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105) 귀덕2리 한림해안로 산물

귀덕1리교차로에서 시작하여 옹포사거리에서 끝나는 한림 해안로는 많은 산물들이 열을 지어 있듯 곳곳에서 용출되고 있다. 특히 귀덕2리 진질코지 일대 해안로는 항벌리진물, 거신물, 병단물, 빌래트멍물, 굼드래기물, 조개원물, 풍채앞물, 큰물 등 많은 산물들이 솟아나는 산물 보고(寶庫)이다.

예전에 소금밭이 있었다는 곳에 병단물(뱅단이물)이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병단이 뜻은 알 수 없지만 이 일대를 예부터 병단이라고 불렀다. 이 산물은 항벌어진물과 인수원 사이에 있는 장흥동 병단원에 있으며, 식수통인 사각물통과 세 칸으로 구분한 빨래통이 있다. 물팡 등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멘트로 덧칠해 일부 개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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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단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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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단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병단물에서 150m 정도 떨어진 동쪽 양어장 건너편에 거신물이 있다. 이 산물은 인수원 오른쪽에서 솟는 물로 물이 남쪽인 한라산 방향으로 흐른다는 데서 연유한 명칭이다. ‘거신’은 ‘거스르다’의 제주어로 거슨물 혹은 거시린물로도 부르고 있다. 이 산물은 돌담으로 쌓은 보호시설 두 군데서 용출되는데, 서측에 있는 거신물은 두 곳에 사각 식수통을 갖고 있으나 파도에 많이 유실되어 일부 시설이 파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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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신물(앞 동측, 뒤 서측).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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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측 거신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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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측 거신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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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측 거신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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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측 거신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항벌러진물은 병단물에서 서측 100m 정도 거리를 두고 바다 조간대에서 용출되는 산물이다. 이 산물은 항아리가 깨진 곳에서 물이 흐르듯 솟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물은 보호시설이 없으며 용암경계대 바위 틈에서 솟아나와 길게 뻗은 용암협곡을 수로로 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일설에는 한 아낙네가 물을 길러 갔다가 물 깃는 허벅이 그만 깨져 "항 벌러진물"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밀물 때는 잠겼다가 썰물 때는 드러나는 물로 시원하고 맛이 좋아 신령수(神靈水) 같다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여름철에는 목욕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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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버러진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빌레트멍물은 한수풀해녀학교가 있는 귀덕2리 포구의 동측방파제 길모퉁이에 있다. 이 산물을 빌레(너럭바위) 트멍(틈이 있는 구멍 이란 제주어)에서 솟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도로 개설하면서 산물 일부가 도로 하부에 묻혀 암거 속에 있다. 최근에 쌓은 듯 큰 바윗돌담으로 보호하고 있는데, 도로 밑 사각암거에서 물이 솟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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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레트멍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물은 굼들애기물에서 동측 200m 가령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산물은 도로에서 출입할 수 있는 계단과 용암바위를 경계로 한 돌담으로 보호시설을 만들다. 산물에는 물통은 없고 물은 큰 암석 하부 용암경계부에서 용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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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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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나신물은 굼들애기물에서 수원방향으로 ‘라신동’ 표석이 서 있는 도로 밑에 있다. 이 산물은 사각식수통이 있으나 모래로 가득 차 있지만 돌담 안 여기저기서 물이 솟아난다. 나신동의 식수로 사용했던 물로 지금은 보존차원에서 보호 중이다. 이 마을 바닷가는 빌레(바위너설의 제주어)로 형성되어 있어 나신빌(나신빌레)라 했는데, 나신은 ‘날(刀)이 선(立)’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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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신동 표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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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신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조개물은 나신물에서 수원리 방면으로 100m 쯤 가다보면 리조트 앞 바닷가 모래밭에 있다. 이 산물은 사각식수통만 남아 있고 보호시설은 멸실되었다. 마을사람들은 모래바닥에서 물이 솟기 때문에 라신물보다 더 맛이 좋아 식수로 애용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남아 있는 사각식수통에는 돌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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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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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 채워진 조개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드넓은 바다가 삶의 터전이 되었던 귀덕2리 바닷가는 여기저기서 솟는 산물로 해산물이 풍부하여 해녀들이 물질도 왕성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산물들은 안내판 하나 없이 대부분 방치되어 있다. 이제라도 마을의 소득창출을 위해 그리고 마을 역사를 보전한다는 차원에서 이 산물들을 관리하고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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