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97) 일과리1 서림산물

일과리는 과거 날외, 날웨로 불렀다. '날외'는 아침, 저녁으로 떠오르는 ‘해(日, 날)와 달(月, 외)’에 비유해서 지은 이름이다. 한자 표기를 빌어 이름 붙인 것이 일과리(日果里)다.

일과리의 대표적인 산물은 일과1리 서림물이라는 큰물이다. 이 산물이 있는 마을을 대수동 혹은 큰물동이라 한다. 큰물은 서부지역에서 제일 물이 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일명 큰서림물로 통칭한다. 바닷가 암반 틈에서 솟아나 흐르는 물로 한자식 표기로 대수(大水)라 하며 옛 서림수원지 입구 돌담으로 에워싼 두 개의 원통 물통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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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림물(옛 수원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돌담 뒤편 자그마한 테쉬폰과 같은 반원형 집에도 작은물이란 산물이 있으며, 수원지 입구 서측에도 집 형태로 만들어진 물통이지만 관리가 안 되는지 잡풀로 무성하다. 이들 모두 같은 물줄기인 대수물로 이 일대 주민들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이다. 이 산물은 바닷가 능갱이물까지 이어지고 있어 같은 물줄기로 하나의 서림산물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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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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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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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지 입구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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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지 입구 물통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마을이 설촌 되기 전인 조선 중기 경 목자들에 의해서 산물이 발견되었다. 이 산물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일대 지역은 물이 귀하여 마소들의 물을 먹이는데 곤욕을 치르곤 했다. 어느 날 한 목동은 마소들이 자꾸 서쪽 바닷가로 향하는 것을 알고, 마소들을 따라서 일과리 서림지경에 이르렀다. 나무들이 우거진 사이로 물소리가 들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암반 사이로 맑은 물이 솟아 바다로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곳에 목자들이 마을을 이뤄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대수동 서림마을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림물은 용출되는 양이 대단히 많다. 서쪽에 있는 숲이란 뜻을 가진 서림(西林)이란 의미로 볼 때 지금은 숲보다는 물의 숲을 이루는 ‘물이 아주 크다’는 뜻이 함축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 산물은 제주의 3대 수원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물이다. 하루에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양이 무려 3만톤을 웃돌 정도이다. 

그래서 물이 좋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전분공장의 물로 이용했으며, 일찍부터 모슬봉으로 끌어 올려 상수도로 사용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육군 제1훈련소 창설 시 10만 대군의 훈련소 식수와 미군부대의 식수원으로 사용할 만큼 수질도 매우 좋은 물이다. 지금은 미군 부대의 식수원이었던 수원 시설이 군용 막사와 함께 남아 있고 아직도 군부대의 소유로 관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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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림물 (군부대 소유).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백중날 물을 맞으면 일 년 내내 병이 안 생긴다는 풍습으로 서림에 와서 물을 맞았다고 할 정도로 서림 큰물은 수세가 강한 물이다. 지금은 백중날 물맞이 대신 서림수원지 경계 동쪽 대정농협 마늘가공공장 입구 길가에 시멘트 외벽에 돌을 붙인 집 형태의 남녀용 목욕장에서 마을사 람들과 오고가는 길손들의 피로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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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림물 주민전용(좌 여탕, 우 남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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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림물(여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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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탕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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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탕 빨래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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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림물(남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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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탕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바닷가쪽으로 야외 담수욕장을 꾸며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그러나 상부 지역의 각종 개발과 농경지 등으로 수질이 악화되어 상수원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향후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서 농업용 저수지 개발 공사로 사라진다는 점이 몹시 아쉽다. 

※ 최근에 농업용수저수지를 만들면서 군부대 소유 서림물 입구에 남·여탕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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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 담수욕장.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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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림저수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외에도 서림수원지에서 서측 대수동 경로당 입구에 ‘할망물’이란 산물도 있다. 할망물은 산육과 육아의 수호신인 ‘삼승할망’을 뜻하는 원지소에 있는 산물이다. 이곳에서 민물새우를 잡아다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에게 먹이고 이 산물을 마시면 출산 시 고통을 덜어주어 순산한다는 속설이 전해져 오는 물로 마을 토신제를 지낼 때 사용한다. 

이 산물 입구에 식수 전용 통인 빨래터와 분리되어 있었으며, 빨래터는 안쪽에 있다. 그런데 최근에 산물 담장을 정비하면서 일부 개조되면서 옛 모습이 반감되어 안타까울 뿐이다. 할망물 옆에는 시멘트 슬라브 형태로 축조된 남자 목욕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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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망물(앞) 남자전용(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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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전 할망물(2000년대 초).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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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후 할망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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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전용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원지소는 과거 수원지 확장공사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산물을 끌어안고 있는 소(沼)를 이루는 원천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밑바닥에 펄이 깔려 있어 뱀장어와 새우 등이 서식하였던 곳으로 아이들이 물놀이 터였던 곳이다.

서림물에서 300m 떨어진 서측 바닷가에도 능갱이물(능개물)이란 산물도 있다. 이 물은 대수동 앞 바닷가 일대에 펼쳐진 자연 암석지대 용암 빌레(너럭바위의 제주어) 틈에서 솟는 고색창연한 맛을 풍기는 두 개의 물통을 가진 산물로 차갑고 투명한 맛이 일품으로 알려진 물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산물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싼 물통으로 축조하면서 옛 모습이 완전히 상실되어 버렸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전문가와 주민의 고증을 통해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바다 경관과 어우러지는 산물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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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갱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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