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김준곤 제주한라대학 겸임교수
제주시립합창단 제61회 정기연주회에 대한 비평

제주한라대학 김준곤 겸임교수는 지난 6월 (사)제주문화예술재단이 발행하는 삶과 문화 제19권에서 '공연을 유료화해야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한 문화진단을 통해 제주공연문화의 심각성을 꼬집은 바 있습니다다. 다음은 제주시립합창단 제61회 정기연주회를 통해 본 '공연 유료화'에 대한 두번째 비평 기고문입니다.

▲ 제주시립합창단의 공연 장면
1. 합창이 예술이 되려면
 
합창은 공연예술이다. 예술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며 심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창의성과 심미적인 추구라는 것이 예술(藝術)과 기술(技術)을 구분짓는 것이다. 그런데 낭만주의 이후의 미학에서는 아름다움을 창의성에 근거해 판단하고 있으니 창의성이야 말로 예술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곡을 예술로 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어떻게 연주행위를 예술이라 말할 수 있을까? 즉 연주에 어떻게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연주는 악보를 재생(Wiedergabe)하는 것이라는 생각, 즉 음악은 작곡자에 의해서 예술적으로 완성되고 연주자는 단순히 이를 소리로 재현하는 것이라는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음악은 연주에 의해서 예술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며 모든 연주는 비록 악보가 있더라도 즉흥적인 성격(Improvisation)이 강하다는 이론이 대두되었다.

▲ 김준곤 한라대 겸임교수
현대에 들어서는 연주란 작품 분석을 통한 연주자의 해석이라고 말하는 분석적 해석론(Interpretationsanalyse)이 지배적이다. 즉 작품이 쓰여진 당시의 상황을 분석하고 연주될 지금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하는 가운데 연주자의 삶의 경험이나 철학이 반영되면 이를 창의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로서 연주도 예술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사실 연주의 예술에 관해서 이렇게 짧은 글로서 설명하는 것은 너무 개념적이어서 진지한 고민을 하는 모든 연주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소 추상적인 예술론을 서두에 설명하는 것은 제주시립합창단의 공연이 정말 예술적인가 라는 문제를 집어보기 위함이다. 시립예술단의 공연을 가지고 예술성을 논하지 못한다면 제주에서 공연예술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연주에 있어서 분석과 해석의 중요함은 위에서 지적한 바 있다. 분석은 시대적인 배경, 작곡가의 의도나 작곡동기, 작곡 당시의 창법이나 연주기법, 연주단의 편성, 당시의 청중이나 공연장 등에 대해 연구해야 하며, 작품의 음악적 구조에 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합창에 있어서 이 부분은 지휘자의 몫이며, 단원들에게 잘 이해시켜야 한다. 학구적인 지휘자가 이 점에 있어서 강점을 가진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반면에 해석은 현 상황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즉 연주자의 경험과 교육수준 그리고 음악적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고려해야하고, 단원편성도 고려해야 한다. 공연장의 음향상태, 청중의 수준과 취향도 분석해야 하고, 계절이나 사회의 분위기 또는 종교성까지도 고려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은 지휘자 혼자의 몫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최종결정은 지휘자가 할 일이지만, 합창에 있어서는 단원들 그리고 스태프진과의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며 지휘자의 경험과 인간성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분석과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단원들의 연주기술 즉 음악적인 테크닉이 뒤따라야 한다. 무슨 곡을 연주해도, 무슨 방식으로 해석해도 따라 할 수 있는 기량을 단원들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디션을 통해 유능한 단원을 뽑기도 하고, 기존의 단원을 탈락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단원들은 자기 음악에 대해서 백 퍼센트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2. 수준 높은 공연이 되려면

  틀리지 않고 음표를 재생하기에 바쁜 연주는 예술이 아니다. 적어도 완벽한 기량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해석에 대해서 미학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지의 연주가 되어야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 적어도 시립예술단의 공연은 미학적인 비평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레파토리를 연주하면 수준 높은 공연이 되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연의 수준은 레파토리가 아닌 음악적인 완성도에 달려있다. 완성도가 떨어지면 아마추어이고 완성도가 높으면 프로이다. 레파토리의 수준은 음악적인 완성도 안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어려운 레파토리는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지나치게 쉬운 레파토리는 음악적으로 별로 보여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단순한 곡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으며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다. 단순한 곡으로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 실은 더 어려운 일이며, 이때는 지휘자와 단원 그리고 청중사이에 깊은 인간적인 신뢰관계가 동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레파토리가 지나치게 어렵다면 청중들이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노래하는 이도 자신이 없고 틀리기 일수이며 그러므로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기가 어렵다. 특히나 귀에 들리는 소리 이외의 깊은 정신적인 의미나 신앙을 추구하는 르네상스 음악은 지휘자의 의도가 청중들에게 전달되는데 가장 힘든 경우이다.

