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기행] 황소 울음소리에 풀 섶 향기 익어가고

 
▲ 아부오름 중턱, 노랗게 익어가는 풀섶 위에 황소 울음소리 가득-
ⓒ 김강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 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정지용의 <향수>

 
▲ 무리지어 풀을 뜯는 누렁이의 모습엔 평화가 존재합니다.
ⓒ 김강임
 
가을은 사람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북쪽에서부터 내려온 단풍소식이 남하하면서 세상은 온통 무지개 빛으로 채색되었습니다. 소란스러운 것은 계절만이 아닙니다. 국내외 뉴스로 인해 주변이 시끄러우니 포근한 것이 그리워집니다.

세상에 가장 포근한 것이 어디일까요? 고향? 하지만 흙이 살아 숨쉬는 고향마을도 한미FTA 협상으로 아우성입니다. 정말 흙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 이날 아부오름은 속세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김강임
 
아부오름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표고 301.3m, 둘레 1400m인 아부오름에 올랐더니 가을하늘이 금방 손에 잡힐 듯합니다. 풀 섶 위에 가을이 내려앉았습니다.

아부오름 중턱에는 황소 울음소리가 가득합니다. 정지용님의 향수가 생각납니다. 무리지어 풀을 뜯는 황소는 오름이 고향입니다.

 
▲ 웅덩이는 누렁이 목마름을 채워주는 고향입니다.
ⓒ 김강임
 
황소는 물이 그리운 가 봅니다. 가을빛에 목마른 황소의 고향은 들판의 웅덩이입니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황소의 고향입니다.

 
▲ 아부오름 능선에는 강아지풀이 나풀거립니다
ⓒ 김강임
 
1400m 아부오름 화구는 강아지풀이 나풀거립니다. 어린시절 강아지풀을 꺾어 친구의 목에 간지럼을 태우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나풀거리는 것은 강아지풀만이 아닙니다. 무리지어 피어나는 가을 야생화들입니다.

 
▲ 무리지어 아름다운것은 가을 야생화들 입니다.
ⓒ 김강임
 
꽃 같기도 하고 열매 같기도 한 가을꽃이 아부오름 자락에 나풀거립니다. 해발 301m 아부오름은 평화가 존재 합니다. 고향처럼 아늑합니다.

 
▲ 아부오름 능선을 달리는 어린이는 마치 운동장으로 착각합니다.
ⓒ 김강임
 
아부오름 능선은 운동장입니다. 풀 섶 위를 달리는 어린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깔-깔-깔, 껄-껄-껄-'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가을 하늘에 울려 퍼집니다.

 
▲ 멀리 거미오름과 높은 오름이 보입니다.
ⓒ 김강임
 
 
▲ 아부오름 분화구는 영화속(이재수의 난) 분화구 입니다.
ⓒ 김강임
 

해맑은 웃음을 웃어본지가 언제였던가요? 웃음을 잃고 저마다의 아젠다를 향하여 외치지 않았던가요? 풀 섶 향기 익어가는 아부오름 능선에서 가을소고에 빠져봅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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