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냐 군사기지냐(1)] 고창훈 세계섬학회장'군사기지-평화섬 가든' 놓고 도민 선택 물어야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공군기지 건설가능성을 둘러싼 도민사회의 찬반 갈등, 제주와 중앙정부 갈등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중심이 돼 태스크포스가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논의의 다양성, 정보의 투명성, 도민들의 참여성 면에서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제주의 소리는 군사기지 문제와 관련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 제주대 고창훈(행정학과) 교수의 글을 5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세계섬학회장이기도 한 고창훈 교수는 1988년 송악산 군사기지 문제가 제기됐을 당시 최초로 '평화의 섬'개념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 논문의 원제는 '세계평화섬 정책 이끌어 갈 선도프로젝트가 필요하다-제주특별자치도의 세계평화섬가든(World Peace Island Garden)과 중앙정부의 군사기지건설계획의 해결에서의 세가지 기준과 갈등관리를 위한 제언' 입니다. /편집자 주 

제언 1> 군사기지 딜레마에 휩싸인 '세계평화섬 제주도'
                       
역사, 문화, 그리고 자연에서 해결책을 찾아라     

가. 세계평화섬 정책을 이끌어 갈 국채사업으로 세계평화섬발전 10개년 계획이 필요하다  

▲ 고창훈 제주대 교수·
항공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세계가 하나 되는 곳’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따스함을 알린다. 이러한 홍보 말  때문만은 아니지만, 외국인 학자들로부터 " 미국 정부마저도 하와이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여 발표하지 못 했는데  한국정부는 어떻게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였고( 2005.1.27), 거기에다 왜 제주도를 특별한 한반도의 자치도로 발전시켜 나아가 보겠다는 결정(2006.7.1.)까지 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다"라는 지적을 들을 때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평화섬 정책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묻게 된다.

최근 한국정부는 대양해군의 해군항을 건설하고 공군은 나름의 전투비행대를 창설하여 한반도 안보의 요충지로 발전시켜 나가는 계획을 구체화시켜 시행하려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나름의 논리를 마련하고 정부예산까지 확보하여 독단적인 집행을 해나가고자 함으로써, 코리아타임스의 지적처럼 제주도가 “딜레마에 빠져있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세계평화섬정책을 구해 나갈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 'Peace Island' in  a Dilemma over the Naval Base: Korea Tines : 2006년 7월 17일자) 발휘할 수 있는가” 하고 걱정들을 한다.

딜레마에 빠진 제주,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당사자인 제주도 해당지역 주민들의 경우 국방부와 해군의 해군항 건설계획은 주민의 동의가 없는 일방적 강행이라 지적하면서, 군사기지 태스크포스 팀의 운영도 군사기지건설을 정당화시키는 과정중의 하나라는 인식하에 참여를 거부하고 반대투쟁에 나서고 있다.

모슬포의 주민들은 일차적으로 모슬포의 전적지 등을 문화관광지로 발전시키는 한편 모슬포 전 지역을 미국의 노쓰다코타주와 캐나다의 마니토바 주에 걸쳐 조성된 국제평화가든( Int'l Peace Garden)의 비전과 비견할만한  세계평화섬 가든 ( World Island Peace Garden)으로 조성하여 동북아시아 평화문화의 상징물로 발전시켜나가자는 아이디어의 완성을 제기하면서 군사기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이다.

