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아시아(5) 에필로그] 유일한 군비경쟁 지역 아시아에서 제주가 평화지대로서 완충역할 자임해야

# 왜 ‘아시아’ 인가?
연수기간 동안 내내 ‘왜 아시아인가’ 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그 동안 우리에게 늘 배우고 겪어봐야 할 ‘외국사례’는 우리보다 선진화된 서구나 미국 등이 그 대상이 되어 왔다. 이들을 벤취마킹 잘 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아시아 3개국 연수과정으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생각이 물꼬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왜 아시아인가? 우리가 방문한 3개국의 민주주의 상태와 민주화의 행보가 우리와 정도는 다르지만 비슷해보이기 때문인가?

민주주의 문제에 관해선 대구 카톨릭대 이정옥 교수는 ‘공동 육아’라는 표현을 통해 접근한다.

한 아이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 온 마을의 관심이 필요하듯, 한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시민운동의 이름으로 이 나라들을 방문한 배경에는 이러한 의도가 배경이 되었다.

이미 우리나라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아시아를 국제연대의 중요한 의제로 삼기 시작했다.

동티모르나 미얀마의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표명이나, 필리핀에 아시아 NGO센터를 개설해 시민단체들과 아시아를 본격 매개하는 일 등이 그렇다.

환경운동단체들도 아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대한 감시활동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미안해요 베트남’으로 상징되는 국내 평화운동의 새로운 흐름도 아시아적 성찰 위에 기반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필리핀 시민운동가가 살해당한 일을 놓고 국내 시민단체들이 필리핀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만큼 아시아는 적어도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바로 이웃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 되었다.

아시아라는 말 자체가 유럽에 의해 지칭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지금의 ‘왜 아시아인가’하는 물음에도 서구가 하나의 큰 배경으로 작용한다.

‘아시아의 재발견’으로 표현되는 서구의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이데올로기 경쟁이 경제의 세계화로 대체되면서,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데서 연유한다.

이 순전히 경제적 동기에 의해 비롯되는 서구에 의한 아시아의 재발견은 최근 아시아 내부에서  벌어지는 ‘아시아론’의 한계에 다름아니다.

부산대 박광주 교수는 이러한 한계의 양상에 대해, “최근 들어 급작스레 그 논의가 증폭되고 있는 아시아론은 그 정체성이 여전히 경제적 관점에 의해 주로 논의되고 있거나, 서구가 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언급하고 있는 데 반해 정작 아시아인 자신들은 전혀 공통의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있지 못하”는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아시아 국가간 공동체논의가 주로 서구의 세계화에 대한 대응적 성격으로 형성되고, 때문에 ‘협력’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협력방안과 관련해서는 각국의 엇갈린 이해관계로 제대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현실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아시아 국가들 상호간의 증대된 유대와 협력은 아시아인들이 자신의 문제 -정치, 안보, 경제등 여러 측면의- 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 카드만두의 거리. 아시아의 정체성은 구성원 스스로가 타자화된 정체성을 찾고 재규정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20세기 후반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는 동아시아 나라들의 공통점의 발견을 촉매로, 이것을 가능케 한 사회문화적 특성, 유교주의와 같은 전통적 가치관의 문제로까지 그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아시아가 공동체를 이루는 조건으로서 비로소 정체성에 관한 내부합의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전개될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연재의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는 민주주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민심은 천심이다’와 같은 아시아의 전통적 민본주의 사상을 통해 서구 수준을 능가하는, 적어도 대등한 수준의 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원을 아시아 내부에서 찾아 이를 촉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공동체의 염원은 이룰 수 있을까. 사진은 필리핀 민주화기념재단 희생자에 대한 전통적 참배의식 장면.
이정옥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식민지 이전 아시아의 전통은 인도의 ‘판자야트’(panchayat, 마을 장로회의)' 사례와 같이 유교와 그 밖의 아시아의 종교철학 등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의 흔적이 세심하게 자리잡고 있다.

국가주도의 상호관계(Nationalism)로 부터 EU등으로 대표되어지는 지역주의(Regionalism)의 대륙별 체제로 재편되어지는 세계질서의 양상, 여기에 새롭게 대두되는 아시아의 가치.

