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그리고 아시아(3)] 네팔
연일 150만 이상 참가한 4월 항쟁으로 국왕폭정 종식
공산반군과 평화협상불구 정세는 여전히 안개속 국면
광주의 「5.18 재단」은 올해로 3년째 국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5.18 아카데미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번 아카데미는 태국, 네팔, 필리핀를 대상으로 ‘민주화, 민주주의, 그리고 아시아’라는 주제로 이뤄졌다. 3박4일의 국내 사전워크샵과 8박 9일의 해외연수 일정으로 이뤄진 이번 아카데미에 제주에서는 참여환경연대 고유기 사무처장이 참가하였다. 제주의 소리는 고유기 사무처장의 연수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
전원적 평화에서 혼돈, 그리고 민주주의로
전원적 평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라. 세계의 지붕, 희말라야의 나라 네팔.
필자를 포함한 연수일행이 도착한 네팔공항의 풍경은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공항건물 너머로 연속해 펼쳐진 산세, 이에 호응하듯 열려진 파란하늘과 흰 뭉게구름의 고요.
활주로 주변으로 가득찬 억새의 물결과 상큼하고 싸아한 대기의 기운은 마치 제주에 다시 돌아온 듯 하다. 모든 입국절차가 일일이 수기로 처리되는 공항에서의 수속과정은 오히려 ‘느림’에 대한 안도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네팔의 인상은 상상하던 그대로이다.
하지만, 카트만두 시내로 진입하면서 이러한 첫 인상은 뭔가 모를 불안과 혼돈의 그것으로 대체되는 듯 하다. 중앙선조차 없는 도로를 곡예하듯 교차하는 차들의 무질서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적소리. 낡은 버스에 매달려 우리의 주의를 끌려는 듯 차의 바깥을 쳐대는 젊은이들. 길 한켠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뒤엉켜 싸우는 개들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방콕시내 곳곳에서 행인의 눈길조차 귀챦다는 듯 늘어져 있던 거리의 개들과 사뭇 대조적이다. 숙소로 가는 상가의 골목에서 호객하는 이 곳 사람들의 눈빛은 분노처럼 강렬하다. 저녁 무렵 어두운 거리의 쌓여 방치된 쓰레기더미를 분주하게 뒤지는 아이. 새들의 울음도 지저귐이 아닌 악다구니와도 같다.
히말라야 국가 네팔은 현재 근대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고 혼란한 시기를 겪고 있다. 기나긴 좌절과 절망의 시기에 터져 나온 최근의 민중운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서 네팔 민중은 그 어느 때보다 희망과 기대에 가득 차 있다. ... 결연한 의지로 뭉친 수 천명의 사람들이 국민적 지지를 잃은 정권의 총알, 구타, 협박, 고문, 구속에 맞서 파도처럼 이어지며 평화시위를 전개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향한 움직임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임을 보여주었다.
- 카필라 쉐레타(교스, 전 네팔 국가인권위 위원)
민주주의를 향한 새로운 전환, 2006년 4월항쟁
때문에 올해 4월 일어난 항쟁은 미완의 ‘90년 체제’를 복원시킴은 물론, 지난 15년의 혼란과 피폐한 난국을 매듭짓고 평화회복과 장기적인 네팔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한 자발적 국민봉기였다. 150만명이 넘는 민중들이 매일 거리를 메우며 19일간 이어진 항쟁은 어떤 특정세력이 아닌, 학교, 관공서, 병원, 주부들이 사실상의 주체가 되었다. 국무총리실과 장관들, 거대한 수의 국가공무원들도 동등하게 동참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갸넨드라 국왕은 비상계엄을 통해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하였다. 그 결과 최소한 21명이 목숨을 잃고, 5,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18명이 실종신고 되었고, 1,896명이 감금되었다가 단계적으로 석방되었다.
