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 숨, 쉼] 대를 이어 물려주기 어떤가요?

작은 손거울에 금이 갔다. 화장대가 따로 없어 나는 책상 한 쪽에 작은 정리함을 놓고 거기에 화장품을 놓는다. 이번에 금이 간 손거울은 벌써 10년 이상 화장 거울 역할을 잘 해왔는데 금이 가 참으로 난감했다. 유리 가게에 가서 고쳐 달라 했더니 새로 사는 것을 권했다.

“그러게요. 그런데 이 손거울에는 저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그냥 오래 쓰고 싶어요.”

내 마음을 읽은 유리가게 사장님이 번거로운 작업을 기꺼이 해주셔서 그 손거울은 지금 나와 함께 있다. 

어린 시절 책을 읽을 때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가 할머니가 쓰던 물건을 딸에게, 손녀에게 물려주는 장면이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물론 사람들이었지만 사건이 생기고 해결되는 마무리 과정에서 “이 반지는 할머니가 쓰던 건데 너에게 주마” 등등의 에피소드가 자주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지의 가격이 아니라 반지에 담긴 할머니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다. 보기에는 평범하고 오래된 반지이지만 거기에는 세월을 견뎌낸 많고 많은 이야기들이 듬뿍 담겨져 있다. 

나는 오래된 물건을 사랑하지만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도 엄청난 사람이다. 내 핸드폰에 깔린 많은 앱은 다 ‘사용 중’이고 자주 가는 ‘별 다방’에서는 사이렌오더로 주문하기도 한다. 이처럼 새로운 문물로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 삶의 저변에 있는 이야기가 담긴 오래 된 물건도 똑같이 아끼고 사랑한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새것들이 넘쳐나면서 오래 된 것들이 자꾸 뒤로 밀려나 안타깝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반듯하고 새로운 물건은 필요하다. 새것과 이야기가 있는 오래된 것들은 함께 있어야 서로 더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 나는 옛날 어릴 때 읽었던 책에서처럼 집안마다 대를 이어 이야기가 담긴 물건 몇 개씩을 물려주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과거의 유산을 지키는 일들은 물론 나라에서도 신경 쓰고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나라가 모든 집안의 이야기들을 다 지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위 사진에 있는 저 오래된 되왁새기는 시어머니의 친정어머니가 쓰던 물건이고 오래 된 낭푼이와 국그릇, 고봉 밥그릇은 친할머니가 쓰던 물건이다. 물건들 밑에 깔린 보라색 카펫은 내가 엄마에게 오래된 담요를 하나 얻어 천만 덧씌워 갈면서 써왔다.(이불가게 사장님이 ‘이젠 바농이 안 들어 감수다. 그만 허게맙씨’해서 변신을 멈췄다.) 나는 종종 저 오래된 되왁새기를 보며 어머니의 어머니 시절 삶을 그려본다. 할머니가 쓰던 그릇을 보며 내게 아낌없이 주셨던 엄청난 사랑을 떠올린다. 저 낡은 카펫에는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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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할머니 시외할머니가 쓰시던 오래된 물건들, 버리지 못하는 오래된 손거울.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집안에서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이 사랑을 받는 것은 시작이 될 것이다. 집안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면 저절로 우리 동네 이야기가 궁금해지지 않을까. 우리 동네 이야기를 알게 되면 

▲ 홍경희.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도가 궁금해지지 않을까. 제주도가 궁금해지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넘쳐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싶어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그냥 흔해빠진 돌덩이, 낡은 건물, 답답해 보이는 꼬불꼬불 길들이 사실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이야기들을 가득 안았다고 생각하면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새것도 필요하다. 똑같이 이야기가 담긴 오래된 것도 중요하다. 새것은 언제든지 새로 마련할 수 있지만 오래된 것은 한 번 치워버리면 다시 마련하지 못한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빠르게 변하는 요즘,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https://blog.naver.com/jejubarams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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