  그러나 어떤 곡목을 선택하든 무대에 오를 때는 음악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전문합창단의 공연을 찾는 청중은 당연히 음악적인 완성도를 기대하고 온다.

3. 제주시립합창단의 공연

  지난 9월 29일 제주특별자치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제주시립합창단의 제 61회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이날은 제주시립예술단의 정기연주회가 유료로 전환되는 첫 번째 공연이었다. 진정한 프로라면 공연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의미 뿐 아니라 자신의 공연을 돈을 받고 보여주는 것을 말하므로 이날은 제주시립합창단이 진정한 프로로 출범하는 첫 번째 공연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약 200명 정도의 청중이 이날 공연장을 찾았다. 이는 평소 500명 이상의 청중이 입장하던 것에 비하면 무척 적은 숫자이다. 음악숙제하러 오는 학생이나 단체입장한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단원의 가족인 듯한 어린아이들도 몇 명 있었지만 대체로 합창음악을 사랑하는 청중들이 자리를 잡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연중에 돌아다니거나 떠드는 이도 없었고, 필요한 부분에서만 박수를 치는 등, 전반적으로 관람매너도 좋았던 것 같았다. 이는 준비된 청중을 입장시키자는 공연유료화의 한 취지에 부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날 공연에서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폭넓은 레파토리들이 노래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곡해석과 경직된 무대매너로 인해 전혀 다양성이 드러나지 못했다.

  첫 번째 무대인 Steve Dobrogosz작곡 재즈풍의 미사곡부터 단원들은 음정과 리듬에 자신이 없었다. 아프리카풍의 단순한 선율과 재즈의 날카로운 리듬이 가미된 매우 신선한 레파토리였지만 첫 번째 곡으로 듣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막 자리를 잡아 호흡을 가다듬고 팜프렛을 뒤적거리는 는, 즉 들을 준비가 덜 된 청중들에게 시작부터 너무 어려운 음악이 들려온 셈이다.

  두 번째 무대인 두 편의 뱃노래는 매우 흥겨운 노래이지만 청중들에게 흥겨움을 선사하지 못했다. 지휘자나 단원들이 너무 경직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무대인 세편의 무반주 모테토는 합창단의 여러 문제점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우선은 음정이 자꾸 떨어져서 화성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음정이 떨어지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단원들의 음악성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연습부족, 심리적인 불안이나 긴장감, 지휘자의 통제력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전의 공연에 비해서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레파토리의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테너의 음색이다. 르네상스음악이나 모테토를 연주할 때는 테너가 매우 중요하다. 현재 6명뿐인 테너의 숫자도 부족하지만 음색이 구구각각이어서 소리가 모아지지 않는다. 발성과 음색을 통일시키는 훈련을 거듭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테너에 부담을 주는 레파토리를 피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단원들이 비조성음악을 노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도레미파의 음계에 매여서는 조성이 확립되기 이전의 르네상스 음악이나 조성이 붕괴된 후기낭만파 이후의 레파토리를 노래할 수 없다. 이 문제는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그리고 대학에서도 제대로 수업받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에 합창단에서 체계적인 시창과 청음훈련을 실시해야한다.

마지막으로는 단원들이 다성음악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맑고 깨끗한 두성공명과 성부별로 하나되는 음색 그리고 각 성부의 독자적인 진행과 부분적인 호모포니의 화성을 즐기는 훈련이 덜 되어있다는 것인데, 이 역시 우리나라 음악교육의 여건상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청중들도 다성음악을 어려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같은 다성음악이라도 깊은 정신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모테토보다는 회화적인 묘사를 위주로 하는 마드리갈이 단원들에게도 쉽고, 우리의 청중들에게 더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무대인 멘델스죤의 파트송 세곡은 이날 가장 무난하게 들렸던 음악이다. 가을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아마도 철저한 화성음악이어서 듣는데 편안함이 있었고 부르기도 쉬었을 것이다.
 
  마지막 무대인 영화음악은 청중들에게 친근감을 준만큼 아쉬움도 남겼다. 자전거를 탄 풍경의 노래로 영화 ‘클래식’에 삽입된 <사랑하면 할 수록>은 좀 더 센티멘탈한 창법으로 노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고, 영화 ‘실미도’에 삽입된 조용필의노래 <태양의 눈>은 좀더 웅장하게 노래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자전거를 탄 풍경이나 조용필의 노래는 웅장한 기악반주와 스피커의 음향을 동반하는데 비해 피아노로 반주하는 합창은 빈약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편곡이 합창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한 것 같았다.