그것이 외부(서구)로부터의 재발견(시장주의)과 이에 대당한 안으로부터의 ‘아시아의 아시아화’(정체성에 기반한 공동체 지향)로 이어지고 확대되어지는 지금에서 ‘아시아’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서만 조명되어진 우리(한국)의 정체성을 재조명하고 재규정하는 중요한 모티브로 삼아야 한다.

혼자서는 정체성을 말할 수 없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와 관계했던 아시아 나라들과의 비교와 성찰을 통해 우리를 ‘재규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늘 정체성이란, ‘전통위에 선 자부심’이나 ‘미화된 역사를 통한 민족적 일체감’같은 것으로 교육되어져 왔다.

하지만, 우리가 외세의 침략으로 고난을 겪었듯, 누군가에게 우리 또한 고통을 안겨 준 외세였다는 자각과 성찰.

▲ 필리핀의 아이들. 우리가 함께 보살펴야 할 우리의 아이들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원조가 필요한 가난의 시절을 겪은 것 처럼, 지금 누군가 또한 우리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연대의 실천.

늘 친숙하게 느껴지는 미국과 유럽은 멀리 있는 존재이지만, 보다 동질적인 연원의 세계가 바로 아시아라는 것. 그리고 사실은 그 친숙한 것 같은 미국과 서구의 존재가 아시아의 연원적 동질성과 정체성을 왜곡하고 현실적으로도 방해해 온다는 냉엄한 인식.

자각과 필요에 의한 ‘상상의 공동체’로서 아시아는 바로 우리의 문제가 아닐까?

# 평화의 섬 제주, 아시아와 어떻게 만날까
우리가 아는 아시아에 ‘약자’란 없다. 모두가 강자다. 중국이 그렇고, 일본, 중동이 그렇다.

이질적인 문화적 특성과 별개로 이런 현실관계가 아시아 공동체를 이루기 어려운 조건으로 지적되곤 한다.

때문에 UN에서는 “도대체, 아시아에는 대표가 없다”는 얘기가 곧잘 나온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 위상을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로 삼은 데는 이런 현실이 어느 정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상대적 약소국으로서 한국이 지리적 실체를 가지고 균형추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다. 대통령 직속 관련 위원회도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에서 ‘동북아시대위원회’로 어느 새 바뀌었다.

▲ 단순히 지리적 실체가 아닌 삶의 현장으로서의 아시아 상상의 공동체를 이루는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태국 아이가 전하는 평화의 인사.
그렇지만, 한국이 갖는 위치는 여전히 균형자적 요소가 많다는게 중론이다.

심지어 한중일 학술세미나를 하더라도, 일본이 초청하면 중국이 안가고, 중국이 초청하면 일본이 안가는데, 한국이 초청하면 모두가 참가한다는 것이다.

1967년에 결성된 ‘동남아 국가연합(ASEAN)'의 경험은 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좋은 선례로 평가되고 있다.

심지어 크게는 100배 가까운 회원국 간의 경제격차에도 불구하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 향후 아시아 공동체 형성과정에서의 남아시아 등 경제적 낙후성으로 배제될 수 있는 국가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선험적 동기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세안을 주도했고, 사실상 최초의 아시아 공동체구상를 주창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조차도 동아시아 차원에서의 지역협의체를 구성하기란 매우 어려움을 강조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갈등적 요인이 많은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증대되고 있는 군비경쟁 때문이다.

▲ 아시아와 만나는 일은 가난과 고통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으로 시작된다. 필리핀 철거민정착촌의 사람들.
세계적인 군비축소 추세에도 동아시아는 앞으로도 경제성장이 오히려 군비증강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바로 이 군비경쟁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까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미 작년 전력증강예산문제로 이는 큰 논란거리가 되어 오고 있다.

동북아균형자론을 주창한 노무현 정부가 군비경쟁이 동북아 평화체제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기 보다는, 오히려 자주국방이란 미명하에 전력증강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동북아 갈등통합과 평화와 협력을 위한 실질적인 균형자 노릇을 할려면, 한미동맹체제 변화를 이유로 한 자국 군사력의 증강을 꾀하기 보다는 분쟁개입 불가원칙과 더불어 유엔이 공식적으로 요구한 평화유지활동에 한해서만 동참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동맹을 앞세운 원칙 없는 군사행동 또는 갈등 유발형 군사개입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이 문제는 제주도에도 현실로 투영되고 있다. 바로 전력증강을 이유로 한 군사기지 건설론의 문제와 평화의 섬 문제의 충돌이 그것이다.

