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도올의

<논술과 철학 강의1>이 현대사에서 논술이 갖는 의미를 되 집고, 논술을 잘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을 제시한 논술교본이라면, <논술과 철학 강의2>는 사물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방법을 제시하는 철학교본이다. 저자는 청소년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기에 앞서 그의 최초 철학적 경험이라는 '발과 신발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 철학의 시발점은 나의 몸

▲ 책의 표지
어릴 때 유난히 신발을 잘못 신었다고 핀잔을 많이 들었던 저자는 그가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한 이유가 어른들이 신과 신발의 '대칭구조'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원래 발에는 오른쪽과 왼쪽의 구분이 있지만 신발에는 오른쪽 왼쪽 신발이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신발을 어떻게 신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존재할 수 없으며, 발의 구조와 비슷하게 신발을 신는 '보편성'만이 존재한다고 했다.

신발을 발의 구조에 맞추어 편하게 신는 것이 보편의 획득이기는 하지만 당위가 될 수 없듯이, 철학은 보편을 지향하지만 절대적인 것을 지향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서 나의 발이 생기고, 나의 발에서 나의 신발의 구조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보듯이, 철학적 사유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은 '나'임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에서 '나'와 '나' 밖의 세계를 보통 '주관'과 '객관'이라는 말로 구분한다고 했다.

모든 보편성은 항상 일정한 조건을 갖는다고 했다.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이 항상 180°인 것이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곡면에서는 세 내각의 합이 180°를 넘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여기는 많은 사실들이 결국 특정 조건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 철학은 밝은 배움

서양철학의 어원이 되는 필로소피아(philosophia)가 고대 희랍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고대 희랍인들은 지혜에는 관심이 없었던 자들이라 했다. 그들의 당시 의식을 염두에 둔다면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지혜의 사랑'이라 해석하기 보다는 '지식의 사랑'이라 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한편 동향의 철학(哲學)이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이는 밝은 배움을 뜻하며 이 때 밝은 배움이란 '개방적인 사고', '열린 사고'를 지향한다고 했다.

개방적인 사고란 무전제의 사고를 말하는 것이니, 신앙이나 신념 등을 전제로 한 사고는 절대 철학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지식을 일단 의심(철학에서는 이를 회의(懷疑)라고 한다) 해볼 필요가 있으며 이런 회의야말로 철학의 출발이라 했다. 따라서 교회의 독단이나 권위를 전제로 했던 중세의 철학은 무전제를 전제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중세기 철학(哲學)을 신학(神學)의 하녀(下女)라 불렀던 것이다.

# 철학을 하기 전에 내 마음의 우상을 타파해야

철학을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속의 우상을 타파하는 길이다. 저자는 베이컨의 우상론을 장자(莊子)의 사상과 비교하면서 자세히 설명했다.

제1우상은 종족의 우상으로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우상이다. 인간의 오성이나 자만 같은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장자(莊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당대 최고 미녀였던 마오치앙이나 리지를 보고 놀라 도망치는 금붕어를 가리키며, 당대 최고 미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일종의 '종족의 우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했다.

제2우상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좁은 소견에서 빚어지는 착각들, 개인의 편견 등이 빚어내는 우상을 말한다. 장자(莊子)는 추수(秋水)편에서 '우물 안 개구리'와 '동해바다 거북이'의 대화를 통해서 우물이라는 좁은 세상이 빚어낸 개구리의 좁은 소견을 비웃었다.

제3우상은 시장의 우상으로 장똘뱅이들이 서로 말로 싸우면서 만들어내는 우상, 즉 인간의 언어가 교류되는 과정에서 개념적 약속이 틀리거나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애매한 말이 사용됨에 따라 파생되는 혼란이다. 장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말싸움에서 이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고 했다.

제4우상 극장의 우상은 영화를 봤을 때 마치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와 같이, 인공적 체계를 사실적 체계로 오인하는 현상이다. 베이컨은 위대한 위인들을 지나치게 미화해서 우상화하는 것에 대해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적당하게 엉터리로 배합하는 데 따라 환상적인 철학들, 그리고 이단적 종교들이 무수하게 탄생된다"고 했다.

# 기하학적 이성과 플라톤의 이데아

우리가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이 180°라고 하거나, 1+1=2라고 하는 것은 실제적 경험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좋은 자로 삼각형을 그리고 정교한 각도기로 내각을 측정했다하더라도 그 합은 180°의 근사치가 될지언정 정확한 180°가 되지 못한다. 또 점은 면적이 없고, 선은 부피를 갖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의 관념이 형상화해낸 것이지 실측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다.

이런 기하학적 이해력을 기하학적 이성이라 하는데, 이 기하학적 이성으로 파악한 세계는 기하학적 형상의 세계라 한다. 플라톤은 이 기하학적 형상의 세계를 관념의 세계라 여기지 않고 실재의 세계로 보았으며, 그 세계를 이데아라고 불렀다. 플라토니즘의 특색은 이성이 파악한 형상적 세계만이 실재하는 것이며, 우리의 오감(五感)으로 파악한 세계는 실재가 아니라 그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책은 필자가 소개한 내용 이외에도 경락이나 침술 등 저자의 체험이나 사상이 녹아있는 다양한 분야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다 소개하지 못해서 안타깝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청소년들을 빈곤한 상상력의 소유자로 전락시키고 있음을 안타까이 여기고 있다. 그리고 피폐한 조국강산에서 새로운 문명과 민주질서를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헌신했던 선배들의 성과를 좋은 길로 이끌어달라는 주문도 던지고 있다. 저자가 시종일관 역설했던 바대로 청소년들이 일체의 도그마나 종교적 교리나 온갖 우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서 무전제의 사고를 통해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로 거듭나게 되기를 바란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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