  잘 알려진 곡을 전문합창단이 노래하는데는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있다. 그런 점은 앵콜곡에서 더욱 느껴졌다. <베사메 무쵸 Besame mucho>는 영어로 ‘kiss me much'라는 뜻으로 정열적이면서도 흥겨운, 잘 알려진 스페인 노래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레가토로 질질끄는 곡 해석이 흥겨움을 살리지 못하고 청중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아마 지휘자는 통속적인 곡해석에 반대해서 예술적인 면을 추구했으리라. 그런데 이는 마지막 앵콜곡이 아니던가? 앵콜은 관객들과 쌍방통행하며 즐거움을 주는 무대여야 한다. 아니면 깊은 인상을 남기던가.

  어쨓든 처음무대부터 마지막 앵콜까지 곡선정과 해석에는 지휘자의 음악적인 고집이 드러나있는 것 같았다. 물론 지휘자의 신념은 중요하다. 그러나 단원들이나 청중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날 지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없이 지휘했다. 반면에 단원들은 악보를 보면서도 자신없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는 매우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마치 지휘자는 완벽하게 곡을 마스터하고 있는데, 단원들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단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이다.

4. 제주시립합창단의 발전을 위해서

  제주시립합창단의 최근 공연들을 보면서 단원들이 점점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김인재 지휘자가 부임한지 2년이 넘는다. 처음에는 발음과 음정에 있어서 많은 발전이 있는 듯 했으나 최근에는 도리어 퇴보하는 느낌을 준다.

지휘자가 요구하는 음악적인 수준에 오르지 못해 단원들이 주눅이 든 것일까? 지휘자와 단원간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합창단 내부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공연을 통해 문제점이 보여진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진정한 프로라면 과정이 어떻든지간에 무대위에서는 완벽한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레파토리가 어렵다는 것은 프로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어려우면 더 열심히 연습해서 자기 음악에 책임을 져야하고, 무대에 오를 때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단원들이 자신감이 있으면 스스로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자기 돈으로 입장권을 사서라도 나눠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심지어 단원들이 초대권도 반납하고 있지 않은가? 시립합창단 연주의 관객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거기에다 유료로 전환되었으니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단원들은 주위사람들에게 공연에 와 보라고 홍보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 같다.

  모든 책임은 결국 지휘자에게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훌륭하지 못한 합창단은 없다. 훌륭하지 못한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라는 명언이 있는 것이다. 김인재 지휘자가 음악적으로 뛰어난 점은 분명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법에 좀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04년 김인재 지휘자가 부임한 이후 제주시립합창단은 한명의 객원지휘도 초빙하지 않았다. 이는 제주시립교향악단의 매우 활발한 객원지휘 초빙과도 대비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상길(수원, 대구시립), 박신화(안산시립), 김강규(부산시립), 민인기(수원시립), 윤의중(선명회) 등 국내의 유명지휘자들이 제주시립을 객원지휘하며 단원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최근에는 외부의 전문합창단이 제주에 와서 단독공연을 펼친 적도 없으며(탐라전국합창제에 참석한 전문합창단이 몇곡씩 노래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제주시립합창단이 타지에 나가 단독공연을 펼친적도 없다.

이는 우연이거나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단원들이 음악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는 육지와 다르다. 만약에 부천이라는 도시라면 서울, 인천, 수원, 안산 등 다양한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지휘를 경험하며 단원들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는 초청하지 않는 이상 단원들이 새로운 음악적인 경험을 가질 수가 없다. 제주의 청중들도 마찬가지 다양한 음악적인 경험을 하고 싶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역시 지휘자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객원지휘를 통해 해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5. 유료공연의 정착을 위해서