‘세계 평화의 섬’ 지정이 정부에 의해 법률로서 이뤄진 것이니 만큼, 이것과 상충되는 군사력 배치의 문제는 무원칙한 정부의 외교안보철학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때문에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서 어떻게 아시아와 만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군비경쟁이 가속화되는 동아시아에서 아시아공동체 구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외교적으로 이는 세계흐름에 반해 군비경쟁이 이뤄지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의 완충을 위한 거점으로서 적극적인 자기위상을 갖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도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면서, 국제교류의 협력의 거점으로 제주도를 상정한 바 있다.

평화의 섬 제주는 이런 위상을 우리 스스로 만드는일에도 나서야 한다. 바로 ‘지역(Local)’으로서 아시아의 ‘지역’과 만나는 교류의 시작이 그것이다.

이미 4.3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는 아시아의 ‘지역’들과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민간차원에서 발현된 이 네트워크들을 적극적인 지역간 연대의 구조로 만드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주는 4.3과 같은 역사연대 뿐 아니라, 관광, 생물권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한 교류가능성이 매우 큰 이점이 있다.

최근 송재호 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이 2007년 한중일 관광협력체 발전을 비전으로 공동합의문을 끌어낸 것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여기에는 제주와 하이난, 오키나와와 같은 ‘지역’이 우선 주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이 앞장서 국가간 합의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제주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제주 스스로의 발전과 더불어 국가차원의 비전에도 기여하고, 나아가 동북아 공동체발전에 일익을 여는 노력, 이것이 평화의 섬 제주가 나갈 길이다.

# 우리 내부의 아시아와 함께하는 일부터
한편으로, 아시아는 우리 내부에 이미 존재한다. 한반도와 제주 역시 아시아의 일원이지만, 제주 안에서도 아시아가 존재한다.

바로 2000여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자 들이 그들이다.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바로 아시아이다. 그들이 곧 우리다 라는 계기를 자꾸 만들어야 한다.

우리와 함께 살아갈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우리 내부의 아시아인들을 위한 문화와 제도의 접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례로, 일본만 하더라도 각 지자체별로 ‘외국인 대표자회의’와 같은 기구를 두고 있다.

이는 일본 안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일종의 참정제도와 같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매뉴얼의 제공 등 일본의 도시들은 이 ‘내부의 아시아’, ‘내향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런 일들은 굳이 영어 공용화나 영어마을, 국제적인 평화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제주 스스로가 이른바 ‘국제화’를 이루는 가장 접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제주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자들을 문화 강사로, 언어 강사로 초빙해 얘기를 나누고, 말과 문화를 배워보자.

오히려 적극적으로 아시아 각국의 젊은 인재들을 인권교류자, 문화교류자, 환경교류자로 초청해 몇 개월, 혹은 몇 년씩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또 그렇게 보내자.

▲ 5.18재단 청소년 평화순례.
이런 일들을 도정의 각 부문에 맞게 크지 않은 예산으로 배정하고 추진해보자.

제주는 ‘세계 평화의 섬’이다. 세계는 더 이상 선진화된 유럽과 미국등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아시아의 아시아화’, 이 작업에 능동적 자기위상으로 임하는 곳. 이 곳이 평화의 섬 제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시아하면 제주가 하나의 큰 이미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UN 같은데서는 제주가 어떤 ‘나라’야? 하는 자연스런 물음이 나오도록 하는 상상이 이뤄져 간다는 들뜬 즐거움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끝]

 

아시아 연대에 적극 나서는 광주 5.18 재단
2000년 이후 9개 분야 아시아협력사업 꾸준히 펼쳐
518재단에 비추어 평화재단 등 제주43기념사업 선례로 삼아야

광주 5.18 재단은 ‘518 민주화운동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 이전인, 1994년 8월에 관련 피해자들의 보상금 일부와 시민들이 낸 성금으로 만들어졌다.

어떤 법률적 근거에 의해 추진되었다기 보다, 시민들의 자발적 동기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그 운영면에서도 자발성이 크게 엿보인다.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사에 주요한 전환점으로 일컬어지는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해마다 해오고 있다.

