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기획-르포] 개원 시한 임박했지만 움직임 없어...법적 대응에 올인?

KakaoTalk_20190226_173708056.jpg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국내 1호 외국인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 내국인 진료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개설 허가됐지만, 시한이 다 되도록 개원하지 않고 있다.

겨울 끝자락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2988-1번지. 병원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단단한 자물쇠가 건물 출입을 막았다. 

창문에도 블라인드가 쳐져 내부를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은 취재진 차량 1대를 포함해 달랑 3대 뿐이었다.
 
을씨년스러웠다.
 
병원 주변을 서성이다 보니 건물 안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자세히 보려 했지만, 블라인드가 방해했다. 대화 조차 시도할 수 없었다.
 
내국인 진료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개설을 허가받은 국내 1호 외국인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의 현재 모습이다.
 
조건이 붙긴 했지만, 녹지병원은 개설 허가를 받은 지 2개월이 넘도록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개설 허가를 받을 경우 3개월(90일) 이내에 개설 요건을 갖추고 문을 열어야 한다.
 
제주도가 병원 개설을 허가한 것은 지난해 12월5일. 오는 3월4일이 90일 되는 날이다. 내국인 진료 금지 말고는 추가 제한이 없기 때문에 개원만 하면 되는데도 그럴 기미가 없다.
 
KakaoTalk_20190226_173705059.jpg
녹지병원 출입구마다 자물쇠가 채워져있다.
KakaoTalk_20190226_173705824.jpg
▲ 창문마다 블라인드가 쳐져 내부를 들여다 볼 수도 없다.
◆ “내국인 진료 제한은 위법” 녹지 측 제주도에 행정소송 제기
 
오히려 병원 측은 법적 대응에 더 신경쓰는 눈치다.   
 
지난 2월14일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 명의로 제주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내국인 진료를 금지한 허가 조건을 취소해달라는 취지다.
 
녹지 측은 소장을 통해 “2018년 12월5일 외국의료기관(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중 ‘허가조건인 진료대상자를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한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의료법상 모든 의료기관은 누구 한테도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제주도 역시 이런 취지의 ‘녹지국제병원 바로 알기’ 홍보자료를 제작해 배포한 바 있다.
 
배포 자료에는 “우리나라 모든 의료기관은 어떠한 환자든 간에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병원은 인종과 국가, 종교를 떠나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서술됐다.
 
'진료 거부 금지'를 홍보해놓고 내국인 진료 금지라는 단서를 달았으니, 겉으로만 보면 제주도가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  
 
녹지 측은 환자 진료를 거부하면 안된다는 법을 적극 활용했다. 환자 진료 거부가 위법이기 때문에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것도 위법이라는 얘기다.
 
녹지 측이 조건부 개설 허가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점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이 대목에서 녹지 측의 예전 입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소송의 승패를 가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녹지 측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병원 설립을 '승인'받은 것은 2015년 12월 18일. 당시 녹지 측 사업 계획서에는 ‘외국인 의료관광객 대상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부분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쟁점이 될 수 있다.  
 
복지부는 녹지그룹이 출자 총액 전액(약 778억 원)을 조달하고,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등 법령상 요건을 충족해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녹지병원에 응급실은 없다. 녹지 측은 제주대학교병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힌 상황이다.
 
설사 녹지병원이 개원하더라도 서귀포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결국 환자는 제주대병원으로 이송돼야 한다는 얘기다. 
 
'녹지병원 바로알기' 홍보자료가 꺼림칙했던지, 제주도는 개설 허가 전 복지부에 내국인 진료 제한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다. 당시 복지부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의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유권 해석을 내놨다. 이게 조건을 달게된 근거가 됐다. 
 