세계적 평화석학들, 제주도 '세계평화의 섬 가든' 조성 정책 제언

이러한 국방부 중심의 군사기지 강행추진과 해당주민 중심의 반대투쟁 사이에서 제주도의 경우 지역 국제평화가든을 건설하려는 아이디어는 세계평화의 섬 1주년을 기념하는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의 워크숍에서 제기되었고, 2006년 7월 제 6차 피스아일랜드 포럼에 참여한 세계 여러나라의 학자들이 제기한  정책청원서에서는 송악산 공군기지의 ‘평화문화재유물’과 화순항을 관광미항으로 묶어 ‘세계평화섬 가든’을 조성하는 제주형 특화사업( Peace Island Development Project)을 시행함으로써 이 일대가 세계평화섬 제주의 역사 문화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지는 세계적 명소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논리가 제기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염원이 지역민이 소망일 뿐더러 제주도의 발전 방향으로서 ‘세계평화섬의 평화정책’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일이므로 이를 연구하여 구체적인 안으로 만들어지고 제시될 수 있도록 제주도가 민간기관에 이의 연구에 대한 계획과 예산을 잡고 용역을 주어 연구하게 하여 그 안의 기본 골조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같은 땅의 장소들을 공군기지와 해군항을 합하여 군사기지로 이용하려는 계획은 이미 제시되고 있으므로 이 ‘세계평화섬 발전안’ 안 역시 그 큰 가닥을 잡고 내용을 확정짓고 제주도가 이러한 제주도의 미래정책에 대하여 내세운 세 가지 기준, 즉 (1) 세계평화의 섬 정책과의 부합성 여부 (2) 경제적인 성장효과 여부 (3) 지역민과의 동의여부에 어느 안이 더 기여하는가를 충분히 논의하고 연구할 수 있게 한 후 도민들이 결정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 제주도가 T/F를 구성하여 이에 대한 자료수집 등을 하겠다고 하였는데, 필자의 판단으로는 ‘세계평화섬 발전안’이 연구되고 제시되는 시점까지는 결정을 약간 늦출 수 있는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평화섬 발전안'과 공평한 연구 보장 위해 해군기지 T/F 결정 늦춰야
 
지난 7월 6-7일 서귀포의 칼호텔에서 열린 제6차 피스아일랜드 포럼에서는  2007년 안이 만들어지고 2008년의 공론화를 거쳐2009년 결정이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과정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현실성 있는 지역사회의 대안이 연구되고 논의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주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군사기지화의 문제는 1988년부터 무려 18년간이나 연구되고 계획되고 제시된 반면, 세계평화정정책은 1년 9개월의 걸음마 단계에 있어 지금 현재 평화섬의 다섯 가지 근원적 연구를 한 수준에 있으므로 이에 근거한 핵심정책내용과 방향의 가닥을 잡아 나가야 할 뿐더러 이 속에서 ‘세계평화섬 발전안’도 만들어지고 제시되어야 한 지역의 발전방향을 둘러싼 두 가지 정책에 대한 공평한 연구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주특별자치도 2005년 9월 지방선거이후까지 해군기지 논의 중단을 결정했고, 2006년 6월 문제해결의 3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T/F의 구성을 하였지만 해군기지 반대측은 T/F가 이 문제에 공평한 역할보다는 해군기지 건설을 합리화한다고 의심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만약 제주도가 책임있는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앞의 세가지 기준에 의한 선택을 위해 세 가지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도민 선택의 ①공평성 ②구체적 근거와 사례제시 ③국내외 사례 비교제시 돼야
 
우선 대안선택의 공평성의 확보이다. 국방부는 해군기지와 공군기지 건설을 염두에 두고 오랫동안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국가안보적 차원의 과제라 하고 지역민들의 단순한 몇 가지 우호적인 발언이나 조사 등을 찬성으로 간주하거나 확대해석 적요하여 지역주민의 동의로까지 조작하여 절차적 정당성에 하자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제주도민이 스스로의 대안으로 ‘세계평화섬 정책 발전안’을 정책방향으로 제시하고 잡고 있는 만큼 이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며, 이 안을 해군기지와 공군기지의 군사기지건설안과 비교할 수 있게 해야 내용적 정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세계평화섬 환경가든이라는 정책대안의 중심 내용을 제시하여 제주도민들이 만들어 낼 세계평화섬 정책안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제주도가 제시한 세 가지 판단기준에 대하여 구체적인 비교항목의 근거나 사례가 제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평화섬 정책과의 부합성 정도는 제주도가 스스로 정립한 다섯 가지 평화섬 개념의 근원의 내용과 이러한 내용과 두 가지 정책안의 부합성 여부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평가기준으로서 타당성을 갖기 때문이다.
 
