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조건부 허용'으로 원희룡 지사, 전국적 스포트라이트...도민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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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희망찬 얘기를 하려 했다. 심기일전 한다는 새해 아닌가. 매번 쓴소리만 하는 것 같아서 인간적으로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주의 미래를 위해 지혜를 모아보자고 제안이라도 할 참이었다. 지금 제주의 상황이 여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지만, ‘결심’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영리병원(녹지국제병원) 허용은 이해하기 어렵다. 민의를 거스르는 것은 평소 원희룡 지사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원 지사는 지나치리만치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편이었다. 그를 깎아내리는 쪽의 표현을 빌자면, 오죽하면 ‘결정 장애’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현실적으로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는 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원 지사가 든 이유는 새삼스런게 아니다. 행정의 신뢰도, 거액의 손해배상, 고용 문제 등은 녹지병원 측이 2017년 8월 제주도에 허가를 신청할 때부터 제기됐다. 공론조사 이후 불거진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원 지사는 더 나아가 외교마찰, 책임 공방 소지까지 거론했다. 영리병원 허가를 압박하는 쪽의 논리를 이번에는 원 지사가 갖다 쓴 셈이다.   

애초 원 지사가 공론조사를 수용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의식했기 때문이리라. 

공론조사는 한편으로 원 지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도 있었다. 결정이 쉽지 않으니, 도민에게 물어보자는 게 공론조사의 취지라고 나는 이해했다. 

도백으로서 지역 현안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게 시쳇말로 독박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여론에 충실했다면, 자신들을 대변해준 도백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민들이 지켜만 보겠나. 드물지만, 시민사회 조차 도백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사례가 있었다. 더구나 공론조사의 일환인 여론조사 결과(반대 58.9% vs 찬성 38.9%)는 고민의 여지를 줄여줬다고 봤다.   

결과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였다. 

원 지사는 영리병원 허가가 제주 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12월6일 중앙일보 인터뷰)이라고도 했다. 또 국가 신인도까지 걱정하는 대권주자 다운 오지랖을 과시했다. 중앙 언론이 앞다퉈 그를 조명했다.  

이쯤되면 “노이즈 마케팅으로 중앙언론의 관심을 받으려는 구태 정치인의 악취가 풍긴다”는 농민단체의 주장을 흘려버릴 수 없게 된다. 

제주도의회 민주당 의원들의 성명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거론하며 영리병원 허가를 “도지사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정치적 변방’에 머물러 있는 곤궁한 정치적 처지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대권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도민들의 뜻과 민주주의를 짓밟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후 한동안 뜸을 들이던 원 지사가 공론조사를 수용하며 영리병원 허가 여부를 지방선거 이후로 넘긴 장면이 이 대목에서 오버랩된다.  

여러차례 내뱉은 ‘권고 수용’ 발언을 뒤집은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치적 선택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일각에선 ‘조건’(외국인 의료관광객 한정)을 단 이번 허가 결정을 절묘하다는 촌평과 함께 ‘신의 한수’라고 했지만, 돌아가는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녹지그룹은 결정 직후 말이 다르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허가는 허가대로 내주고, 뺨을 맞은 격이다. 의료계 조차 ‘내국인 진료 제한’이 의료법에 배치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어느 한쪽으로부터도 쌍수 들어 환영받지 못하는 외로운 처지가 됐다.   

원 지사는 국가의 미래까지 걱정했지만, 정작 보건의료계가 ‘국가적으로’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 한번 물꼬가 트이면 영리병원 확대를 막기 어렵다는 점이다. 제주 말고도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하도록 이미 제도가 만들어졌다. 종국에는 건강보험체계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원 지사는 국내 의료체계에 미칠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쓸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의도했든 안했든, 원 지사가 전국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놓친게 하나 있다. 민심이다. 

호기롭던 취임 일성도 허언이 되고 말았다. 

“도민이 도정의 주인, 도정의 목적도 도민, 도정의 힘도 도민”, “어떠한 권력과 이념도,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관계도 도민 위에 있지 않다” 

도민을 앞세워 무소속 지사의 한계를 돌파하겠다는 선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원 지사는 도민을 중시하지도, ‘도민의 힘’도 믿지 않았음을 자인한 꼴이 되어버렸다.  

원 지사는 약속 번복을 도민에게 사과하면서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제 그는 일부 도민들로부터 퇴진 요구에 직면해있다.  

원 지사는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영리병원 말고도 원 도정 앞에 놓인 현안은 첩첩산중이다. 2019년 제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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