제주도는 녹지측이 오는 3월4일까지 개원하지 않으면 청문회 등 절차를 거쳐 허가를 취소한다는 방침이다. 
KakaoTalk_20190226_173704711.jpg
▲ 휴게실로 추정되는 공간에만 블라인드가 없었다. 물론 사람도 없었다.
KakaoTalk_20190226_173703458.jpg
▲ 주차장에서 바라본 녹지병원. 취재진 차량(흰색)을 포함해 총 3대만이 주차돼 있었다.
◆ '숙의형 민주주의 제주 1호' 공론조사 결과는 '불허', 원 지사는 '조건부 허가'
 
녹지병원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와 논란이 계속되자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018년 3월 8일 기자회견을 갖고 "녹지병원 허가 여부는 도민 공론 형성 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6.13 지방선거가 3개월 정도 앞으로 다가온 때였다. 
 
재선에 성공한 원 지사는 녹지병원 관련 공론조사를 시작했다. 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차원의 공론조사는 처음이다.  
 
수개월에 걸친 공론조사 결과는 ‘불허’.  
 
공론조사 추이를 보면 ▲1차 제주도민 3012명 여론조사 찬성 20.5%, 반대 39.5%, 유보 40.1% ▲제주도민참여단 200명 1차조사 찬성 27.7%, 반대 56.5%, 유보 15.8% ▲도민참여단 200명 2차조사 찬성 38.9%, 반대 58.9%, 유보 2.2%로 나왔다. 
 
유보층이 줄어들면서 찬성(20.5%→27.7%→38.9%)과 반대(39.5%→56.5%→58.9%) 모두 늘었지만, 반대쪽으로 더 많이 쏠렸다. 
 
원 지사는 제주도의회 등에서 수차례 “공론조사 결과를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 지사는 지난해 12월5일 “공론조사위원회의 결정을 전면 수용하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어서 불가피한 차선의 결정을 내리게 됐다"며 조건부 허가를 결정했다. 
 
허가가 불가피한 이유로 △중국자본에 대한 손실문제로 한중 외교문제 비화 △외국자본에 대한 행정신뢰도 추락으로 국가신인도 저하 우려 △사업자 손실에 대한 민사소송 등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 △현재 병원에 채용돼 있는 직원 134명의 고용문제 △토지의 목적외 사용에 따른 토지반환소송의 문제 등을 꼽았다. 
 
새삼스런 내용이 아니었다. 그럼 공론조사는 왜 했느냐는 비판이 뒤따랐다.   
KakaoTalk_20190226_173707207.jpg
▲ 국내 1호 외국인 영리병원으로 조건부 허가된 녹지병원 전경.
 
◆ 치열한 법적 다툼 예고

2015년부터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녹지병원은 서귀포시 토평동 헬스케어타운 내 2만8163㎡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건립됐다. 중국 부동산개발회사인 녹지그룹이 약 778억원을 투자했다. 
 
2015년 복지부에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할 당시 녹지 측은 녹지병원 직원을 134명으로 신고했다.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 진료과목의 의사·약사를 비롯해 간호사 28명, 간호조무사 10명, 국제코디네이터 18명 등이다.
 
하지만 제주도의 허가 여부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절반 가까이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 녹지 측은 공사대금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7년 10월31일 대우건설(528억 6871만원), 포스코건설(396억 5180만원), 한화건설(292억 8091만원)이 제기한 가압류 소송에 대해 총 1218억원의 가압류 결정을 내렸다.
 
보건의료노조 등에 따르면 올해 2월14일에는 녹지병원 건물에 21억4866만원의 가압류가 추가로 설정됐다. 가압류를 신청한 채권자는 녹지국제병원 시공사인 금나종합건설주식회사, 형남종합건설주식회사, 주식회사 광동전력 등 3개 업체다.
 
도민 사회에 알려진 가압류 금액만 1239억4866만원에 달한다.
 
추가 가압류가 이뤄진 2월14일은 녹지그룹이 제주도에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날이다. 
 
제주도 등에 따르면 녹지 측은 지난 2월26일 제주도에 공문을 보내 녹지병원 개원 시한(3월4일)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3월4일까지 개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제주도가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연장은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녹지 측 입장을 듣기 위해 관계자와 사무실 등을 통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제주도는 법적 다툼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내국인 진료제한은 의료공공성 확보를 위해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 내·외부 전문가 등 자문을 구하면서 법률전담팀을 꾸려 소송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