다음의 기준으로 제시한 해군기지의 지역경제의 효과에서도 중요하고도 적절한 국내사례와 외국사례( 하와이, 오끼나와, 그리고 괌)에 대한 비교를 통해 그 기준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여기서는 미국의 하와이와 괌, 일본의 오끼나와 사레를 제시하고 그 비교의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제주도가 이 문제에 대한 민주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꼭 고려해야 할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에 국제평화 가든을 조성했듯, 섬과 대륙의 교차로에 세계평화섬 환경가든을 조성하는 일이 절실하다      

1) 캐나다 미국의 국경에서의 평화가든의 조성 77년 ( 1929-지금)  

캐나다와 미국의 광활한 국경에 평화가든의 생각이 구체화되면서 그 개척의 첫 삽을 뜬 것은 경제대공황 직후의 어려움 속에서였다.
 
1932년 7월 14일 미국과 캐나다 시민 5만명이 국제평화공원의 부지 헌정식 겸 기공식에 참석하였다. 1929년 캐나다 식물학자 헨리 무어 박사의 제안으로 1929년 미국과 캐나다 양국의 평화공존을 기념하고 세계평화에의 헌신을 표상하기 위하여 국제평화가든을 제안하였고 같은 해 미국 정원가학회에서 추인되어 국제평화가든 위원회가 구성되고 후원 조직으로 국제평화가든 의회가 결성되고 양국의 자생식물들, 온실, 다양한 종류의 정원들, 라디오 방송국, 학교를 포함하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 진다.

자금조달은 신문, 라디오, 연설을 통한 캠페인으로 충당되는데 소수로부터의 고액 기부보다 다수 특히 학생들의 참여를 장려하면서 '우리의 정원'을 표방함으로써 시민 모두가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고취시켜 나가면서 당시의 모금총액이 5백만 달러에 이르렀다.  부지선정 위원회는 북미대륙 중심지역으로 결정하여 캐나다 Manitoba주로부터 1451.3 에이커, 미국의 North Dakota로부터 888 에이커 기증을 받아 시작됐다. 이는 국제평화가든 사업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캐나다-미국 국경, 50년 역사끝에 '국제평화공원' 기본 틀 완성

이후 1934년에는 미국 시민 보호단 (CCC) 캠프가 설립되고, 1934-1941년에 초기공사가 이루어져 오두막, 자갈길, 다리, 야외취사장, 원형극장, 댐, 인공호수, 저수지, 산림녹화, 담장과 방풍과 야생동식물 보호 차원에서 대규모 조림사업이 이루어진다. 1950-1955에는 평화 패널, 테라스 패널, 침상원, 폭포 패널 등 전원사업이 이루어지고, 1956년에는 부대시설 로 음악관, 식당, 부엌, 다양한 지원시설 확충되고, 1962년  트랙, 야외훈련장, 승마시설 건설, 1964년에는 두나라의 국경에 상징적 정문 완공된다. 1965년  Errick F. Willis 관 건설, 1966년 대형 꽃시계 기증 (Bulova 시계회사), 1968년 모든 종교를 망라하는 평화 사원 건설, 1975년 종탑 건설, 1981년 프리메이슨강당 건설, 1982년 평화탑 건설 (36.6 미터)을 거쳐 50년의 역사 끝에 국제평화공원의 기본 틀이 완성된다.

1983-1987년의 시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로부터 가든건설의 보완 등에 대한 제안과 기증이 너무 많이 제시되자 14인 기획위원회를 구성 정원계획 변경안인 종합안을 마련하고, 1986년에는 North Dakota 주부 분수 건설하고 1994-1995년에는 6동의 새 숙소와 500석의 공연센터 건설한다. 