▲ 광주인권상.
# 국경을 넘는 인권평화운동의 길잡이로
그 중 국제협력 사업은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인권과 평화운동에 앞장선다’는 신념으로 2000년 이후 지속 확대되어 오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2003년 까지 4년 동안 이어진 ‘아시아 민주희생자 가족초청행사’는 그 결과 ‘아시아 민주희생자연대 네트워크’를 형성하였으며, 2001년부터는 국제인권단체지원사업 일환으로 스리랑카 실종자 추모행사지원, 캄보디아 빈곤지원, 필리핀, 네팔, 인도네시아 등지의 인권단체 지원을 실시해 오고 있다.

특히, 2000년 제정된 ‘광주 인권상’은 아시아 지역의 인권개선을 위해 앞장선 인사들의 지속적 인권활동을 위한 촉매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수과정에서 만났던 태국의 앙카나 닐라파이짓 여사도 바로 올해 수상자였다. 지난 2004년에는 버어마 NLD 당수로 있는 아웅산 수지여사에게 이 상이 주어지기도 했다. 수상자들에게는 미화 5만불이 상금으로 주어져 이들의 인권개선활동에 실질적 보탬이 되기도 한다.

# 인적교류를 통한 아시아 네트워크 만들기
인적 교류활동도 활발하다. 2001년부터는 아시아 지역 여러 나라들과 미국 등에 국제인턴을 파견해 이들 나라의 정치, 시민사회를 직접 경험케 하고, 또한 이를 매개로 실질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지원사업과 더불어 이들 단체에 다시 인턴쉽 프로그램을 통해 네트워크를 맺어가는 식이다. 우리가 방문한 태국, 네팔, 필리핀에도 5.18재단에서 파견된 인턴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략 20만원 정도의 재단 지원금으로 이들 나라에서 생활하며, 매주 보고서를 재단에 제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기본적으로 국제인턴으로 선발되기 위해 재단에서 일정기간 자원활동에 복무해야 하며, 10개월, 12개월 정도의 국제인턴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도 2개월간 의무적으로 재단업무에 임해야 한다. 현지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 같이 이들 나라에서의 공식 인턴과정을 마쳐도, 개인적으로 체류기간 연장을 통해 이들 나라의 시민단체 활동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국제인터파견사업은 올해만 6개국에 12명이 파견돼 활동하고 있다.

▲ 5.18재단에서 인턴으로 파견돼 태국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승환씨. 그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국제봉사활동 등에 꼭 나서고 싶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국제인턴사업은 아시아 각국에 재단소속 활동가를 파견하기도 하지만, 아시아 나라들의 활동가를 채용하는 형태로 이뤄지기도 한다. 지난해에도 인도네시아,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4개국 5명을 재단의 인턴으로 채용해 경험을 나누었으며, 올해도 키르키스탄과 필리핀등 4개국에서 4명의 인턴이 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수 사전워크샵에서 만난 필리핀의 인턴활동가는 이전 필리핀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였다.

필자가 참여한 5.18아카데미 국제연수사업도 올해로 3년째 이뤄지고 있으며, 같은 시기 광주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관련자들이 참가하는 ‘광주 인권학교’가 열린다. 2004년부터 시작된 광주인권학교는 약 3주동안 진행되는데, 아시아 각국에서 18~20명이 해마다 참여해 오고 있다. 인권학교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등을 주제로 각종 토론과 현장방문활동이 이뤄지는데, 아쉬운 것은 이 프로그램에 4.3의 현장 제주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 4.3 기념사업 선례로 삼아야
이 밖에도 ‘광주국제평화캠프’, ‘한국민주주의 답사’사업, 5월 기념행사 등 518 재단은 2000년 이후 다양한 국제협력사업을 확대 지속해오고 있다.

제주에도 4.3특별법 개정이 이뤄지면 ‘평화재단’이 설립될 전망이다. 평화재단이 4.3문제의 지속적 조명 외에도, 이를 넘어 제주4.3을 아시아의 인권과 평화를 실현하는 역사로서 자리매김시켜 나가기 위한 새로운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4.3평화재단의 설립이 법률 근거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 한편으로 재단운영의 국가지원체제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자칫 이것이 도민의 자발성을 대체하는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광주 5.18 재단이 벌이는 각종의 활발한 활동의 저변에는 재단의 설립과정부터가 시민의 자발적 동기가 밑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 영역화 돼 버린듯한 4.3문제를 ‘인권과 평화’라는 화두를 안고 계승과 발전의 길로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주도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의 모티브가 재차 회복, 형성되어야 한다. 여기에 앞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평화재단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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