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돈 칼럼] 최근의 웰빙 열풍을 보고

웰빙이 뜨고 있다. 가히 웰빙 신드롬이라 할만하다.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웰빙 바람은 이제 하나의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새로운 이 시대의 문화코드이다.

‘즐겁고 건강하게 살자’는 모토 아래 이른바 ‘웰빙족’들은 요가와 명상, 아로마 테라피, 스파. 피트니스, 스킨 케어, 뷰티 케어, 유기 농산물 등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웰빙 바람을 타고 명상산업과 뷰티산업이 새로운 창업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특화수익사업의 차원에서 앞 다투어 명상산업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경상북도는 “최근 웰빙 마인드를 우리 정신문화인 명상과 연계해 새로운 여가문화인 명상문화 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에 5만 여평의 부지를 확보해 대규모 명상웰빙타운을 세운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명상웰빙타운에는 요가, 참선, 태극권, 선무도 등 명상수련과 기공한방요양, 명상음악 감상, 명상춤, 전통무예 공연, 인공온천, 향기요법, 경락요법과 같은 명상자연치유 등 몸과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은 다 모여 있다. 이밖에 지역 전통문화 자원을 이용한 명상문화 웰빙 상품을 개발하고, 세계명상문화축제도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경주시도 500억원 규모의 사업비로 참선과 요가를 하는 명상센터를 세우고, 온천, 산림욕장 등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며, 전남 영암군은 1천억원 규모의 사업비로 월출산 자락에 기 과학 연구소, 체험관, 수련관, 전시관, 교육관, 상품관을 갖춘 기 마케팅에 나설 채비다.

국내에서 명상의 기업화에 나선 선두 주자는 단월드(옛 단학선원)이다. 단월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단월드 빌딩에 본부를 두고, 홈페이지(dahnworld.com)에 ‘21세기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건강문화 교육기업’이라고 회사를 홍보하고 있다. 자회사로 출판사, 명상물품 유통회사, 명상전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1998년에 문을 연 수선재(soosunjae.com)는 명상과 웰빙 공동체를 표방하며 신비 위주의 기수련이 아닌 대중적이고 참신한 명상문화를 일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해 11월 회원들끼리 광화문에 명상편의점을 창업한데 이어 일본 도쿄 2호점, 서울 인사동 3호점을 개장했다. 명상편의점에서 사람들은 차를 마시거나 명상음악을 들고, 지도사의 도움으로 팔문원 체험, 선체조 같은 명상 수련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웰빙은 무엇인가. 웰빙은 Well(잘), being(삶), 즉 글자 그대로 잘 산다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건강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만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웰빙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즉 건강한 삶이란 육체나 정신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까지도 온전해야 비로소 성취될 수 있음을 뜻한다.

환경이 파괴되거나 훼손되고, 사회가 온갖 불의와 악으로 오염된 곳에서 나 혼자만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염된 물에서 자라는 물고기가 건강할 수 없듯이, 오염된 사회에서 개인의 건강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몸과 마음, 사회 이 3자의 완전한 조화로움이 웰빙의 전제 조건이다.

그럼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잘 산다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는가. 근래의 웰빙 열풍은 빠름과 고도성장을 미덕으로 여기던 근대적 가치에 대한 심리적인 일탈로 볼 수 있다. 국민소득 1만불 시대로 들어서면서 그동안 먹고 살기에 바빠 도외시했던 몸과 마음을 챙기고 돌보자는 탈근대적 가치관 속에서 많고 빠른 양적 위주의 삶을 지양하고, 작고 느리더라도 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질적 삶의 소망이 아니겠는가.

스트레스가 많은 고소득 직종에서 보수는 적지만 근무 시간이 적고 여가 시간을 많이 갖는 자리로 직장을 옮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운시프트(Downshift)족’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삶의 속도를 ‘저속 기어로 바꾼다’는 뜻이다. 고속 기어를 넣고 오직 앞만 보고 내달리던 사람들이 ‘느림의 건강학’과 ‘느림의 미학’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웰빙 현상은 긍정적으로 읽힌다.

그러나 웰빙 열풍이 새로운 욕망을 창출해내는 자본주의의 시장 확대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웰빙 트렌드의 상업주의에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것은 문제다. 고도의 내면적,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명상’과 외형적, 물질적 가치만을 탐식하는 ‘산업’, 물과 기름처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단어의 어색한 만남에서 우리는 불을 찾아 날아드는 부나비처럼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에든 몰려드는 자본의 무서운 근성을 본다.

비싼 돈을 들이더라도 몸에 좋은 유기 농산물과 건강 식품을 먹고, 여가 시간엔 헬스 클럽에 나가 몸을 만들고, 명상 센터를 찾아 정신을 수련하는 ‘양질’의 삶을 살라고 자본은 끊임없이 부추긴다. 누가 이런 삶을 마다하겠는가. 그렇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저소득 빈곤층에게 이러한 웰빙은 공연히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웰빙이 돈 많은 호사가들의 고급 취미나 과시적 소비에 머문다면 그것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또 하나의 값비싼 상업 문화일 뿐이다.


흔히 말하듯이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가운데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 교’가 가장 강력한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잘 사는 것이 개인의 이기적 욕망의 충족에만 치중한다면 반쪽만의 불구적인 웰빙이 될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말이 시사하듯 가진 자들의 도덕적 책무는 건강한 사회로 나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

개인의 건강에서 사회의 건강을 생각하고, 개인의 몸과 마음에 한정되는 소극적인 웰빙에서 사회의 건강까지도 생각하고 실천하는 적극적인 웰빙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 홀로의 웰빙에서 이웃의 웰빙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곳에, 개인과 사회, 자신과 타인의 조화로운 삶 속에 진정한 의미의 웰빙이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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