정원측의 집계에 따르면 방문객 수는 1989년에는 12만7000명이었고, 1995년에는 2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정원의 주요 이용 현황은 1977년 미국과 캐나다 간의 국제분쟁 해결 회담장소, 1995년 22개국 2778명의 학생들 국제음악캠프 참가 등의 국제행사가 이루어지는 등 인류의 위대한 야망과 숭고한 이상인 세계평화의 산 증인이자 비전창출의 장소로서 두 나라 국경에 존속하고 있다. 

2) 송악산에 평화추구의 사고와 노력을 세계평화섬 환경가든으로 성숙시켜나가야 한다 ( 1653- 내일).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평화가든의 꿈이 현실화했다면, 송악산 일대에 제주도 세계평화섬의 횐경가든에의 꿈을 생각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상은 무엇이며 오늘 속에 무엇으로 살아나고 그것이 세계평화섬 환경가든의 조성을 통해 아일랜드 평화를 이어나가고자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 360년전 대만에서 일본으로 가던 스페르베르호라는 배가 태풍으로 모슬포 용머리 해안가에 이르렀을 때 그 선장 하멜은 "여기서 죽는구나"하고 했지만 제주목사 이원진 등을 포함한 관원들은 하멜을 포함한 36명의 선원을 후하게 대접했고 보호해주었다 ( Hamel's World). 그들은 이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가혹한 조사와 대접을 받다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하고 후에 네델란드로 돌아가 한국과 제주를 유럽에 알리는 책을 쓰게 되고 이 때 그는 제주도를 켈파트 (Quelpart)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 분쟁을 해결하는 구원의 땅이라는 의미가 있음) 그는 제주도에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350년을 기념하여 용머리 해안가에 제주도가 유럽에 평화적인 지역으로 알린 네델란드인 헨드릭 하멜과 제주도 사람들의 만남을 기념하여 스페르 베르호의 복원을 하여 세계평화섬의 국제적 의미를 담아 넣는다.

그 이후에도 송악산 일대를 둘러싼 평화와 전쟁의 기억들은 다양하게 쌓인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9년 유배의 삶 속에서 세한도와 추사체를 남긴 예술적인 삶은 그 자체가 송악산을 울리는 평화사상이어서 추사적거지로 남아 있고, 1901년 이재수 장군 등이 이끈 신축항쟁 역시 지역 나름의 평화를 지역민의 투혼을 남겼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는 송악산 일대를 전쟁과 군사의 기억으로 덧씌워 놓는다. 1930년 송악산 일대 공군비행장을 건설하고 전쟁의 기지로 활용한다. 그리고 1945년에 이르러 7만에 이르는 대규모의 일본군 주둔을 시키면서는 송악산 일대에 수많은 진지 동굴을 파 놓는다.
해방후 이곳은 한국군 제 9연대 주둔과 제주 4.3을 지휘한 무장대 사령부와 4.28 화평회담에 대한 기억 역시 간직하고 있다. 전쟁수행에 대한 기억도 있다. 6.25 발발 후 모슬포에 제2훈련소가 생기고  안덕의 화순항도 군사항으로 사용되어 한국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역할을 수행한 기억이 있다. 1950년 섯알오름에서의 4.3희생자를 집단학살하였고 훗날 백조일손지묘의 기념탑이 세워진 기억도 갖고 있다.

350년 이상 평화와 군사의 기억을 간직한 모슬포 송악산 일대
 
350년 이상 평화와 군사의 기억들을 간직한 송악산 일대가 다시 초점을 받기 시작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88년 송악산 공군기지건설과 2000년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이다. 현대전에서 복합전이기 때문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이를 뒷받침하는 공군기지는 당연히 같이 들어오게 된다. 또 하나는 1991년 세계평화공원이 되어야 한다든가, 안보공원이 되어야 한다든가, 전쟁과평화 공원, 세계평화촌, 전쟁관련 근대문화유적 및 유물로 지정, 그리고 세계평화섬 환경가든으로의 육성이다. 이러한 사고는 이 땅은 역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그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국제관광이나 세계평화의 개념과 연결 짓는 사고의 표현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을 받는 사고는 ‘세계평화섬 환경가든’이라 보여진다.  우선 제주도가 한국정부에 의해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을 받았다면 이를 세계적으로 상징화시킬 수 있는 ‘세계평화섬 환경가든’이 필요할 뿐더러 이를 향후 50년 정도의 노력을( 2006-2056년)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육성하자는 점에서 미국과 캐나다 국경의 국제평화가든의 사고와 비견할 만하다는 점이다.

