부치면 1년 뒤 배달된다. ⓒ제주의소리

무엇보다 이 길은 어르신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골목길이 가팔라 걸어서 마을을 다 돌아보기 어렵던 이곳에 지난 2004년부터 여행객들을 태운 세발 전기자전거가 등장하면서부터 숨어 있던 마을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여행자를 맞이해주는 어르신들이 있고, 어르신들로부터 옛날이야기 들으며 길과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이 길에는 ‘이바구 자전거’가 있어 여행자도 마을주민들도 행복한 길이다. 이 사업은 부산 동구청이 어르신들의 일자리 제공을 위해 전문운전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여행객을 태워 마을 명소를 소개하는 건강일자리 특화사업 일환으로 지난 2014년 10월 시작됐다. 

부산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를 달리는 관광 자전거인 ‘이바구 자전거’는 시속 15㎞까지 낼 수 있는 3인승 전기자전거다. 문화 해설이 가능한 어르신이 운전을 맡아 부산과 초량 산복도로 일대에 엮인 생생하고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초량동 일대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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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바구길 '168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이렇게 가슴 탁 트인 풍경이 여행객들을 맞는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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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계단 입구. 부산항으로 가장 빨리 가로질러가는 옛길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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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계단에 입혀진 마을 집 풍경들 ⓒ제주의소리

운행 코스는 부산역을 출발해 백제병원·남선창고터·한중우호센터·이바구충전소·이바구 공작소 등을 돌아 차이나타운을 거쳐 다시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약 한시간 가량의 코스다. 초등학생 7000원, 청소년·어른 1만원의 이용료가 있다. 이바구 자전거 운행은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다. 

4년째 이바구 자전거로 문화해설을 하고 있는 배병기(70세) 어르신은 “하루 일과로 틈틈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로 이바구 자전거 운행과 마을 해설하는 일은 보람이 크다. 매일매일 새로운 여행객들에게 부산과 초량 이바구길을 소개하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배 어르신은 “여기 나온 노인들이 월급 받으러 나오는 건 아니”라며 “다들 먹고 살만 하지만 마을을 지키고 소개하는 일이니 보람이 훨씬 크다. 찾아온 여행객들이 이바구 자전거를 타고 즐거워하고 마을소개를 재밌게 들어줄 때 가장 보람있다”고 덧붙였다. 

배 어르신과 같은 이바구 자전거 운행을 맡고 있는 노인들은 현재 6명이다. 그리고 자전거 부스 운영을 맡고 있는 상주직원 4명까지 총 10명이 이바구 자전거 운행과 운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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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바구길의 '담장 갤러리' ⓒ제주의소리

이바구자전거는 전기배터리를 이용한 동력장치로 중량 300㎏까지 싣고 자동 및 반자동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설계돼 가파른 골목길에 적합했다. 그리고 유압브레이크와 수동브레이크 장치를 모두 작동시켜 안전 운행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자가 직접 이바구 자전거를 타고 돌아본 이 길은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차고 넘쳤다. 옛 골목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초량 이바구길은 부산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었던 ‘백제병원’ 건물에서부터 시작됐다. 1922년 한국인 최용해가 처음 설립해 100년을 앞두고 있다. 당시 병원은 사라진지 오래고 일본장교 숙소, 치안대사무소, 중국영사관, 예식장 등을 거쳐 지금은 옛 건물의 맛을 잘 살린 카페가 성업 중이다. 

백제병원 뒷담으로 이어진 곳에는 1900년 바닷가에 세워진 부산 최초의 근대힉 물류창고인 남선창고 터와 울타리가 일부 남아 있다. “부산 토박이 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빼먹은 사람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부산 산복도로의 옛 풍경과 인물들을 전시한 ‘담장갤러리’, 방송인 이경규와 뮤지컬 감독 박칼린 등을 배출한 초량초등학교와 좁고 가파는 계단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168계단, 계단 중간에 위치한 김민부 전망대 등도 이바구 자전거 코스에 있다. 

자전거에서 잠시 내려 부산항으로 내려오는 가장 빠른 길이었던 168계단을 올랐다. 이 계단길을 이용했을 당시 부산 사람들과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이자 시인이었던 김민부의 노랫말을 부산항 풍경과 오버랩 시켜 흥얼거리며 계단을 끝까지 오르니 어느새 배병기 어르신이 운행하는 이바구 자전거가 계단 종점에 도착해 있다. 

다시 이바구 자전거에 몸을 싣고 편지를 부치면 1년 뒤에 배달된다는 ‘유치환 우체통’~이국적 풍경을 펼쳐놓고 있는 ‘차이나타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역을 거쳐 출발점으로 돌아오니 딱 한시간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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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바구 자전거길과 초량 이바구길 표지판이 사이좋게 나란히 달려있다.   ⓒ제주의소리

이바구 자전거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 동구청 소속 박소라 사회복지사는 “이바구 자전거 사업은 지역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성공했다.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은 생업은 아니지만 보람과 자부심이 큰 분들”이라며 “지역주민들도 부산 동구 일대가 이바구자전거로 많이 알려지면서 마을 이미지가 더 좋아졌다고 좋아하신다. 경찰과 지자체에서도 처음에는 없던 자전거 도로도 만들어주고 자전거길도 지정해주는 등 민관이 모두 협력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제주여행을 자주 온다는 박 사회복지사는 “제주에도 이런 전기자전거를 활용한 사업을 접목한다면 제주가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라며 “원도심과 마을 골목길의 특색을 잘 반영하면 다른 어떤 도시보다 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부산 동구 초량동에는 이바구가 흐르는 따뜻한 골목과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르신 자전거가 있다. 산지천 주변과 제주읍성 성곽 터 주변으로 굽이굽이 골목길에 깃든 제주사람들의 애환과 골목길 정서를 ‘돌하루방’이 들려주는 ‘돌하루방 자전거’를 문득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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