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한봉 광주 ‘들불기념사업회’ 이사장

광주 5.18민주항쟁을 겪고, 지금의 5.18재단 설립을 사실상 주도한 윤한봉 이사장을 만났다. 윤 이사장은 사전워크샵에서 특강을 통해 5.18 민주항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이의 현재적 계승을 실천적인 언어로 명료하게 전달해주었다.

- 광주항쟁이 있은지 25년이 지났다. 광주항쟁정신의 계승이라는 면에서 새삼스럽지만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 윤한봉 이사장
"결론적으로 ‘5월 정신’이라고 할때 이는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이다. 이걸 오늘 날의 언어로 풀면 바로 ‘개혁(항쟁)과 진보(나눔, 평화)’인 것이다. 그런데, 5·18이 전국화되는 과정에서 갑자기 ‘5월에서 통일로’라는 슬로우건이 등장했다. 이것은 운동권의 큰 실수라고 본다. 5월 항쟁 당시 끝까지 싸운 사람들은 대부분 소위 ‘바닥인생’ 들이다. 기동타격대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82%가 영세자영업자, 무직, 고아출신의 사람들이었다. 구속, 부상자의 50% 이상이 노동자, 빈민 이었다. 5월 항쟁을 ‘통일’로 얘기하는 순간, ‘계급’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5월에서 대동으로’가 5월 정신계승의 관점에서 맞는 얘기가 될 것이다."

- 광주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촉발한 항쟁의 도시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가장 진보세력이 발붙이기 어려운 지역이 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87년, 92년 대선에서 김대중씨가 당선이 안되자, 97년도에는 몰표가 나왔다. 97.3%가 김대중씨를 찍었다.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 백기완, 권영길 씨등 진보운동에 대한 지지는 곧 ‘반역’내지 ‘이적’행위처럼 인식될 정도였다. 권영길씨는 97년 대선에서 0.2%, 2002년에는 1.2%를 득표했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았다는 말과 똑 같다."

- 왜 그렇게 되었다고 보나?
"5.18이 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을 통해 전국화되었지만, 87년 대선의 좌절을 통해 재지역화하는데 실패하고 그 의미를 결정적으로 퇴행시켰다. 보다 본질적으로 이는 항쟁과정의 ‘극렬함’이 남긴 부정적 영향이라고 본다. 5.18 당시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겪었던 기대와 절망이 일종의 폐쇄성과 배타성으로 옮겨가지 않았나 하는 거싱다. 이것이 적대적 지역주의와 정치적 보수화로 나타났다. 호남은 역사적, 사회경제적으로 ‘진보의 요람’과 같은 곳이었지만, 5.18 이후 오히려 ‘진보의 무덤’이 돼 버렸다."

-제주 4.3의 해결을 말할 때 ‘광주처럼 되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경계의식이 작용하는 것 같다. 무엇 때문인가?
"최근의 사건으로서 5.18의 해결방식은 가장 모범적이라 할만하다. 최근 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법이나 정부차원의 과거사규명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5.18의 치유과정은 정치적이고 고도의 음모적이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물론 국가의 배상과 보상의 문제는 가장 중요하다. 단지 3~5%정도에 해당하는 내부의 이권다툼과 이해관계의 충돌이 부각되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 90년대 이는 가장 극심했다. 80년 5. 27새벽의 죽음 앞에 살아남았던 자들의 죄의식과 부채의식이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강렬한 투쟁을 만들었는데, 90년대 이후 그 부채의식마저 사라졌다.  5.18대상자의 처우와 관리도 보훈청의 소관이 되었는데, 이는 곧 5.18의 ‘탈정치화’에 다름 아니었다.

기념사업의 문제도 많다. 단적으로 5.18 묘역의 조성만 하더라도, 이는 죽은자를 위령하고 언제든지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대단히 위압적이다. 기념탑을 나는 ‘똥침탑’이라고 부른다. 항쟁주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언제든지 애도하고 추모하고,  묘역앞에서 편히 울기도 할 수 있는 친근한 장소가 되지 못한다. 또 배치상에서도 탑이ㅣ 묘를 막고 서 있어서, 눈이 쌓이면 묘에 눈은 녹지도 않는다. 또 묘역에 이르는 관문이 몇 개이며, 계단은 왜 그리 많은지. 가슴으로 만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제주의 평화공원 조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녀 온 광주사람들이 실망했다. 이런 기념공원 하나 꾸미는 것에서부터 제주는 광주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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