둘째 제주도의 환경가든은 평화문화와 관광 및 환경 그리고 교육을 종합하는 '섬평화'의 실용주의적 종합을 생각한다는 점이다. 제주도의 경우 4.3평화공원이 2008년 완성되는데 이는 인권과 평화교육의 상징으로 육성되어지고, 중문단지의 제주국제평화센타는 연구 중심이라면, 송악산의 환경가든은 제주도민과외국인 모두가 평화환경가든을 조성하면서 아일랜드 평화사상의 나무와 숲을 가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제안하는 '아일랜드 평화환경가든' 은 네 가지 지역의 역사 문화, 자연, 환경을 국제관광과 평화의 시각에서 묶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1) 아일랜드 환경가든의 경우 송악산 알뜨르 비행장 유적지 일대의 60만평의 문화유적지내에 문화유적지의 복원은 물론 유엔평화활동지원센타, 국제음악공연장과 음악캠프, 아시아환경가든, 차이나타운. 세계섬환경가든 그리고 국제평화마을단지로 구성하되 지역도민의참여 속에 개발발전시켜 나가게 하며, 향후 제주도가 유치하게 될 아시아평화교육센타 등의 기구를 유치하는 등의 기본 방향을 확정한다.
 
 (2) 아일랜드 환경가든의 경우 제주지역 서남부구권을 세계평화섬의 핵심사업지역으로 연결 짓는 핵심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우선 모슬포의 송악산 일대의 세계평화섬 환경가든 안덕 화순항의 국제미항의 관광항구로의 개발과 평화크루즈 사업의 입안과 실행, 용머리 해안 스페르 베르호 등을 보완하는 기념관 건립, 하계리 바닷가의 화석지대, 고산지구의 신석기 유물 박물관, 가파도 고인돌 박물관과  마라도 지역의 환경가든으로 발전계획 등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3) 기본 계획안에는 20개의 격납고의 보수사업, 전통적인 오두막, 자갈길, 다리, 야외취사장, 원형극장, 댐, 인공호수, 저수지, 산림녹화, 담장과 방풍과 야생동식물 보호 차원과 세계의 여러지역 사람들이나 관광객들로부터 대규모 식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2008년 이후평화 패널, 테라스 패널, 침상원, 폭포 패널 등 전원사업이 이루어지고, 2009년에는 부대시설 로 음악관, 식당, 부엌, 다양한 지원시설과  트랙, 야외훈련장 그리고 섬 지역으로의 출입과 육지로부터의 출입이 가능하도로 평화섬의 두개 의 문이 건설되어진다. 그리고 평화 사원, 평화탑 건설, 그리고 헨드릭 메이슨 강당, 추사 김정희 예술관 건설, 국제기구사무실 건설 등이 이루어진다면 송악산의 세계평화섬 제주의 상징이 될 것이다.

  (4) 제주도는 위와 같은 내용들을 담을 수 있는 송악산의 세계평화섬 환경가든 조성계획에 대한 연구용역을제주발전연구원이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타로 하여금 수행하여 제주도민들에게 2008년 상반기까지 제시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내용과 화순항 해군기지와 송악산공군기지안을 비교시켜야만 정확한 판단이 가능해 질것이다. 특히 유엔평화활동지원센타나 세계 평화의 섬 상징물 건립에 대한 용역을 하는 경우 세계평화섬 발전 10개년 계획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평화의 미래비전을 알리는 브랜드의 의미도 살릴 수 구체적인 안이 가능해진다. / 고창훈 제주대 교수·세계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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