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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연극 <잃어버린 마을>의 김봉건 작가 겸 연출이 22일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인터뷰] 제주4.3 연극 <잃어버린 마을> 작가 겸 연출 김봉건

“공연 시작 전까지 지난 2주 동안 밤을 샜더니 얼굴이 뒤집어졌네요.”

한 눈에 봐도 붉게 일어난 얼굴이 꽤나 아파 보인다. 하관을 가득 덮은 뻣뻣한 수염 역시 불편해보인다. <잃어버린 마을> 초연을 마친 23일 오전, 공연 장소인 충무아트센터 옆 커피숍에서 만난 작가 겸 연출자 김봉건(31)은 머쓱한 듯 이야기했다. 350석 가운데 빈자리가 거의 없을 만큼 좋은 반응 속에 공연이 출발했지만, 촉박한 준비가 마음에 남는다며 얼굴에는 긴장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제주4.3 창작 연극 <잃어버린 마을>은 2월 22일부터 4월 7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한다. 보통 제주 극단들이 제주에서 제작하는 4.3 공연과 달리 <잃어버린 마을>은 서울에 있는 제작사가 기획하고, 스태프나 배우들도 거의 서울에서 모아 만들었다. 제주 출신은 김봉건과 비중 있는 조연 양승한까지 딱 둘 뿐이다.

김봉건은 “원래 4.3 70주년에 맞춰 지난해 <순이삼촌>을 다시 공연하려 했다. 주요 출연진 계약까지 마치고 대관도 지금 자리(충무아트센터)를 빌릴 만큼 진전됐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엎어졌다. 그래서 고민 끝에 직접 작품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잃어버린 마을>은 4.3으로 불타버린 마을 ‘곤을동’을 배경으로 한다. 곤을동 출생인 동혁은 4.3 때 서북청년회에 협조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아내와 뱃속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였지만, 마을 사람들을 등지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30년이 지나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마침 전국을 강타한 민주화 운동(1979년)에 유명 대학교 교수인 아들 재구가 경찰에 끌려가고, 동혁의 가족은 커다란 갈등에 휩싸인다.

김봉건은 “작품을 만들기에 앞서 4.3에 대해서는 국가폭력에 많은 도민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단순한 사건으로 여기지 않았다. 3.1절 발포사건부터 나중에 이어지는 5.18광주민주화운동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 이해하려 했다”면서 “아버지는 두려움에 숨어서 서북청년회를 도왔지만, 아들인 재구는 두려움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차이를 보여주면서 갈등하는 구조가 작품의 핵심이다. 국가폭력은 세대를 넘어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서북청년회에 협조한 주인공에 대해서는 “나치독일에서 단순 나라 일을 했던 공무원들도 사실은 부역자나 다름없다고 역사는 평가한다. 동혁도 분명한 4.3의 가해자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직접 사람을 죽이진 않았더라도 가해자 편에 섰다”며 “극본 상에는 동혁의 죄로 인해 끝내 가족 관계가 깨진다. 제작 과정에서 주인공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구상도 있었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이기에 실행하지 못한다고 봤다. 만약 작품이 동혁에게 면죄부를 주는 의도로 비춰진다면 결말을 조정할 계획”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2014년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 과정을 <장일홍의 제주 4.3사건 소재 희곡 연구>라는 논문으로 마쳤다. 지금도 사회 통념 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20대 시절이었던 2013년 현기영 선생의 소설 <순이삼촌>을 연극으로 각색해 공연했다. 지금은 IT 관련 업계에 종사하지만 연극 제작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은 공동 연출 등과 협의하며 디테일을 완성했다. 

4.3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난해 6월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 영향이 크다.

김봉건은 “부모님이 일 때문에 바쁘서 어릴 땐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로부터 4.3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할머니가 돼지우리에 던져진 이야기다. 똥·오줌이 차있으니 당연히 끈적끈적할 텐데 다시 보니까 사람들의 피 때문에 그랬다는 기억”이라며 “할머니에게 4.3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이 작품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순이삼촌> 공연도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서 공연하려 했다”고 가족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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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건 작가 겸 연출. 제공=김봉건. ⓒ제주의소리

<잃어버린 마을>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아이돌 그룹 멤버의 캐스팅이다. 인기 아이돌 가수 ‘빅스(VIXX)’의 멤버 혁(한상혁)과 ‘SS501’의 김규종을 동혁의 아들 '재구'로 섭외했다. 두 사람 모두 이번이 연극 데뷔인데, 첫 공연임에도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다.

4.3 공연을 만들면서 아이돌 인기에 편승하는 게 옳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김봉건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아이돌 가수 영향인지, 티켓 1차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12회차 공연이 매진됐다. 나도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개인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네트워크가 조금 있어 아이돌 캐스팅이 가능했다"면서 "섭외할 때부터 좋은 취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첫 연극 무대지만 열정적으로 연기에 임하면서 모두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밝혔다. 앞서 김봉건은 직전에 만든 사극 연극 <여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호응을 얻었다.

또 “4.3은 70년이 흐르면서 생존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 광주 5.18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택시운전사>까지 진화했다. ‘이제는 정통 리얼리즘만 고집할 게 아니라, 환상, 코미디도 아우를 수 있다’는 현기영 선생님의 전국문학인대회 심포지엄 기사를 접하고 용기를 내서 작품을 썼다. 무겁지 않게 웃음이 나도록 관객에게 접근하면서 서서히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잃어버린 마을>은 서울 공연을 마치고 제주 공연도 예정돼 있다. 현재 계획은 4월 12~13일 한라아트홀이다. 2013년 <순이삼촌> 제주 공연 당시 아버지(김명만 전 도의원)와 함께 묶여 구설수에 올라서 인지, 제주 공연 비용은 전액 사비로 부담한다고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내가 나서서 해명도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더 이상 할 말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김봉건은 곧 있으면 만날 고향 관객들에게 “지난해 4월 서울 친구와 제주에 와서 놀이패 한라산의 <4월굿 헛묘>를 봤다. 나는 대사도 잘 들리고 재미있게 봤는데 같이 본 친구는 사투리 때문인지 내용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이런 친구들도 이해할 수 있는 코드의 4.3공연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잃어버린 마을>은 편하게 이야기하는 소소한 작품이다. '서울에서 어린 제주도 출신이 이런 공연을 만들었구나'라고 큰 기대 없이 봐주시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서울=한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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