결국 4월 24일 국왕은 의회 정상화와 입헌군주제, 다당제 민주주의를 수용하겠다며 항복을 선언하였고, 소위 ‘7개 연합당’이라 불리는 의회당, 맑스-레닌주의당 등 7개 정당에 의한 분할지배정부가 구성되었다. 하지만 공화정에 대한 팽배한 국민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왕제폐지 여부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유사한 변호사 단체인 '애드보커시 포럼(Advocacy Forum)'의 대표 만드라 샤마(Mandira Shama)씨는 왕은 외관상으로만 물러나 있을 뿐 소수 정치인, 군부와 여전히 결탁해 있어 왕정복귀와 더불어 더욱 가혹한 폭정이 이뤄질수도 있음을 전하였다. 혼돈의 세월을 넘어 왕정체제의 청산과 민주주의, 평화를 향한 네팔국민들의 염원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강력한 변수, 마오주의 공산반군의 행보
네팔의 마오주의는 1996년 무장봉기 노선을 채택한 이후 10년 만에 2만명 규모로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네팔 국토의 40%를 장악하였다. 지난 2001년에는 마오주의의 대공세로 비상사태까지 선포되었고, 총파업으로 국가자체가 마비될 정도였다. 이들의 장악력은 2004년에는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를 봉쇄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때문에 네팔의 향후 진로에 있어서 마오주의와의 협상성패 여부는 절대적인 변수로 작용되어질 듯 보인다.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워크샵 강좌를 했던 이대훈씨에 의하면, 네팔 마오주의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유사하다. 그들은 군대이면서 동시에 학교이고, 병원이며 농촌개발지원세력이다. 여기에 더욱 피폐해진 국민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마오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네팔 마오주의의 무장투쟁이 시작된 이래 약 15,000명이 사망하였으며, 수천명이 생활터전을 잃었고, 비슷한 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여전히 불법적 살해와 외곽지역에서의 만행이 이어지고 있다.
마오주의는 올해 초부터 ‘총을 내려놓고’ 7개 연합당을 상대로 평화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델리협약’을 통해 공동정권 수립, 제헌의회를 통한 공화국 건설 등 12가지 사항에 대한 합의를 이루었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한편으로 7개연합당내 일부의 왕정과의 결탁, 마오주의에 의해 자행되는 불법적 테러등은 이 평화협상의 과정이 매우 여의치 않음을 또한 보여주고 있어 아직 네팔의 장래를 긍정만 하기에는 이른 듯 하다.
네팔, 어디로 갈까?
연수단 일행은 네팔에서의 이튿 날, 2000M 높이의 나가르콧(Nagarkot)산에 올랐다. 일출을 보기 위해 오른 산에서 일출의 장엄함은 대하지 못했지만, 다시 네팔의 고요와 평온을 접하게 되었다. 이 평화함의 저 아래서 요동치는 네팔의 정세와 민주주의의 행보는 도대체 어디로 향할까? 마오주의에 의해 네팔은 또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대열에 진입하게 될까? 아니면 7개 연합당과 마오주의에 의한 ‘델리 협약’으로 민주주의 공화국의 진전된 질서를 만들어 낼까? 애드보커시 포럼 대표의 말처럼 7개 정당과 마오주의의 12개 합의사항이 단지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일 뿐이며, 마오주의의 장악력이란 사실은 ‘이념’이 아닌 피폐한 국민삶의 반영일 뿐이라서 다시 왕정으로 복귀하고 말 것인가?
연수단 일행은 이 날 오전 ‘farm house'라는 이 산의 기슭에 있는 한 농장을 찾았다.
필자는 여기서 ’양츠이‘라는 아이와 즐거운 한 때를 함께하게 되었다.
이 6살의 아이와 박물관 일대에서 내내 우리 켵에서 손을 벌리며 쫓아다니던 네팔의 아이들에게 네팔의 미래는 어떤 약속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다음은 필리핀편이 이어집니다.>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