  제주시립합창단의 입장료는 일반 5,000원, 학생 3,000원으로 책정되었다. 물론 연4회 실시하는  정기공연만 유료이고 나머지는 무료이다. 수원시립합창단과 부산수립합창단은 모든 공연을 유료로하고 있다. 이 금액은 수원시립합창단과 같고, 부산수립합창단의 좌석등급에 따른 5,000원/7,000원/10,000원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처음 실시하는 유료공연이라서 초대권발행에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 단원 1인당 5매의 초대권을 주었고, 엉뚱하게 5장의 초대권에 따른 벌점을 동시에 부여해 나중에는 일부 단원들이 초대권을 반납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수원시립합창단은 공연장 좌석의 20%에 해당하는 수의 초대권을 발행하며 단원들에게는 1~2장씩 제공한다고 한다. 부산시립합창단 역시 공연장 좌석의 20% 정도 초대권을 발행하지만 단원들에게는 거의 제공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초대권이 유료입장권 판매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원시립합창단은 단원들에게 2장씩의 입장권을 판매하는 책임을 부여하고 있고, 부산시립합창단은 단원들에게 5~10장의 유료권을 할당하고 있다. 그러나 유료권 판매실적을 절대로 단원들의 근무성적에 반영하지는 않는다. 부산시립합창단에서는 단원들이 정기회원을 유치하면 그 수만큼 유료권판매 의무를 감해주어서 정기회원의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정기회원제도와 관련해서 제주시립합창단은 년4회의 정기공연, 제주시립교향악단은 년6회의 정기공연에 대해서 20%의 할인율을 적용하는데, 수원시립합창단은 10%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부산시립합창단은 년회비 25,000원으로 7,000원 좌석을 5회 입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주의 할인율이 제일 높은 편이다. 부산에서는 정기회원권으로 합창단, 교향악단, 무용단 등 모든 시립예술단의 공연에 관계없이 입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입장권수입은 어떻게 처리될까? 제주와 마찬가지로 수원시립이나 부산시립 모두 곧바로 시의 재정에 귀속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자치단체의 모든 수익사업에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조례에 의한 것이다. 공연수입내역을 지휘자나 단원들이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티켓제도와 관해서 수원시립이나 부산시립 모두 두가지 고민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현재의 티켓가격이 지나치게 낮다고 생각하지만 시민의식과 홍보의 어려움 때문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객석을 채우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워낙 다양한 공연들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라며 합창단은 다양한 이벤트로 시민에게 다가서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상 유료공연의 선두주자인 수원시립합창단 및 부산시립합창단과의 비교를 통해 제주시립합창단의 티켓제도를 보완한다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로, 초대권을 줄여야 한다. 초대권을 줄이면 당장 객석을 채우는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티켓판매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좌석의 20% 이내로 발행하는 초대권은 반드시 공연장에 올 사람들에게 보내져야 한다. 유명인사들에게 인사치례로 발송하지 말고, 미래의 관객을 개발하기 위해서 기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분배되어야 한다. 아울러 장애인이나 빈곤계층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정비율 할당되어야 한다.

  둘째로, 정기회원 확보에 주력해야한다. 정기회원은 고정적인 팬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좌석을 채울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정기회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들면 공연장에 지정주차공간을 확보한다든지, 공연후 주요출연자들과 사진촬영이나 싸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든지, 특정 리허설 시간을 공개한다든지, 세미나 등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정기회원에 대한 부가서비스는 미국이나 유럽의 주요 공연단체에서도 널리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심지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정기회원에게 공연장 주변에 위치한 36개소의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10여개의 쇼핑센터에서 할인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셋째로 정기회원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합창단이나 교항악단의 공연에 구분없이 입장할 수 있어야 하며 입장권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도 있어야 하고 분실시에는 재발급도 해주어야 한다.
  넷째로 좌석지정제를 시행해야 한다. 좌석지정제는 공연유료화의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는 보조제도이다. 티켓에 좌석번호를 지정해서 관객은 반드시 정해진 자리에 앉는 문화를 정착시켜야하며, 정기회원 및 예약구매자에게 좋은 좌석을 우선적으로 배정할 수 있어야 한다.

6.  이제 유료화의 닻은 올려졌다

  이제 유료화의 닻은 올려졌다. 그러나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공연의 수준이다. 유료화된 공연은 유료화 이전보다 당연히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동안 공연자들이 유료화를 주장해왔고, 이제 시행되었으니 공연자들이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만 유료화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제주시립합창단의 제 61회 정기연주회는 유료공연에 걸맞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았고 완성도가 떨어진 공연이었다. 이런 공연이 계속된다면 청중이 외면할 것이고, 유료화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합창단은 음악적인 노력과 인간관계라는 두 축에 바퀴를 달고 굴러가는 것이다. 이 두 축이 삐거덕거리면 공연에 그대로 나타나는 법이다. 앞으로는 더 나아진 공연을 기대한다.

  제주시립합창단을 사랑하고 제주 공연문화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어렵게 그리고 우회적으로 글을 쓴다. 유료화의 닻은 올렸으나 갈길은 멀고 험하다.

* 글쓴이=제주한라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김준곤씨(제주청소년오케스트라 이사)는 독일 쾰른대학 철학부에서 음악학을 전공(석사), 극동방송에서 10년째 전국 방송으로 클래식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주시립예술단의 공연해설자, 제주국제관악제의 전문 MC로 활동하고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의 격월간지 ‘삶과 문화’의 편집위원으로 공연비평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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